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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2) 띳싸 비구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1. 6.

 

< 법구경(2) 띳싸 비구 이야기 >

 

<붓다가야에서 공양하는 티벳 비구 스님>

 

 

부처님께서 제따바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때,

거만한 띳사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띳사 비구는 부처님의 아버지인 숫도다나왕의

누이 동생의 아들이었으므로

세속적인 인연으로 보면 부처님의 고종 사촌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출가하였는데,

매우 뚱뚱하여 띳사(뚱보) 라고 불리웠다.


대체로 나이가 많이 든 다음에

가한 비구들은 명예에 약한 것이 보통인데,

띳사 비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어른 대접 받는 것을 좋아해서

다른 비구들이 자신을 위하여 심부름도 해주고,

공손하게 처신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수도원의 법당 한가운데서 앉아서

여러 비구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인사를 올리게끔 하였다.
 
어느 날 여러 비구들이 멀리서 부처님을 뵈려고 왔다가

법당에 당당하게 앉아 있는 띳사 비구를 보았다.


그 비구들은 그의 당당한 태도를 보고 이 비구가

부처님의 위대한 제자 가운데 한 분일 것이라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그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겠노라고 제의하자

띳사는 당연하다는듯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중에 좀 까다로운 비구가 있어서 띳사 비구에게 넌저시 물었다.


"테라(장로)께서는 안거를 몇 해나 보내셨습니까?"


띳사 비구가 대답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출가했기 때문에

아직 안거를 보낸 적이 없소."
 
이 말은 그가 비구로서 아주 초보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므로

질문을 던진 비구가 그를 꾸짖었다.


"이 오만하고 늙은 비구여!

그대는 자만과 어리석음으로 가득차 있구려.
모든 위대한 선배 비구들 중에서 당신처럼 행동한 사람은 아무도 없소.
당신은 우리들이 봉사하겠다고 하였을 때 침묵으로서 응락했고,

그러고도 양심의 가책을 맏지 않았소.
아마 당신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은 수행이 높은 위대한 비구들의 종이 될 자격도 없소."
 
이렇게 치명적인 모욕을 당한 띳사는 분노를 참고 되물었다.


"당신들은 누구를 뵙기 위하여 여기에 오셨소?"


"우리는 부처님을 뵙기 위해 여기에 왔소이다."

 

띳사는 분노를 표시하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곧 알게 될 것이요.
출가한 횟수에 따라서 존경을 받는 이 계급 제도는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이오.
나는 이 계급 제도를 타파하고야 말겠소."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부처님에게

이 일을 하소연하기 위하여 그 곳을 떠나갔다.
그것을 본 비구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띳사를 따라갔다.


그리하여 띳사와 비구들은 함께 부처님께 예를 올렸고,

나란히 빈 자리에 앉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띳사에게 왜 그렇게 우울한지 물으시었다.

그러자 띳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부처님이시여,

저 비구들이 저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띳사여! 그렇다면 묻겠다.

그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 때 저는 법당 한 가운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면, 너는 저 테라들이 법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겠구나?"


"예! 보았습니다."


"그 때 너는 어떻게 저들을 맞았느냐?

일어나서 저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먼저 건넸느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세면 도구 등을 챙겨주었느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음료수를 가져다 주었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고,

다리를 주물러주었느냐?"


"부처님이여,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띳사를 꾸짖으셨다.


"띳사여! 너는 저 테라들에게 이 같은 봉사를 했어야 마땅하다.
이같은 봉사를 하지 않으면서 법당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
띳사여, 꾸짖음을 받을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다.
이제 여기 함께 온 테라에게 네 행동에 대해 용서를 빌도록 하여라."
 
그러자, 띳사는 승복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지만, 부처님, 저들은 저에게 욕설을 하였습니다.

저는 저들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띳사가 고집스럽게 자신의 뜻을 인정하지 않자,

옆에 있던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비구는 억지가 너무 심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띳사 비구의 이런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라.
그는 과거 전생에도 수없이 이 같은 행동을 했었느니라.
그렇지만 비구들이여, 이런 띳사 비구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언짢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지녀서는 안되느니라.
오히려 애정을 가지고 그를 정성스럽게 보살펴주며 용서해주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그럴 때만이 원망하는 마음은 그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 두 편을 읊으시었다.

"그는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하여
증오를 품고 있으면
증오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는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해도
증오를 품지 않으면
증오는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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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티벳 스님들의 공부 모습>


1. 승가의 질서와 인간관계

 

오늘날 대부분의 인간 관계에서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존중을 받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신분, 계급 등이

나이에 우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목적하는 바가 뚜렷한

조직체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는 들어간 학번, 군대는 들어간 군번,

친족은 친족간의 촌수, 회사는 직급에 의하여
질서 유지를 위하여 연장자라 하더라도

상위의 학번, 군번, 친족, 직급에는 그에 맞는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의 승가는 어땠을까요?


다양한 신분, 나이, 출신의 사람들로

수천명 수만명으로 승가 집단으로 늘어나면서
효율적인 수행 환경과 교단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어떤 기준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승가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분명한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이었으므로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이 가장 존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승가에 입문한 횟수

(얼마나 더 공부를 했느냐)에 맞추어 서열이 결정되습니다.

부처님이 늦게 출가한 일곱 왕자가

이발사 출신의 우팔리에게 선배로서 예를 갖추게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군대처럼 군번에 따른 강압적이고 철저한 질서는 아니었겠지만,
어리더라도 승납이 많으면 존중과 대접을 해주고 

연장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띳사 비구는 세속에서는 부처님의 사촌 형제간이었고, 

늦게 출가를 하여 나이가 많은 비구였습니다.


그는 고귀한 가문이라는 자부심과 나이에 대해

존중받기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아주 강한 승려였습니다.


대중들이 자신에게 대접을 안해주면 화를 내고,

일부러 법당에 가서 어린 비구들의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등 
자의식이 강해서 인격 형성이 원만하지 않은 비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함께 지내던 여러 비구들의 미움을 받았을 것이고, 

다른 곳에서 안거를 지냈던 비구들과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띳사 비구 문제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먼저 띳사 비구의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다른 곳에서 비구가 왔을 때 친절하게 인사하고

존중하는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에 대해 야단을 치셨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사회성에 맞는 예의와 친절이

얼마나 중요한 것에 대해 각성하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인도 녹야원에서 예배하는 비구 스님>

 

2. 자비

 

그리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이러한 띳싸 비구에 대해서도

원망과 미움으로 대응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동료 수행자의 어리석음과 잘못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가엾이 여기고 그가 잘못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오히려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룸비니에서 예불을 올리는 태국 비구니 스님>

 

3. 분노의 해악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거나 장작을 넣으면 더 심하게 타오릅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끄기 위해서는 연료를 더 이상 투입하지 않거나,
아니면, 불과는 다른 성질을 가진 물을 부어서 불을 꺼야만 합니다.


분노는 활활 타오르는 불과도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같은 분노로 맞불을 놓아서는

분노의 불길은 꺼지지 않고 더욱 세게 타오를 것입니다.


원망과 미움의 마음을 멈추는 것은 연료를 더 이상 투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상대를 가엾이 여기고 용서하고 정성스럽게 대해주는 것은

자비의 물을 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해탈이란 탐욕,분노,어리석음에서 벗어남이라고 하셨습니다.
경전에는 탐진치 삼독 중에서 분노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많이 등장합니다.


"분노는 자신이 지은 모든 공덕을 파괴한다."는 말씀처럼
상호간에 좋은 관계성을 파괴하는데 있어서 분노의 해악은 참으로 크다고 생각합니다.
 
분노는 자기 고집과 자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활활 타오릅니다.
상대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그 모욕감을 느끼는 강도가 강할수록

자기 고집과 자의식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아상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띳사 비구는 이러한 자기 고집과 자의식, 아상, 게다가 뒷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면이 주변과 자주 마찰을 일으키고

대중의 분위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자신이 무엇에 고집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생각과 관념을 고집하는지에 대한 자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각과 함께 자신의 주변과 원만한 사회성을 익혀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