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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12) - 보살과 원(願)

by 아미타온 2023. 11. 26.

<불교의 역사(12) - 보살과 원(願)>

 

<부산 동명불원 관음전 관세음보살님>

 

1. 보살의 원(願)과 행(行)

 

지난 시간에 대승 불교는 보살 불교이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향한 보살의 마음 세계인

보리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보살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리심을

구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보살은

원(願)과 행(行)에 의해 보리심을 구현해나간다고 볼수 있습니다

.

원(願)은 깨달음을 추구하며

일체 모든 생명에게 유익을 주겠다는 보살의 굳건한 목표입니다.

 

행(行)은 보살의 목표인 원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즉 육바라밀행을 의미합니다.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원을 세우신 관세음보살님>

 

 

오늘은 먼저 원(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보살의 삶을 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굳건한 삶의 목표인 원(願)입니다.

 

굳건한 삶의 목표가 없을 때 우리는

왜 사는지 모르고 갈팡질팡하며 항상 분주합니다.

 

원(願)은 보살의 존재의 의미이자

삶의 축으로 흔들리지 않고

분명한 목표를 지향해가는 삶의 원동력입니다.

 

원(願)은 서원, 발원, 원력, 행원 등의

다양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원(誓願)은 보살이 삶의 목적, 희망, 기원을 갖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발원(發願)은 보살로서의 삶의 목적, 희망, 기원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원력(願力)은 그 희망과 소원이 생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동력과 힘으로서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행원(行願)은 구체적인 실천 항목을 정해

실천과 결합한 원을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부산 동명불원 나한전>

 

3. 총원과 별원

 

불교에서 원(願)은 크게 보아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해탈에 이르는 지혜를 닦겠다는 원(상구보리의 원)입니다.

 

둘째는, 널리 불우한 사람과 여러 생명체에

자비심을 가지고 아끼고 돌보겠다는 원(하화중생의 원)입니다.

 

셋째는, 수행을 통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위해

열심히 매진하겠다는 원입니다.

 

이 3가지의 원은 불교의 보살들이 모두에게

공통되고 바탕이 된다는 의미에서 

총원(總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총원은 모든 보살들의 공통적인 원이지만,

각자의 여건과 상황과 기간에 따라서

각각의 구체적인 원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 각자의 원을 ‘별원(別願)’이라고 합니다.

 

대승 경전은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별원을 담고 있습니다.

 

<삼존불>

 

 

<무량수경>은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을,

<약사경>은 약사여래 부처님의 12대원을,

<승만경>은 승만부인의 3대원을 설하고 있습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병고에 시달리는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별원을 세우셨습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1) 일체 중생의 병을 없애주고

심신을 안락하게 하여 위없는 진리를 얻게 하리라.

2) 중생들을 나쁜 왕이나 무서운 도적 등의

횡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리라

3) 기갈이 든 중생들에게 좋은 음식을 주리라

4)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중생에게 옷을 주리라

와 같이 병고와 횡난과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별원을 세우셨습니다.

 

<승만경>의 주인공인 승만 부인은

1) 제가 오늘부터 깨달음을 얻는 그날까지

남의 잘 생긴 용모를 시기하거나,

값진 패물에 대해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2) 제 자신을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지 않고

외로운 중생들을 위해서만 모으겠습니다

와 같이 여인의 허영심을 버리고

외로운 사람을 위해 재산을 모으겠다는 거룩한 별원을 세우셨습니다.

 

<지장경>의 지장보살님은 수많은 중생들 중에서

특히, 지옥중생들의 고통을 아파하며

"지옥 중생이 성불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별원을 세우셨습니다.

 

<동명불원 대웅보전 부처님>

 

4. 우리는 어떤 별원을 세울 것인가?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별원을 세울 수 있을까요?

 

1 )허영에 빠지지 않기 위해 평생 금붙이를 달고 다니지 않겠다.

2) 하루에 1가지씩 무슨 일이든 착한 선행인 보시행을 하겠다.

3) 매일 내 집앞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내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항상 상쾌한 기분으로 다니게 하겠다.

4) 돌아가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위해 49일간 아미타경 기도를 하겠다.

5) 1년 동안 <나무아미타불> 염불 기도를 하며

매일 1000원씩 보시하여 봉사 단체에 기부 하겠다

 

등등과 같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지혜와 자비를 구하는 보리심에 근거하여 일정 기간 동안이나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이 실행할 구체적인 서원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원은 "내가 무엇이 되겠다."라는

"무엇"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은 "내가 어떻게 살겠다"라는

"어떻게"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떻게"도 나의 이기적 욕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향한 자비심에 기초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막연히 "의사가 되겠다"는 것은 서원으로 볼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의사가 될 수도 있고,

사회적인 평판 때문에도 의사가 될 수 있고,

그냥 공부 잘하고 엄마 아빠가 원한다고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서원은 "의사"에 촛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동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즉, 착한 마음과 자비심에 기초한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보살님>

 

예를 들어, "내가 아빠와 같이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을 고치기 위해 의사가 되겠다."는 것은

서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사가 되려는 마음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자비에 기초한 착한 길을 걷느냐가 중요합니다.

 

원(願)이 있는 삶과 없는 삶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을 구체화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원은 삶을 지치지 않고 힘 있게 만들어 주고,

자신에서 벗어나 남을 살피게 해주며,

세상을 밝고 행복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연료가 되고,

허무와 안일함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동력이 됩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구체적인

삶의 목표인 원을 세우고 정진하는 사람입니다.

 

굳은 원을 세워서 윤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몇 생, 몇 겁이 걸리더라도 정진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부처님의 전생담을 살펴보면 수많은

부처님의 전생담이 바로 보살의 원의 삶입니다.

 

부처님은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이후로

수많은 삶을 거듭해오면서

중생에 대한 깊은 자비심으로 성불을 위해 원을 세우고

각각의 생 속에서 구체적인 보살행을 하셨습니다.

 

보살은 이러한 부처님을 공경하며 부처님처럼

원을 세워서 윤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룩한 존재입니다.

 

대승불교는 바로 이러한 보살의 원(願)에

기반한 보살 불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