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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 순례

인도 불교 성지 순례(4) - 붓다가야 수자타 스투파, 전정각산

by 아미타온 2024. 1. 7.

<인도 불교 성지 순례(4) - 붓다가야 수자타 스투파, 전정각산>

 

<부처님이 목욕하신 네란자라 강과 전정각산>

 

1. 고행의 포기와 명상의 길

 

부처님은 6년 고행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구하는 해탈의 길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몸을 괴롭히는 고행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 <농민의 날> 행사 때 명상에 들었던 장면을 생각하셨습니다.

 

헐벗은 농민들이 땅을 갈고, 땅 속의 벌레를 새가 잡아먹는 모습을 보며

고통 속을 헤매는 중생들에 대한 깊은 연민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나무 아래 앉아서 생사윤회의 문제에

깊은 의문을 품고 명상하며 사유했던 그 때를 떠올리셨습니다.

 

부처님은 그 때처럼 고행을 포기하고 사유와 명상을 통해

생사윤회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네란자라 강과 강 건너편 부처님 깨달음의 성지, 붓다가야>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자 부처님의 치열한 고행을 존경하며 함께

수행했던 5명의 고행자 그룹은 부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 5명의 고행자 그룹이 나중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법을 설하는 초전법륜의 5비구가 됩니다.

 

아무튼 부처님은 극도의 고행으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비틀거리며 고행림 근방의 네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셨습니다.

 

목욕을 한 후 몸이 상쾌해짐을 느꼈습니다.

몸은 상쾌했지만, 오랜 단식으로 힘은 없고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붓다가야 우루벨라 마을의 수자타 스투파>

 

2.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

 

이 때 부처님을 발견하고 기력을 차릴 수 있도록

우유죽을 공양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바로 ‘수자타’라는 소녀입니다.

 

6년을 고행하신 부처님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을 겁니다.

단순히 한 두끼의 식사로 체력을 회복하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체력을 회복하는데, 최소한 몇 주가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수자타 마을의 작은 학교, 수자타 아카데미>

 

수자타는 붓다가야 우루벨라 마을 촌장의 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착하고 연민심이 넘치는 소녀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을 발견하고 부처님에 대한 깊은 공경심을 갖게 되었기에

부처님께서 체력을 회복하실 수 있도록 꾸준히 공양 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으시고 체력을 회복하셨습니다.

 

나중에 부처님은 당신이 받으신 공양 중에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이 으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부처님께서 체력을 회복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한

마지막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을 드린 공양이기 때문입니다.

 

<수자타가 살던 우루벨라 마을>

 

3. 수자타 수투파와 공양의 의미

 

훗날 붓다가야 우루벨라 마을을 방문한 아쇼카 대왕은

수자타의 공양의 가치를 알고 큰 스투파(탑)을 세웠습니다.

 

지금도 수자타 집터에는 그 스투파가 남아 있습니다.

그 스투파를 보며 부처님에 대한 공양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쇼카 대왕이 세운 수자타 스투파>

 

우리는 수자타처럼 직접 부처님을 친견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에 가서 꽃과 향, 쌀과 돈 등을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상이나 불법을 수행하는 스님들께 공양올립니다.

 

이 공양으로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과 대중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며 도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붓다가야에서 본 인도 소녀>

 

공양은 부처님에 대한 공경과 흠모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누군가를 공경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소중한 사람을 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공양 또한 이와 같은 공경과 사랑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공양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부처님을 향한 공경과 사랑의 마음을 공양으로 잘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우루벨라 수자타 마을과 전정각산>

 

4. 전정각산

 

수자타의 공양으로 체력을 회복하신 부처님은 이제 명상하실 곳을 찾으십니다.

명필이 붓을 가린다고 수행자에게 수행터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부처님은 고행을 포기하고 새로운 수행의 길인

명상과 사유를 통해 반드시 깨달음을 얻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일 먼저 생각한 곳이 전정각산입니다.

 

부처님 깨달음 직전에 오르셨다고 해서

전정각산(前正覺山) 이라고 부릅니다.

 

<전정각산>

 

전정각산은 작은 바위산입니다.

 

상당히 척박해 보이고,

나무가 별로 없어 생기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직접 올라 보았는데,

마치 고행자들의 뼈만 남은

앙상한 몸처럼 나무가 없이 암석으로 이루어진 작은 산이었습니다.

 

<전정각산 유영굴에 모셔진 부처님 고행상>

 

5. 유영굴

 

부처님은 전정각산에 올라 산 중턱의 작은 굴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굴이 깨달음을 이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임을 보시고

네란자라 강을 건너 현재 마하보디사원이 있는 보리수나무 아래로 향하셨습니다.

 

<전정각산 유영굴에서 슬피 우는 용>

 

그 때 그 굴에 있던 용이 크게 아쉬워하며 슬피 울었고,

부처님은 그림자만 남기고 가셨다고 해서 ‘유영굴(留影窟)’이라고 합니다.

 

현재 유영굴에는 티벳 사찰이 세워져서 유영굴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유영굴 안에는 금빛으로 된 부처님 고행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6년 고행을 하시고 겨우 체력을 회복하고 앙상한 몸으로

유영굴에 올라와 새로운 수행터를 찾으셨을 부처님의 모습이 연상 되었습니다.

 

<전정각산 유영굴에서 바라본 부처님의 길(붓다로드)>

 

6. 붓다로드

유영굴 앞은 탁 트여 있습니다.

 

고행림과 함께 네란자라강 너머

마하보디사원으로 이어지는 전망을 보며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위해 걸으셨던 진정한 부처님의 길인

붓다로드(Buddha-road)를 생각했습니다.

 

<고행림에서 전정각산으로 이어지는 붓다로드>

 

깨달음을 향한 부처님의 긴 수행 여정을 생각하며

제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전정각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