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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4) 깔라악키리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1. 10.

<법구경(4) 깔라악키니 이야기>

 

<구례 화엄사 매화>

 

부처님께서 제타와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한 여인이 원한을 품음으로써

계속 고통의 순환을 겪은 일과 관련하여 게송 5번을 설법하시었다.

 

어느때 사바티 성 내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아이가 없는 것을 걱정한 나머지

아이를 갖게 하려고 다른 여인을 남편과 맺어 주었다.

 

그래서, 두 아내가 같은 집에서 한 남폄과 같이 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막상 두번째 부인이 들어와 아기를 가질 조짐을 보이자

첫번째 부인은 마음속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새 부인이 아들을 낳게 되면 자기에 대한 남편의 애정도 식게 되어

자기는 이 집안의 종처럼 살아갈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 부인은 두번째 부인이 임신할 때마다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여 낙태를 시켰다.

 

첫번째와 두번째 아이까지는 새 부인이 눈치를 못채서

어찌어찌하여 낙태를 시킬수 있었다.

 

그렇지만 세번째 아기는 그렇게 못하여

두번째 부인도 자기의 두번에 걸친 낙태가

모두 첫번째 부인의 소행임을 알게 되었다.

 

이 세번째 출산이 실패하면서

두번째 부인은 결국 아기를 낳다가 아기와 함께 죽고 말았는데,

이 때 산모는 본부인에 대한 큰 증오심을 품어서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말리라고 다짐했다.

 

한편, 둘째 부인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에 이르러서는

남편도 첫번째 부인의 잔악한 행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남편은 분노하여 첫번째 부인을 마구 구타했고,

이 때문에 첫번째 부인은 죽고 말았다.

 

이렇게 원한으로 얽힌 두 여인은

다음 생에는 같은 집안에 태어나,

첫번째 부인은 암탉이 되고, 두번째 부인은 고양이가 되었다.

 

원한은 이어져 암탉이 알을 낳을 때마다

고양이가 와서 먹어 버렸고, 결국은 암탉까지 잡아 먹어버렸다.

 

암탉은 반드시 이 원수를 갚으리라고 맹세하고

죽어서 표범이 되었으며,

고양이는 죽어서 암사슴이 되었다.

 

이번에는 표범이 세 번이나 암사슴의 새끼를 잡아 먹었다.

 

그렇게 되자 암사슴이 표범에게 원한을 품었다.

 

암사슴은 죽어서 여자 귀신(악키니)이 되었고,

표범은 죽어서 사바티에 태어나 여자 아이로 태어났다.

 

여자아이는 장성하여 결혼을 하였고, 첫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여자 귀신은 여인의 친구로 변신을 하고

출산을 축하한다며 접근하여 마침내 아들을 죽였다.

 

두번째 출산시에도 여자 귀신의 복수로 인하여 아들이 죽자,

이를 이상히 여긴 여인은 세번째 출산시에는

친정 식구들을 불러서 아기를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자 귀신이 나타났고,

여인은 아들을 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귀신은 한사코 여인을 추격했다.

 

그리하여 도망치던 여인은 결국

부처님이 계시는 제따와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설법을 하고 계시었는데, 

여인은 부처님 앞에 아들을 내려놓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한편, 여인을 뒤쫓던 귀신은 수도원 앞에 이르러

정문을 지키고 있던 신장에게 제지당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증오심에 몸을 떨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아난 존자에게 분부하시어 귀신을 들어오게 하시었다.

 

부처님께서는 귀신과 여인에게

그들의 과거 전생 이야기를 이야기해주심으로써

어떻게 해서 원한이 다른 원한으로 이어졌으며,

그 원한이 또 다른 원한으로 이어져 순환하게 되었는지를 잘 밝혀 주시었다.

 

그리고 나서 두 중생간에 서로간에 증오심을 버릴 것을 설법하시고,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으셨다.

 

실로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써 원한을 풀 수는 없는 것

오직 용서로서만 그것을 풀수가 있나니

이것은 영원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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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천은사 홍매화>

 

1. 끈질긴 원한의 윤회

 

참으로 끈질긴 원한의 윤회입니다.

 

"원한은 원한으로서 풀 수 없다.

원한은 원한을 버림(용서)으로서만 풀수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은 불교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많이 들어온 말씀입니다.

 

원한은 복수를 낳고,

그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원한은 갈수록 깊어가고 덫이 되어

서로의 관계를 원한과 복수의 사슬에 묶어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이 "원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미움과 증오의 다양한 형태 중에서도

가장 무서워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원한입니다.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합니다.

 

20년 전쯤 심은하 주연의 <청춘의 덫>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청순한 심은하가 원한과 복수의 화신이 되어 배신남인 이종원을 향해

"너! 아주 산산히 부셔버릴테야!"라고 눈물 흘리며 쏘아보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심은하는 의도적으로 유호정의 오빠이자 재벌집 상속자인 전광열에게 접근하고

전광열의 사랑을 미끼로 결국 이종원에게 덫을 씌우고 조여 가면서 결국 파멸시켜 버립니다.

 

원한의 덫에 걸려들면 인생 어떻게 되는지를 아주 잘 그려낸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구례 산수유 마을>

 

2. 용서와 자비

 

원한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원한 살만한 악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법구경>의 이야기는 본부인이 투기로 인해

후처의 자식을 의도적으로 죽임으로 생겼습니다.

 

심은하의 원한은 돈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배신하고

자식까지 팽개친 냉담함에서 생겼습니다.

 

따라서, 1차적으로는 원한 살만한

극악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지긋지긋한 원한은 생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과를 보고 극악에 빠지지 않도록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

원한의 덫과 늪에 빠지지 않는 가장 안전한 보호 장치입니다.

 

그런데, 원한으로까지 갈 일이 아닌 사소한 잘못인데,

뒷끝이 강하여 상대의 잘못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원한을 키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를 잘 보고 뒷끝 강한 상대와는 사귐을 멀리 하거나, 

그러한 상대에게는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또한 원한의 덫과 늪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서로 원한 관계에 어쩔수 없이

빠져들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구경>의 이 가르침을 떠올리며 원한의 사슬에 빠지면

같은 원한과 복수로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통찰해야 합니다.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는다.

원한은 오직 원한을 버리고 용서함으로서 풀릴 수 있다"

 

이 가르침을 수백번 수천번 읽고 기도하며

자신의 끈질긴 원한을 버리고 악업을 참회하며

자비심으로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