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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32) - 반야부 경전(11) / 유마경(5) - 불이(不二)의 법문

by 아미타온 2024. 1. 5.

<불교의 역사(32) - 반야부 경전(11) / 유마경(5) - 불이(不二)의 법문>

 

<유마경 벽화 (막고굴)>

 

1. 불이(不二, 둘이 아니다)

 

<유마경>에서는 유명한 '불이(不二)의 법문'이 나옵니다.

 

<유마경>의 문답이 끝나갈 무렵 유마 거사가

여러 보살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보살이 불이(不二)의 법문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어떠한 의미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그 자리를 함께한 여러 보살들이 번갈아가며

각자의 불이의 법문을 설했습니다.

 

한 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생겨나는 것과 멸하는 것을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생겨나는 것이 없게 되면 당연히 멸할 것도 없게 됩니다.

결국 일체의 법은 생겨남이 없다고 확신하는(無生法印)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다른 보살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있다거나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헛된 것이라면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게 됩니다.

결국 이와 같이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32분의 보살님이 등장하여 깨끗함과 더러움,

보살이라는 생각과 성문이라는 생각, 선과 악, 번뇌와 번뇌 없슴,

행복과 불행, 세간과 출세간, 윤회와 열반 등의 둘이 각기 존재한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이에 들어간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지혜 제일의 문수 보살님이 등장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모든 것에 있어서

말이 없고, 설(設)함도 없으며, 가리키는 일도, 인지(認知)하는 일도 없으며,

모든 질문과 대답을 떠나는 것이 절대평등한 불이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수 보살님이 유마 거사에게 불이의 법문을 청하자,

명쾌한 법문을 해 왔던 유마 거사가 침묵하며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본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에게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이야말로 보살이 불이의 도리에 들어가는 도리이니

거기에는 실로 문자도 없고 말도 없으며 마음의 움직임도 없습니다."

라고 칭송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5천 명의 보살들이 그 자리에서 불이의 법문에 들어가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무생법인을 얻었다고 합니다.

 

<불이선란도 (추사 김정희)>

 

2. 불이선란(不二禪蘭)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린 불이선란(不二禪蘭)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20년 만에 우연히 난초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인간의 거짓이 없는 천연 그대로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 가운데,

그 어떤 인위적 노력과 의도도 없는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신품의 난초가 탄생했다고 탄복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이 난초의 경지에 대해 <유마경>의 유마 거사가

모든 보살들과 문수보살마저 탄복케했던

절대 침묵의 불이(不二)의 세계라고 발문을 쓰면서 스스로 자화자찬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불이선란을 보면서 많은 보살님들과

유마 거사가 설한 ‘불이(不二)’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불이(不二)는 ‘둘이 아니다’, ‘나뉘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둘이 아니고, 무엇이 나뉘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서로의 생각과 욕심이 대립하고,

견해의 다툼이 있을 때 둘이 되고, 나뉘어집니다.

 

잘못된 견해에 대한 집착으로 다툼, 대립, 욕심이 붙을 때

불교 용어로 "분별 의식"이라고 합니다.

 

분별 의식이 사라져서 욕심 없고 다툼 없고 자유롭고

오묘한 마음 세계에 있을 때를 불이의 세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불이선란>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천진스러움과 평화로움과 자유로움과 오묘함이 느껴집니다.

 

<유마경 그림>

 

3. 분별 의식에서 벗어나라

 

중국 선종의 제3조인 승찬 대사가 지은 <신심명>에 보면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버릴 것은 오직 이것 저것 따지는 분별심뿐,

좋고 싫다는 그 생각만 없으면 툭 트여 명백해지리라.”

대목이 나옵니다.

 

32분의 보살님들의 <불이법문>은 각자의 보살님들이 바라본

이것 저것, 좋고 싫고의 시비와 분별을 떠난

불이(不二)의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수보살님은 언설(言說)을 떠난 것이라는 불이 법문을 하셨는데,

유마 거사는 그 설법마저 멈추고 천둥 같은 침묵으로

불이의 세계를 나타내셨습니다.

 

이 침묵의 의미는 불이의 세계는 말을 떠난

마음의 각성과 자유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강렬한 한 방으로 침묵하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마경>은 어렵지만 흥미로운 경전입니다.

 

우리와 같은 재가자인 유마 거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재미 있는 무대 설정과 문답 형식으로 법문을 전개하며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과 편견을 깨게 합니다.

 

그리고, 번뇌 속의 깨달음, 진흙 속의 연꽃처럼

우리의 현실을 떠나지 않는 보살도와 둘이 아닌 불이 법문을 통해

재가적 삶 속에서 향기로운 불법의 꽃이 피어날 수 있다고 설해주어서

재가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