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도 불교 성지 순례

인도 불교 성지 순례(3) - 붓다가야 고행림

by 아미타온 2024. 1. 5.

<인도 불교 성지 순례(3) - 붓다가야 고행림>

 

<붓다가야 네란자라강과 마하보디대탑>

 

1. 붓다가야

 

붓다가야.

 

붓다가야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불교 성지입니다.

인도 불교 성지 순례 중 가장 하이라이트가 바로 붓다가야입니다.

 

카필라성을 빠져나와 출가하신 부처님은

당시 가장 번성했던 마가다국의 영토인

붓다가야에 머무시며 스승을 구하고 수행하셨습니다.

 

<붓다가야의 고행림>

 

부처님은 왜 마가다국의 붓다가야에서 수행하셨을까요?

 

마가다 국은 오늘날 인도 비하르 주에 위치합니다.

 

갠지스 강 하류에 자리잡은 비하르 주는 인도의 대평원인

힌두스탄 대평원 지대로 2모작이 가능한 평야 지방입니다.

 

오늘날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주라고 하는데,

부처님 당시인 2600여년 전에는 인도에서 가장 잘 살고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 직전에 올랐다는 전정각산>

 

 

갠지스강 유역의 최강대국인 마가다국 영토에 있으면서

앞에는 네란자라 강이 흐르고 뒤로는 전정각산이 솟아 있고,

‘가야’라는 큰 도시가 형성되어 공양을 받기가 편리한 곳으로

당시 수행자들이 많이 모여 살면서 수행하기 최적의 장소가 바로 붓다가야였습다.

 

비하르 주의 주도는 갠지스 강변의 파트나입니다.

 

파트나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비하르 주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인 ‘가야’가 있습니다.

 

가야에서 30km 남쪽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특별한 장소인 ‘붓다가야’가 나옵니다.

 

<붓다가야 마하보디 대탑>

 

붓다가야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도량의 <마하보디대탑>,

육년 고행을 하신 <고행림>, 고행을 포기하고 목욕하신 <네란자라 강>,

수자타 소녀에게 우유죽을 공양받은 <수자타 스투파>,

깨달음을 이루시기 전에 오르신 <전정각산(前正覺山)>이 있습니다.

 

 

<붓다가야 마하보디대탑에서 절을 하는 티벳 수행자>

2. 고행

 

이번 시간에는 고행림을 살펴보겠습니다.

 

고행림은 8상성도 중 ‘설산고행상’의 배경입니다.

 

보통 눈 덮인 추운 산에서 고행하는 부처님 모습을 상상하는데,

붓다가야 고행림은 추운 곳이 아닙니다.

따뜻한 곳이기 때문에 고행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행은 오늘날에도 많은 종교에서 행하는 수행법입니다.

고행은 참는 것입니다.

욕망을 최소화하며 참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고행을 엄격히 수행하는 수행자는 큰 존경을 받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고행은 해탈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수행의 트랜드로 각광받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고행하신 전정각산 앞의 고행림>

3. 쾌락

 

고행의 반대는 쾌락입니다.

 

쾌락은 즐거움을 탐닉하는 것입니다.

식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 등

물질적, 정신적 가치의 욕망에 탐닉하는 것이 쾌락입니다.

 

고행은 우리가 윤회하는 것은 욕망에 중독되어 쾌락을 추구하는데 있으므로

욕망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욕망에 중독되면 얼마나 벗어나기 힘든지를

우리는 게임에 빠진 요즘 아이들을 통해 봅니다.

 

<전정각산 유영굴의 부처님 고행상>

 

4. 자이나교의 고행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 ‘자이나교’라는 유명한 고행자 그룹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물질’과 ‘영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바(jiva)’라는 참된 영혼이 있는데,

물질적 욕망을 탐하는 ‘업(業)’이 참된 영혼인 지바에 접착제처럼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업을 소멸시켜 참된 나인 지바가 순수한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해탈이라고 본 것입니다.

 

업을 소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행을 통한 열로 업을 태워버리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고행을 통해 욕망의 산물인 업을 태워버려 ‘지바’든 ‘아트만’이든

불변의 참된 자아가 드러나는 것을 추구했던 수행법이 바로 고행입니다.

 

<고행림에서 고행하는 부처님>

 

5. 부처님의 고행

 

고행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극단적인 고행법은 먹지 않는 단식(斷食)과 숨을 참는 지식(止息)입니다.

 

둘 다 부처님께서 주로 행하셨던 수행법입니다.

 

부처님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 드시고,

최소한의 호흡만 하면서 업이 소멸되어

참나가 드러나는 해탈을 위해 무서운 정진력으로 고행하셨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고행하셨는가 하면

고행했던 6년간 늘 죽음이 곁에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스스로도

‘나 이전에도, 나 이후에도 이보다 더한 고행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토로하셨습니다.

 

<고행상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무서울 정도로 처절한 <고행상>이

부처님의 진지한 고행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의 고행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갗은 아직 익지 않은 오이가 말라 비틀어진 것 같았으며,

수족은 갈대와 같았고, 드러난 갈비뼈는 부서진 헌집의 서까래와 같았으며,

척추는 대나무 마디와 같았다.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손을 들어 목을 만지면 몸의 털이 말라 떨어졌다.

해골이 드러나고 눈이 깊이 꺼졌으며 일어서려면 머리를 땅에 박고 쓰러졌다....
그러나, 오직 눈만은 깊은 우물 속의 별과 같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부처님의 몸은 고행으로 쇠약해졌지만,

해탈을 향한 무서운 신념에서 나오는 정진의 열정은

눈을 통해 별과 같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정각산에서 바라본 고행림 둥게스리 마을의 학교와 병원>

 

6. 고행림과 둥게스리 마을

 

고행림은 전정각산 입구 둥게스리 마을에 있는데,

오늘날 우리 나라 정토회의 법륜 스님이 세운

‘수자타 아카데미’라는 학교와 병원이 있습니다.

 

둥게스리 마을은 인도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 천민이 주로 살고 있는데,

부처님이 고행하셨던 장소에 학교와 병원을 세워

문맹과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려는 의도에서 세워졌습니다.

 

<전정각산을 오를 때 구걸하는 인도 아이들>

 

고행림과 전정각산 갔을 때

인도 아이들이 돈을 구걸하기 위해

“1루피”하면서 무섭게 달려들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무지와 가난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것을 부처님 고행림에서 느꼈습니다.

 

부처님이 고행하신 유서 깊은 마을인 둥게스리 마을 사람들이

가난과 무지에서 깨어나서 우뚝 설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