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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30) - 반야부 경전(9) / 유마경(3) - 재가 성불

by 아미타온 2024. 1. 1.

<불교의 역사(30) - 반야부 경전(9) / 유마경(3) - 재가 성불>

 

<일본 가마쿠라 선종 사찰 원각사에 핀 꽃>

 

1. 재가 성불

 

<유마경>은 재가성불(在家成佛)’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습니다.

 

출가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재가 생활하는 보살 수행자가 

보살도를 통해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거사는

큰 재산을 소유한 재가자입니다.

 

당시 인도 사회의 성공한 재가자답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재가불자인 유마거사와 논쟁해서

이길 수 있는 출가 아라한들이 없었다는 것이

<유마경>의 주 스토리입니다.

 

<유마경>에는 병에 걸린 유마거사의 문병을

둘러싸고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유마거사는 반야바라밀에 정통했고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들을 바르게 제도하였습니다.

 

방편에 뛰어난 유마거사가 자신이 병에 걸린 듯 일

을 꾸미자 수많은 사람들이 문병했습니다.

 

유마거사는 문병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병을 통해

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설하여

문병객들에게 깨달음에 대한 발심을 하게 했습니다.

 

한편, 유마거사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사리불 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에게 유마거사 병문안을 가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10대 제자는 소승적 출가주의를 상징합니다.

 

10대 제자는 예전에 자신들의 수행이

유마거사에게 크게 비판 받은 것을 부처님께 말씀드리며,

유마거사의 법담의 상대가 될 수 없어 문병 가는 것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달마 대사와 조사 상>

 

2. 참다운 좌선

 

예를 들어, 사리불 존자가 

혼자 조용히 숲 속에서 좌선하고 있을 때,

유마거사가 조용히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조용한 숲 속에 그냥 앉아 있다고 해서

바르게 좌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좌선은 삼계(三界) 가운데

그 몸과 마음을 나타내지 않으며,

성자로서의 위의(威儀)를 잃지 않으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성품까지도 지니는 그러한 좌선을 해야 합니다.

윤회를 부르는 번뇌를 끊지 않고,

그대로 열반에 들어가는 그러한 좌선을 해야 합니다."

 

유마거사의 말을 들은 사리불 존자가 크게 부끄러워했습니다.

 

<원각사 방장>

3. 참다운 계율

 

또한, 계율을 어긴 두 비구를 비판하는 우팔리 존자를 보고는

 

“계를 어긴 죄를 없애고자 하지만,

죄에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맑은 마음이 망상에 의해 더럽혀져 있을 뿐이니

참답게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라는 설법을 해서 두 비구의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대승의 발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라고 설법하여 우팔리 존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원각사 선방 정원>

 

4. 참다운 출가

 

그리고, 어린 나이에 출가한 라훌라 존자가

젊은이에게 출가의 공덕과 이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출가에 따르는 공덕과 이익을

그러한 식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출가는 머리깎은 형상과

상관이 없으며 형상을 여읜 것입니다.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향해 발심하고

힘껏 수행하는 것이 바른 출가입니다.”

 

라는 설법을 하자 그 법문을 들은 많은 릿차비족 젊은이들이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유마거사는 좌선, 출가, 계율 등에서

소승 출가주의의 형식적, 은둔적, 혼자의 해탈에

안주하는 견해와 실천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반야바라밀의 대승적 입장에서

실질적, 적극적, 중생 구제를 위한

걸림없는 보살의 실천을 설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10대 제자가 문병을 꺼려하자

부처님은 문수보살을 보내어 문병하게 했습니다.

 

문수보살과 유마 거사의 법문을 듣고자

많은 성문, 보살들이 동행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원각사 불상>

 

5.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유마거사 방에 도착한 문수보살은 유마거사에게

병이 든 연유와 병의 차도에 대해 안부를 묻자

유마거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모든 중생이 병들었기 때문에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모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나의 병도 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생사(生死)의 세계에 들었고,

생사가 있는 곳에 병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중생이 병을 떠날 수 있으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자에게 외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병들면 부모가 병들고,

외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의 병이 낫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내 자식과 같이 사랑하여,

중생이 병을 앓을 때는 보살도 같이 병을 앓으며,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의 병도 낫습니다. 

 

병이 무엇으로 생겨났는가 하면

보살의 병은 한량없는 자비로부터 생겨났습니다.”

 

<일본 가마쿠라 원각사 거사림>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유명한 말씀이 이 대목에서 나왔습니다.

 

중생과 함께 동사섭하며 중생의 아픔에

깊은 연민과 자비를 갖는 존재가 보살입니다.

 

즉, 보살은 출가냐, 재가냐의 외부적 형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살의 마음인 자비심으로 중생의 병을 아파하고

중생의 병을 고치는 적극적 실천의 길을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재가의 삶을 살면서 보살의 자비심으로

중생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적극적인 보살행의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길이 바로 유마거사의 보살도이며,

그 어떤 출가 수행의 길보다 고귀한 길이라는 것을

<유마경>은 설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