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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4) 제1 법회인유분(2) - 걸식

by 아미타온 2024. 1. 28.

<금강경(4)  제1 법회인유분(2) - 걸식>

 

<걸식>

 

 

제1분  법회인유분 (법회의 시작)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1,250명의 비구와 함께 머물고 계셨다.

그날 탁발할 시간이 되자, 부처님께서는 가사를 입으신 뒤

발우를 들고 사위성 시내로 나가 한집 한집을 다니시며 먹을 것을 얻으셨다.

탁발을 마치신 부처님께서는 사원으로 돌아와 공양을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기원정사와 순례 온 비구 스님>

 

1. 걸식

 

그날 탁발할 시간이 되자, 부처님께서는 가사를 입으신 뒤
발우를 들고 사위성 시내로 나가 한집 한집을 다니시며 먹을 것을 얻으셨다.

"탁발할 시간"을 금강경 한문 원본에는

"식시(食時, 밥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출가 수행자들은

하루에 한 끼를 드셨다고 합니다

.
오늘날 우리나라도 이러한 전통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하루에 1번 올리는데,
"사시(巳時)공양"이라 하여 오전 9시~11시 사이에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공양을 올리는 불교 의식을 행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 수행자들은

오늘날처럼 절에서 정착 생활을 하며

공양간에서 공양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금강경>에 나와 있는대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내로 나가

탁발을 하는 걸식을 통해 식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따라서, 걸식을 위해서는 기원정사에서 사위성 시내까지

1~2km의 길을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걸어들어오는 시간,
그리고 당시 사위성 내 주민들이 밥을 짓는 시간과 거의 맞추기 위해서는

오전 8시~9시 사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도 미안마나 태국과 같은 나라의

TV다큐 프로를 보면 승려들이 걸식을 하고,
시주를 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이들을 위해

정성껏 밥을 준비해놓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남방 불교의 걸식>

2. 공양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에 의하면

중국의 철학자 맹자는 세상에는 2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맹자는 노심자(勞心者 마음을 쓰고 사는 자)

노력자(勞力者 힘을 쓰고 사는 자)를 이야기했고,
식인자(食人者 사람에게 밥대접을 하는 자)

식어인자(食於人者 사람에게 밥대접을 받는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2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모여 사는 것이

'천하지통의(天下之通義)'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란 육체적 노동에 의해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노력자와 노심자가 서로에게 이익을 주며 

대립각없이 살아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 것처럼
밥 대접을 하는 사람과 밥 대접을 받는 사람이 다툼없이

고맙게 공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것입니다.


아직까지 공양을 고맙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걸식의 문화가 존재하는 남방의 문화는

이런 측면에서는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부처님과 같은 분에게는

왕과 같은 귀족 보시자들도 많았을텐데,

왜 부처님은 걸식이라는 삶의 형태를 취하셨을까요?


사실 걸식이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걸식 과정에는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는

걸식의 거절에 대한 수모의 가능성이 있고,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대로 무분별하게 먹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걸식이 당시 인도 사회의 수행자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반적인 문화였지만,

걸식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분별심보다

시주의 공덕에 감사하며 먹을 수 있는 마음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걸식을 해도 마음에 장애가 없으므로

이러한 정신적 교만감과 분별심을 없애는 수행이 걸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걸식을 하신 중요한 이유는

재물의 축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세의 비구 스님들이 재산이나 보화를 쌓아놓고

타락으로 빠질 것을 경계하려 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행보다는 소유의 유혹에 빠져

출가 승가의 건강함을 해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후세에 승가의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걸식을 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당시 출가 승려 대중은 걸식의 방법에 의해
일곱 집을 차례로 돌면서 주는대로 빌어 먹으면서

시주들의 보시 공덕에 감사하게 먹거리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걸식>

3. 공덕

 

그리고, 걸식에 대한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가섭 존자는 주로 가난한 집에 가서 걸식을 했고,

아난 존자는 부유한 집에서 걸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그 이유를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가섭 존자는 가난한 이들에게까지 보시 공덕을 짓게 하여

이들에게 공덕을 쌓게하려는 배려심 때문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아난존자는 음식이 부족한 가난한 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배려심 때문이었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에 부처님은 이러한 배려심은 이해를 하지만,

앞으로는 빈부 귀천을 구분하지 말고 일곱집을 차례로 도는 방식으로

모든 비구들이 걸식을 하는 방식을 취하자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즉, 공양을 받을 때도 부유하고, 가난하고 의 분별 없이

주는대로 공양을 받아 평등하게 복덕을 쌓게 하자는 의도셨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