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도 불교 성지 순례

인도 불교 성지 순례(11) - 나란다 대학

by 아미타온 2024. 1. 21.

<인도 불교 성지 순례(11) - 나란다 대학>

<나란다 대학 터>

 

1. 지혜제일 사리불 존자의 고향, 나란다

 

지난 시간까지 마가다국의 수도로서

부처님께서 전법하신 왕사성의 죽림정사와 영취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란다 대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나란다 대학은 왕사성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나란다에 있는 불교 대학입니다.

 

나란다는 부처님의 상수(上首) 제자로 불리던

지혜제일 사리불 존자와 신통 제일 목련 존자의 고향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지혜 제일인 사리불 존자의 고향 마을에

인도에서 가장 큰 불교 대학이 조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란다 대학의 사원 터>

 

2. 세계 최고 최대의 불교 대학, 나란다 대학

 

나란다 대학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3세기에 이르는

긴 세월동안 스님들의 수행터이자 교육 기관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서기 5세기경 굽타 왕국의 왕의 적극적 후원 속에서

인도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서 유학 온 수많은 승려들로 크게 융성했습니다.

 

한창 때의 나란다 대학은 가로 10km, 세로 5km에

달하는 당대 세계 최대 규모의 대학이었습니다.

 

<법당터>

 

나란다 대학은 국제적인 명성이 있던 곳으로

인도의 승려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많은 승려들이 유학와서 공부했습니다.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의 주인공인 삼장 법사 현장

불법을 구하러 인도에 간 목적도

바로 나란다 대학에서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인 630년, 삼장 법사 현장은

유식 불교의 유명한 논서인 <유가사지론>을

공부하기 위해 인도 나란다 대학으로 떠났던 것이었습니다.

 

현장 법사는 그가 유학했을 때

나란다 대학의 학생수가 1만명,

교수의 숫자가 1,50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우리나라 신라의 혜초 스님도

나란다 대학에서 불법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란다 대학은 인도 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스님들도

공부하고 싶어했던 꿈의 대학이었던 것입니다.

 

나란다 대학은 불교를 중심으로

철학, 논리학, 의학 등의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슬람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나란다 대학 터>

 

그런데. 나란다 대학은 12세기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하여

불교를 박해하며 파괴되어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폐허 속에서 사리탑, 부도탑, 승방터 등이 발굴되어 남아 있는데,

당시의 1/10 정도만 발굴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얼마나 넓은지 한창 때의

나란다 대학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나란다 대학의 부처님 조각>

 

3. 구법의 열정과 치열한 공부

 

나란다 대학은 국적에 관계없이

입학이 허가된 대학이었다고 합니다.

 

학식이 높은 교수 스님의 구술 시험으로 입학이 결정되었고,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졸업이 허락되지 않아서

경쟁이 치열하고 공부의 수준이 높았다고 합니다.

 

나란다 대학을 둘러보면서 혜초 스님이나 현장 스님도

나란다 대학에 도착하여 입학을 허가받기 위해

인도말을 배우고, 구술 시험을 보며,

스승 밑에서 공부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 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산과 강과 사막을 넘어 도착했을 때

혜초스님이나 현장 스님이 나란다 대학 입구에서

얼마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까요?

 

입학 허가를 받아 환호하던 모습과

불법의 공부에 임했던 자세의 진지함이 어땠을까요?

 

그리고, 나란다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했을때의 감동은 어떠했을까요?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란다 대학을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란다 대학 승방터>

 

4. 공부와 지성의 종교, 불교

 

나란다 대학은 왕명으로 주변 100개 마을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물품을 나란다 대학에 보시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나란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 공부에 뜻을 둔 학승에게는

꿈의 대학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님들이 숙식하던 기숙사인 승방>

 

나란다 대학에 들어가면

불교가 얼마나 공부와 지성을 중시하는 종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신 사원터와

승려들의 기숙사가 있던 승방으로 나뉘어져 엄청난 규모입니다.

 

현재 발굴된 승방만도 11개이고,

그 승방도 단층이 아니라 4~5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로 10km, 세로 5km의 큰 규모로

탑과 법당, 강당, 승방이 들어서 있었다니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나란다 대학의 사리불 존자 스투파>

 

현재 발굴된 제일 큰 사원의 스투파(탑)는

사리불 존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리불 존자 스투파’로 불리고 있습니다.

 

곡식을 보관하던 보관 창고는

백제 무녕왕릉처럼 벽돌 돔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는 렌지 역할을 하던

독특한 불을 넣던 화덕 모양도 보았습니다.

 

불교 성지 순례지 중에서 나란다 대학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마하보디사원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입니다.

 

<인도의 불상>

 

5. 나란다 박물관의 불상

 

나란다 대학 박물관은 대승불교와 밀교의 전성기에 출토된

여러 보살의 신상이 많아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검은 돌에 조각된 수많은 팔로

중생을 구제하시는 관세음보살상이 유명한데,

정교하고 세련된 조각의 아름다움이

참 걸작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보살상이었습니다.

 

<인도의 불상>

6. 티벳 불교와 나란다 대학

 

12세기 이슬람교도에 의해 나란다 대학이 파괴될 때

나란다 대학의 불교 스님들이 경전과 논서를 갖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벳으로 망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티벳의 달라이라마는

“우리가 가진 불교 지식의 원천은 모두 나란다 대학에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티벳 스님>

 

티벳 불교의 공부, 교학 체계, 수행법 등이

나란다 대학의 전통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나란다 대학을 순례하면서

우리가 배우는 불법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수많은 승려들이 천년의 긴 세월을 깊이 고뇌하며

갈고 닦은 소중한 불법이 우리에게 전해져 있고,

우리는 이 불법을 잘 갈고 닦아

후대에 잘 전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보의 소중함, 승보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나란다 대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