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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3) 맛타꾼달리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1. 8.

<법구경(3) 맛타꾼달리 이야기>


부처님께서 제타바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때,
소년 브라흐민 맛타꾼달리가 진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한 일과 관련하여 게송 2번을 설하시었다.

 

<완주 송광사 일주문>


1
 
아딘나쁩바까는 사바티에 사는 *브라흐민으로서

아주 인색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브라흐민 : 가정 생활을 하는 브라만 계급의 세속 사람)


그는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남에게 주지 않았고,

무엇이든 일단 자기 손에 들어오면 다시는 내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는 이 아들에게서 큰 기쁨을 얻고 있었으므로, 아들을 매우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의 생일이 다가오자 그는 생일 선물을 하나 주고 싶어졌다.


그가 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금귀걸이였는데,

그는 금세공사에게 이 일을 의뢰하면 세공비가 들 것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직접 금귀걸이를 만들어서 아들에게 주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매우 조잡했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그의 아들은
<조잡한 귀걸이를 달고 다니는 아이>라는 뜻의

"맛타꾼달라"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맛타꾼달리가 16살이 되었을 때 그는 그만 황달에 걸리고 말았다.
이때 아이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빨리 치료를 서두르라고 권했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의사에게 가면 치료비를 달라고 할게 아니오!
당신은 도대체 우리 집 살림이 축나는 것은 생각치도 않는구려.
염려말아요! 내가 살림을 축내지 않고 이 일을 잘 처리할테니까."

아딘나쁩바까는 그날로부터 여러 곳으로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오랜 시간을 걸려 황달에 대한 여러가지 치료법을 배웠다.


그런 다음 그는 배운대로 약을 지어 사랑하는 아들에게 먹여 보았다.
그렇지만 약효는 나타나지 않고 아들의 병은 더욱 깊어가는 것이었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아무리 인색한 그도 아들을 의사에게 데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때 아들의 병세는 이미 악화될 때로 악화되어 손을 쓸 수도 없었고,
의사들은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를 맡았다가 그가 죽기라도 하면

문제가 생길까 싶어 핑계를 대며 아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마침내 아딘나쁩바까는 아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만약 아들을 집에 두었다가 죽게 되면 아들 조문을 온 사람들이

자기 집에 재산이 많다는 것이 알려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문 앞의 정자에 내놓았다.
아들이 죽게 되면 바로 그 정자에서 화장시켜버릴 셈이었다.

인색한 브라흐민이 아들을 정자에 내놓던 그날,

부처님께서는 깊은 선정에 들어 계시면서
어느 중생이 지금 가장 불법을 받아들일 인연이 잘 익었는지를 관찰하고 계시었다.


그 결과 사밧티에 사는 아딘나쁩바까의 아들인 맛타꾼달리가

죽음을 앞두고 집앞에 버려져 있슴을 아시었다.


부처님께서는  두 아버지와 아들이 불법과 인연이 있슴을 아시고
제자 비구들을 데리고 사밧티 성안으로 탁발을 하러 가시는 길에

먼저 맛타꾼달리가 누워 있는 곳으로 가시었다.

이때 소년 맛타꾼달리는 얼굴을 자기 집 쪽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오시어 자신의 등 뒤에 서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소년을 향해 밝은 광명을 놓으셨다.


그러자 소년은 의아해하면서 등을 돌렸고,

곧 부처님께서 자신의 등 뒤에 와 계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맛타꾼달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어리석은 아버지 때문에 그동안 부처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청정하고 거룩하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지도 못했고,

부처님의 설법은 듣지도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몸은 물론이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에도 힘이 듭니다.
그러니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처님과 담마(법)와 승가에 마음을 다해 귀의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뢴 뒤에 소년은 곧 아주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 마음은 이제 아주 평화롭고 고요하게 잘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운 눈길로

소년의 간절한 표정을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시었다.


"맛타꾼달리야! 너는 그것만으로 네가 할 일을 충분히 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뒤 부처님께서는 그 자리를 떠나셨는데,
소년 맛타꾼달리는 부처님과 제자분들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오롯하고 한결같은 믿음을 지닌채 죽었다.


그는 죽자마자 곧바로,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깨어나

맑은 정신을 지닌채 33천(天)에 태어났다.

 

<완주 송광사 천왕문>

2

한편, 아버지 아딘나쁩바까는 죽은 아들을 화장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부터 매일 같이 화장터에 나와

"아들아!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하고 소리치면서 울었다.


이 때 천상에 태어난 아들 맛타꾼달리는

자기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기가 무슨 공덕을 지었기에
이와 같이 천상에 태어나 부귀를 누리는지 생각해보니

부처님께 오롯한 마음으로 귀의한 공덕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는 또 인간계에 있을때의 자기 아버지가 지금 화장터에 와서

매일 자기를 부르며 울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생전에 인색하여 약 한첩 제대로 지어주지 않던 아버지가

이제는 저렇게 울면서 나를 그리워하며 울고 계시니

내 있는 힘을 다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바꿔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장신구와 금은 보화로 치장한 천인의 옷을 입고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맛타꾼달리는 전생의 아버지인 아딘나쁩바까가 울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숲속에 들어가 손을 휘저으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딘나쁩바까는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

"빛나는 금귀걸이에 온갖 장신구로 장엄한 젊은이여!
무엇이 그대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기에,

이 숲 속에서 손을 휘저으며 홀로 울고 있느냐?"


맛타꾼달리가 대답했다.


"저에게는 황금으로 된 빛나는 수레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수레에는 바퀴가 없답니다.
저는 그 수레에 걸맞는 두 바퀴를 얻고자 하지만 도무지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아딘나쁩바까가 말했다.


"젊은이여! 그대는 어딘지 모르게 내 아들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그러나, 내 아들은 이미 죽어서 찾을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니 나는 내 아들에게 해주는 셈치고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대가 원하는 수레바퀴를 말해다오.
금이든 은이든 그 어떤 보석이든 나는 아끼지 않으련다.

내가 그대의 수레에 알맞는 바퀴를 마련해주겠다."

아버지의 이런 대답을 이끌어낸 맛타꾼달리는

그렇다면 얼마나 큰 수레바퀴를 만들어 주실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젊은이가 원하는 크기만큼의 수레바퀴를 만들어주겠다고 대답했고,

이에 맛타꾼달리는 말했다.


"제가 원하는 바퀴는 해와 달입니다.

그것들을 제 수레에 끼울 수 있게 해 주십시요."


맛타꾼달리는 게송으로 읊었다.

해와 달은 어울리는 한 형제
내 수레는 순금으로 된 것
내 수레에 해와 달을 바퀴로 단다면
수레는 찬란하게 빛날텐데!

이 소리를 들은 아딘나쁩바까는 벌컥 화를 내었다.


"젊은이여!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너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구나!
설사 네가 죽을 때까지 그것을 구하려고 해도 너는 끝내 그것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젊은이로 변장한 아들은 되물었다.


"아저씨!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있는 것을 구하려고 하는 것과,

있지도 않는 것을 구하려고 우는 것 중에서 어느 편이 더 어리석겠습니까?"


맛타꾼달리는 게송으로 읊었다.

해와 달은 가고 오는 것을 볼 수도 있고
이편 저편에서 관찰할 수도 있거니와
당신이 그토록 찾아 마지 않는 아들은
이미 죽어서 다시는 찾을 수 없는 몸,
그런데 나는 해와 달을 가지려고 울고
당신은 죽은 아들을 찾으려고 웁니다.
자! 이 둘 중에서 오느 편이 더 어리석을까요?

아딘나쁩바까는 젊은이의 말을 듣는 순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는 외쳤다.


"젊은이여! 그대의 말에는 진리가 담겨 있구나!
아,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달을 따 달라고 우는 것처럼,

나는 이미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오기를 원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브라흐민 아딘나쁩바까는

아들의 죽음이 주던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난 큰 기쁨으로

젊은이에게 찬사를 보내고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슬픔의 불길 위에 있었네.
그 불길은 마치 기름을 계속 끼얹는 듯 했었네.
그런데, 그 불길 위에 물의 벼락을 내린 젊은이여!
이제 내 모든 슬픔은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구나!
내 심장에 박혀있던 슬픔이라는 화살을 뽑아준 젊은이여!
나는 죽은 것과도 같았던 사람이었거늘
그대는 아들로 인한 내 슬픔을 깨끗이 없애 주었구나!
이제 내게 있었던 비탄의 화살은 뽑혔다.
그리하여 나는 고요하고 평온하다.
그대의 말을 듣고나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슬프지도 않으며 울지도 않는다.

이렇게 읊고 나서 그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천인인가, 건달바인가, 혹은 천왕인가?

그대는 진정 누구인가? 어느집 자제인가?"


그러자, 맛타꾼달리는 자신이 바로 전생의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딘나쁩바까는 아들이

천상에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선뜻 믿기지 않았다.

"오, 네가 맛타꾼달리란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네가 생전에 공덕 짓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집에서나, 혹은 밖에서나, 많건 적건간에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또 계를 받아 지니면서 오후에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본 적이 없다.
그렇거늘 다른 어떤 공덕이 있어 네가 천상에 태어났다는 말이냐?"

맛타꾼달리는 자신이 죽기 전에 부처님을 향한

진심어린 공경과 오롯한 믿음을 내고 죽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선업 공덕이 있어서 천상에 태어났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권유하였다.

"아버지! 부처님과 담마와 승가에 진심으로 귀의하십시요.
그리고 다섯 가지 계를 잘 받아 지니고,

그 계를 손상시키거나 깨뜨림이 없이 지켜주십시요.
이 시간 이후에는 생명이 있는 것은 절대로 해치지 말고,

남이 주는 것은 절대 갖지 않으며,
한 아내에 만족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정신을 취하게 하는 것을 먹거나 마시지 마십시요."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는

몸과 마음 전체에 밝은 기쁨이 차오르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알았다! 아들아!

나는 너의 충고를 따르리라.

너는 나의 아들이자 스승이다.
이제 나는 위없는 스승인 부처님게 귀의하고,

비교될 수 없는 담마에 귀의하고, 인간 중의 으뜸인 승가에 귀의하겠다."

그러자, 아들 맛타꾼달리는 기뻐하며 아버지에게 권하였다.


"아버지께서는 창고 안에 많은 재물을 갖고 계십니다.
곧 부처님을 찾아뵙고 공양을 올리도록 하십시요.
그리고,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들으시고, 또 많은 질문을 하도록 하십시요."


이같이 말한 다음에 그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완주 송광사 천왕님>

3

 

브라흐민 아딘나쁩바까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아주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자기 아내에게 자기가 겪은 것을 이야기하고 나서 말했다.

그리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 비구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듣고 싶다고 이야기하였다.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지체하지 않고

제타바나 수도원에 가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오늘은 제자 비구들을 거느리시고 저희 집에 오셔서 공양을 받으십시요."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침묵으로서 그의 청을 허락하시었다.

그는 부처님의 허락을 받자마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부처님께서 오셔서 제자 비구들과 함께 공양을 드시고 따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이 때를 기해서 아딘나쁩바까는 부처님께 나아가 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고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이나 비구들에게 직접 공양을 올리지도 않았고,

존경의 예를 표한 적도 없으며,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고,

계를 지킨 바도 없었는데, 다만 부처님을 믿고 귀의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브라흐민이여!

어찌하여 그런 질문을 하느냐?

그대의 아들이었던 맛타꾼달리가 그대에게 이미 말해주지 않았더냐?"


아딘나쁩바까는 부처님께서 그 일을 알고 계신데에는 깜짝 놀랐으나,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그것은 언제적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의 잔잔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브라흐민이여!

그대는 아직도 믿지 못하는가?

그대의 아들 맛타꾼달리는 다만 여래를 믿었던

공덕만으로 천상에 태어났거니와,

그런 예는 수백 수천을 넘어 헤아릴수가 없느니라."

 

부처님과 아딘나쁩바까 사이에 이러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대화가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혹 이해했더라도 잘 믿으려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천상에 있는 맛타꾼달리를 지상으로 직접 불러 내리셨다.

 

그러자, 천상의 사람인 맛타꾼달리는

장엄하고 화려한 차림으로 천상에서 내려와

부처님 앞에 나아가 공손하게 예를 올린 다음 한쪽 자리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천인이여!

너의 아름다움은 지극히 뛰어나 사방을 비추는 샛별처럼 영롱하구나.

여래는 너에게 묻는다.

너의 천인으로서의 힘과 영광은 어디에서 온 것이냐?

인간으로 있을 때 네가 무슨 선업 공덕을 지었기에 이러한 영광을 성취한 것인가?"

 

천인 맛타꾼달라가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부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존경하여 평온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선업 공덕으로 오늘의 이 영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진정 그러한가?"

 

"진정 그렇습니다."

 

이같은 부처님과 맛타꾼달라간의 대화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탄복해마지 않았다.

대중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커다란 환희심을 내어 감동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부처님의 거룩하신 음성이 그들의 귓전에 종소리처럼 울려 왔다.

 

"그대들이여! 

사람의 마음이 모든 행동의 근본이 되느니라.

착한 행동이거나 혹은 악한 행동이거나간에

그 행동에는 언제나 마음이 앞서 가는 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일으켜 행동한 결과는

그 행동하는 사람에게서 분리되지 않고 그를 따르느니라.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물체의 형상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진리의 왕이신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말씀하심으로써 끊어진 것을 잇고,

이은 것을 옥쇄로 결인하여 봉인하시듯이

모든 법문을 마치신 다음 마지막으로 게송으로 읊으시었다.

 

마음이 모든 법을 이끌고

마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마음에 의해서 모든 행위는 지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행복이 뒤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떠나지 않듯이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맛타꾼달리와

그의 전생의 아버지 아딘나쁩비까는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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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대웅전 부처님>

 

1.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 세계

 

선가에서 "바보가 되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리석은듯 보이지만,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해서

스승의 가르침대로 순종해서

잘 하는 측면에서 바보가 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과 기도는 선가의 바보처럼

마음이 순수한 사람이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측면에서 보자면 아들 맛타꾼달라는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인색함으로 불행한 죽음을 앞둔 맛타꾼달라지만,

부처님을 향한 순수하고 깨끗한 귀의와 믿음의 마음을 내었습니다.

 

죽기 전에 인색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에 대한 맑고 순수한 믿음의 마음,

즉, 대긍정의 마음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계모에게 버림 받아 무인 고도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자신과 같은 불행한 자식이 없기를 바라는 자비로운 서원을 발하면서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 관세음보살님의 전생처럼 말입니다.

 

<법구경> 두번째 장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왜 죽기 전의 순간에 이렇게 부처님께 믿음을 내고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는가 입니다.

 

<아미타경>에 보면 죽기 전에 아미타 부처님을

10번만 지성으로 외우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죽기 직전 10번 염불을 하면 극락 왕생할 수 있다는 정토 경전의 가르침 또한

<법구경>의 어린 아들의 죽음과 천계 환생 이야기와 유사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아미타경>의 가르침을 알고 배웠다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현생에 대한 집착과 원망, 죽음 직전의 고통 상태에서

염불하는 평온한 믿음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순수하고 착한 마음 바탕이 없으면

죽기 직전에 평온함을 유지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완주 송광사 환희 부처님>

 

2. 환희와 기쁨

 

믿음은 환희이고 기쁨입니다.

보살이 닦아야 할 4가지 큰 마음인 "4무량심"중의 하나가 "희심(喜心)"입니다.

 

옛날 스페인에 갔을 때 세비야 성당 히랄다탑을 올랐던 때가 있습니다.

세비야 성당은 예전에는 이슬람 교당이었습니다.

 

세비야 히랄다 탑에 알라신에 대한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을 치러 올라가던 사람이 걸었던 길을 "환희의 길"이라고 합니다.

 

내가 믿고 의지할 것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듯이,

내가 믿고 의지할 것이 있고 그 믿음의 대상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환희롭고 기쁠 것입니다.

 

천상 세계는 선업을 닦은 중생들이 가는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아직 법에 대한 안목은 열리지 않았지만,

죽기 전에 부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으로 환희와 기쁨이 있었기에

맛타꾼달리는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맛타꾼달리는 천상에서 내려와서 부처님의 설법으로

자신이 왜 천상에 태어났는지에 대한 지성적 납득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불법승 삼보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성자의 지위의 첫 단계라고 하는 "수다원 과"를

단 한번의 설법만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천인>

 

3. 인색함

 

그리고, 인색한 아버지를 생각해봅시다.

     

그의 아버지는 많이 인색하기는 했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통찰할 수 있었던 지성의 바탕이 있었고, 

비교적 번뇌에 깊이 물들지 않은 깨끗한 마음밭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이란 가슴 아픈 직접 경험 속에서 

마치 죽은 아들을 찾기 위해 겨자씨를 찾으러 다녔던 여인의 자각과 동일한

시스템으로 자각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한가지 더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인색함'입니다.

이 아버지는 정말 인색합니다.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아들에게까지도 돈을 쓸때 벌벌떠는 인색함 입니다.

 

그 결과 돈이 아까와 자신이 만든 조악한 귀걸이로 자식이 비웃음을 받게 했고,

아들이 황달이란 병이 걸렸는데도 인색함으로 인해 치료할 때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이 공개될까 두려워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집 밖에서 죽게 했습니다.

 

인색은 탐욕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지나친 탐욕이 극도의 인색함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인색함' 이라는 탐욕이 얼마나 큰 번뇌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자식까지 죽게 만드는 무서운 인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불교에서 인색함에서 벗어나 보시를 행하는 자비의 마음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인색함의 마음 세계가 악한 업의 과보를 낳고,

청정한 믿음 세계가 선한 업의 과보를 낳는 장면을 보면서

불교에서 마음을 중요시하는 이유와 업의 인과를 잘 통찰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