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교 성지 순례(13) - 바이샬리>
1. 부처님께서 자주 칭찬하신 도시, 바이샬리
바이샬리는 인도 비하르 주 갠지스 강변 북쪽에 자리 잡은 도시입니다.
바이샬리와 맞닿은 갠지스 강 남쪽에 옛날 마가다국의 수도이자
현재 비하르 주의 주도(州都)인 파트나(파탈리풋트라)가 있습니다.
바이샬리는 부처님 당시 인도 고대 16개국의
교통과 무역의 요지에 자리잡아 크게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전제 국가였던 마가다국이나 코살라국과는 달리
바이샬리는 릿차비족, 밧지족 등 여러 씨족의 부족장(왕족)들이
민주적 형태의 공화제로 통치하던 독특한 도시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고대 바이샬리의 민주적 공화제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오늘날 인도 공화국의 국회 개원식에
항상 바이샬리의 갠지스강 성수(聖水)를 떠놓고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선진적 정치, 문화 전통의 바이샬리는
부처님께서 여러 번 칭찬하셨던 도시였습니다.
도시는 활력이 넘치고, 다양한 사상과 문화,
그리고 그 시대로서는 개방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2. 부처님과 바이샬리 인연
바이샬리는 부처님의 전법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어느 해 바이샬리에 극심한 가뭄이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 땅은 메말랐고 동물들과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전염병까지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바이샬리는 자이나교의 교조인 니간타 나타풋타가 태어난 곳이어서
자이나교의 세력이 왕성한 곳이었습니다.
바이샬리의 왕족들은 자이나교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다는
바라문과 수행자들을 섭외해서 기도도 하고 제사도 지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갠지스 강 건너 마가다 국에 계시던 부처님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소식을 듣고 바이샬리로 향하셨습니다.
부처님이 탄 배가 갠지스 강을 건너
바이샬리의 땅에 당도하는 순간 천둥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억수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이샬리의 시민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경탄했고 감사했습니다.
극악했던 가뭄이 끝났고 창궐하던 전염병도 사라졌고,
왕족들과 시민들이 부처님과 교단에 귀의했습니다.
3. 암바팔리 망고 나무 숲과 대림정사
한편, 부처님은 바이샬리의 귀의를 받고 나서 ‘암바팔리’라는
바이샬리의 유명한 기녀(기생)이 소유한 망고 나무 숲에 머무셨습니다.
암바팔리는 부처님을 만나 뵙고 크게 감동하여
부처님께 자신의 소유인 망고나무 숲을 보시했습니다.
그래서 이 망고나무 숲에 불교 교단의 중요한 세 번째 가람이 세워졌습니다.
바로 대림정사(大林精舍)입니다.
왕사성(라즈기르)의 죽림정사, 사위성(스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도량입니다.
대림정사에서 부처님이 머무시며 법을 설하시던 중각강당은
유마경, 열반경, 화엄경이 설해진 무대이며,
부처님께서 최초로 여인의 출가를 받아주신 역사적 장소입니다.
4. 아난존자 스투파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기억력이 가장 좋아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불리는 아난 존자의 스투파(탑)이 남아 있습니다.
부처님의 비서실장으로 30여년 부처님을 시봉하며 모셨고,
여인들의 출가 때 부처님께 간청드려 여인의 출가에 큰 공을 세운
아난 존자를 기념하기 위한 스투파(탑)입니다.
아난 존자는 120세 때 열반에 드셨는데,
아난 존자의 열반을 자기네 땅에서 모시려는
마가다국과 바이샬리 간의 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난 존자는 마가다국과 갠지스강 가운데에서 열반에 드셨고,
다비식을 마친후 두 나라가 사이좋게 유해를 나누어 갖고
사리탑인 스투파를 세웠다고 합니다.
한편, 바이샬리의 아난 존자 스투파를 지키는
아쇼카 석주의 사자상이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를 바라보고 있는 사자상은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면 두눈 부릅뜨고
부처님을 모시며 부처님을 지키려는 아난 존자의 마음 세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5. 열반을 향한 출발지, 바이샬리
언제나 부처님을 향해 두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을 모시고,
불법을 수호하는 사자와 같은 기상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불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실 때 고국인 카필라 성으로 가실 때
갠지스 강을 건너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안거를 머무셨다고 합니다.
바이샬리를 떠나 북으로 올라가실 때
“내가 이 아름다운 바이샬리를 보는 것이 마지막이구나!”라고
아쉬움에 젖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만큼 부처님께서 깊은 사랑과 기쁨을 주셨던 도시가 바이샬리 였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 때 부처님과 아난 존자와 암바팔리를 생각하며
특별한 감회에 젖었던 장소여서 기억에 남는 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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