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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15) - 지계 바라밀

by 아미타온 2023. 12. 2.

<불교의 역사(15) - 지계 바라밀>

 

<강화도 정수사 대웅보전>

 

1. 지계 바라밀의 의미

 

육바라밀의 두 번째 바라밀은 지계 바라밀입니다.

 

계율을 바르게 지켜나감으로서

바라밀을 성취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로부터 불교 공부의 체계는

계, 정, 혜 삼학(三學)이라고 했습니다.

 

계율의 그릇이 튼튼해야 선정의 물이 고이고,

선정의 물이 맑아야 지혜의 달이 빛난다고 합니다.

 

계율은 ‘깨달음’이라는 불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르는

사다리의 제일 첫 단계이자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수사 대웅보전 석가모니 부처님과 문수,보현,관음,지장보살님>

 

2. '계'와 '율'의 차이

 

"계(戒)"는 인도말 "실라(Sila)"를 번역한 말입니다.

"선한 습관, 좋은 행위"라는 뜻입니다.

 

나는 이런 나쁜 행위는 하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하겠다는 자발적인 결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불살생계는 "죽이지 말라"는

명령이나 금지의 의미보다

불교 수행자가 자비심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는 자발적 결의를 말합니다.

 

반면 "율(律)"은 인도말 "비나야(Vinaya)"를 번역한 말입니다.

 

"규정, 규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공동 생활에 필요한 생활 수칙과 규범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계율은 불자들의 자발적인 행위의 결의와

구체적인 생활 규범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정수사 지장보살님과 십대명왕 벽화>

 

3. 계율의 기원

 

불교 계율을 적은 <율장>을 보면

계율의 기원이 남아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수디나’가 있었는데,

결혼한 후 출가하여 수행하다가

자신의 고향집에 탁발하러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식을 하나 낳아

대를 끊지 않게 해 달라는 어머니의 간청으로

옛 부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단 안팎으로 많은 잡음이 들끓자

부처님께서는 출가한 수행자의 바른 수행을 위해서나,

승가의 품위를 위해서나 음행을 하는 것을 금하게 하신 것이

계율의 출발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에도 대중의 안락을 위해서나,

수행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나,

또한 승가 공동체의 화합과 질서를 위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때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제정하시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가장 기본 계율은 흔히 5계라고 부르는

1) 함부로 생명을 죽이지 않고,

2) 주지 않는 물건을 도둑질하지 않고,

3)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4) 잘못된 언어 생활(욕설, 이간질, 험담 등)을 하지 않고,

5) 술과 같이 취하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계율은 대승 불교가 발달되면서

"모든 생명들을 이롭게 하라"는

대승 불교의 이타 정신의 발현으로

더욱 적극적이고 이타적으로 그 의미가 전환되고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대승 불교의 계율은

중생을 제도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대승 보살의 수행체계인 육바라밀의 하나로

그 위치가 상승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대승의 계율정신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이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중생계라고 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입니다.

 

즉, 계율은 올바르고 품위있고

구체적인 행위를 지키는 율법으로 시작되지만(섭율의계),

계율은 우리를 선행으로 인도하는 나침반으로 작용해야 하며(섭선법계),

마침내는 뭇 생명들을 포용하는 크나큰 사랑으로 깊어져야 한다는 것(섭중생계)입니다.

 

이 세 가지가 청정한 계율을 섭수한다는

삼취정계의 의미이자 지계 바라밀의 근본 의미가 됩니다.

 

<불법을 수호하는 화엄신중님 벽화>

 

4. 섭율의계

 

삼취정계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첫 번째 섭율의계는 같은 불자라도

교단구성원이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

율의(律儀)는 각기 다르게 적용됩니다.

 

출가하여 독신 공동체 생활을 하는 비구와

비구니 스님은 각기 <250계>, <348계>를 받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재가자들은

<보살계>나 <오계>와 같은 계율을 수지합니다.

 

즉, 자신의 환경과 처지에 맞게 설정된 이러한 구체적 계율을

잊지 않고 잘 수지하여 지키는 것이 섭율의계입니다.

 

섭율의계만 잘 지켜도 자신의 자리에서

계율의 향기와 불자로서의 품위가 살아날 것입니다.

 

한편, 섭율의계는 자신의 위치에서

행위만 단정하게 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선한 세계로 인도하는 나침반으로서 작용할 때에만 그 의미가 있습니다.

 

<마니산 일몰>

5. 섭선법계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섭선법계입니다.

 

섭선법계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출재가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십선법(十善法)입니다.

 

십선법은 10가지의 잘못(악)을 참회하여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10가지 선행(10선법)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대승 불교에 와서는

단순히 10가지 악업을 저지르는데 그치지 않고,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비행과 이타행으로

10선법의 의미가 확장되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 불살생입니다.

 

그러나, 불살생은 단순히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대승 불교는 일체 중생들의 생명 활동 과정에서 맞이하는

괴로운 상황을 해소시켜주는 적극적인 "방생"과 "구제"의 자비행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둘째는 남이 주지 않는 물건을 훔치지 않는 ‘도둑질 하지 않음(불투도)’입니다.

 

그러나, ‘도둑질 하지 않음(불투도)’은

단순히 남의 소유물을 훔쳐가는 행위를 하지 말 것에서,

물질(재산)이든 지식이든 정신적인 위안이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보시하는 보시행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셋째는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삿된 음행은 부부간에 믿음과 신뢰를 손상시키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믿음과 신뢰를 손상시키는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음욕이 강하고 이성에 대한 갈구가 심한 이들에게

이러한 삿된 음행의 덧없음을 일깨워 주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에게

좋은 배우자를 소개해주는 자비행을 행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넷째는 거짓말 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않음’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승불교에서는 바른 법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올바른 불법을 설해주거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익에 얽매이지 말고 진실을 소신있고 정의롭게 말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다섯째는 아부 떠는 말이나 꾸미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부를 떨거나,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과장하거나,

애간장을 녹이는 간교한 말로

비애를 들끓게 하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듣는 이들이 평온하고 담담하고 담백할 수 있도록

바른 말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정수사 아미타불>

 

여섯째는 두 사람간의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쌍방에 분란과 불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이간질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뿐 아니라,

분란과 불화 속에 있는 양쪽을 모두 화평하게 하고

화해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일곱째는 욕설과 거친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욕설과 거친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듣는 이의 마음이 즐겁고 부드러워지고

고요해질 수 있는 고운 말을 사용하거나,

때와 상황에 적당한 말, 수다스럽지 않는 말을 사용하거나,

썰렁한 유머나 남을 비웃고 업신여기는 유머가 아닌 듣기에

즐거운 유머나 마음을 유쾌하게 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덟째는 지나친 탐욕과 갈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에게는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몸에 대한 집착이나

오욕락에 대한 지나친 집착의 무상함을 깨닫고

남에게는 인색함이 없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낌없이 보시하고 회향하는 것으로

그리고, 정의롭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이들의 적극적인 협력자가 되는 것으로 확장되어졌습니다.

 

아홉째는 증오와 미움과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분노야말로 자신이 지은 모든 공덕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장애임을 깨달아 성내지 않고,

두려움에 떠는 존재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시기, 질투, 미움, 원망하는 마음 없이

다른 이들의 고통을 가엾이 여기는 자비심을 내고,

다른 이들의 성취와 행복을 함께 기뻐하고

수희해주는 마음을 닦는 것으로 확장되어졌습니다.

 

열번째는 본능과 욕망에 의존해서 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법에 대한 바른 견해(정견)와

사유(정사유)로 인과와 연기의 법을 믿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본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삼보에 귀의하고 보살로서의 서원과 원력을 굳게 지켜 나가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십선법은 출재가의 구분없이

보리심을 내어 보살도를 행하는

모든 보살들의 공통적인 계율로서

무엇을 하지 말라는 식의 소극적인 계율이 아니라,

무엇을 하라는 적극적인 실천 계율로서 그 의미가 큽니다.

 

따라서, 섭선법계는 적극적으로 선을 권장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로운 불국토로 만들자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정수사 대웅전 문창살 무늬>

 

6. 섭중생계

 

마지막으로 대승의 계율 정신은

일체의 중생들을 다 섭수하고

건지려는 섭중생계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유가론>이라는 불교 논서를 보면

이러한 섭중생계의 구체적인 내용이 잘 제시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가 "뜻있는 일의 적극적인 협력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훌륭하고 뜻있는 일에 무관심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라는 동사섭의 정신을 말합니다.

 

둘째는 "병고를 잘 간호하라"고 하였다.

 

인간이 겪는 고통 중에 병고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가장 크므로 이 고통을 잘 간호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법을 설하라"입니다.

 

대승보살계 중의 하나가 보살이 진리를 전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는 것을 파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타정신으로 적극적으로 법을 설하여

중생을 어리석음에서 건지라는 의미입니다.

 

<정수사 함허 득통 대사 부도탑>

 

 

네째는 "공포로부터 중생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전쟁의 공포, 폭정의 공포, 사고의 공포,

범죄의 공포로부터 중생을 지키는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중생의 근심과 걱정을 없애주라"입니다.

 

여섯째는 "물건을 구하는 가난한 자에게 보시하라."는 것입니다.

 

즉, 재보시의 적극적 실천을 말합니다.

 

일곱째는 "중생들이 행하는 착한 일과 공덕을 보고 기뻐하라."입니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섭중생계가 있기 때문에

대승의 계율은 진리를 증득하고 보살의 완성을 향한

바라밀의 실천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대승의 계율은 소승의 계율에 비해서는

중생을 향한 자비심과 보리심에 바탕을 둔

훨씬 심오하고 다채로운 가치를 가진 계율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