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5) 사다함과를 성취한 여인 수마나 이야기>
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수닷타 장자의 막내딸 수마나데위와 관련하여 게송 18번을 설법하시었다.
사왓티의 두 재산가 수닷타 장자와 위사카의 집에서
매일같이 2천 명이나 되는 많은 비구들이 탁발 공양을 받아가곤 했다.
그랬으므로 이들 두 사람은 비구들의 식성이라든지 기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비구 상가에 공양을 올리려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거의 매일같이 계속되는 공양의 경험이 그들에게는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 위사카 부인은 자기도 이제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여
자기 대신에 비구 상가에 잘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러다가 자기 손녀딸이 그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손녀에게 일을 맡기고 자기는 물러앉아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위사카의 손녀는 기대한 대로 할머니가 하던 일을 잘 처리해 나갔다.
한편 수닷타 장자도 큰 딸 마하수밧다로 하여금 자기 대신 비구 상가를 공양하게 했다.
그녀도 그 일을 아버지 못지않게 잘 처리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공양을 받은 비구들은 그녀에게
수행에 관한 여러 가지 지도를 잘 해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머지않아 수다원 과를 성취할 수가 있었다.
그런 다음 마하수밧다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닷타 장자의 둘째딸 쫄라수밧다가 그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녀 또한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일을 잘 처리하여 수다원과를 성취했다.
그리고, 그녀도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여 집을 떠났다.
그렇게 되어 마지막으로 셋째딸 수마나에게 그 일이 돌아가게 되었다.
수마나는 세 딸 중에서 그 일을 가장 잘 처리했다.
그녀는 수행에도 열심이어서 두 언니보다 더 높은 경지인 사다함 과를 성취했다.
그런데, 그녀는 신랑감을 만나지 못해서 결혼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을 못했다는 데 대해 마음으로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결국 병이 들었고, 음식 먹는 것도 끊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
어느 날 앓아 누운 수마나가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 수닷타 장자는 이때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막내딸이 자기를 찾는 소리를 듣자 즉각 달려갔다.
아버지가 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내 귀여운 막내딸아!”
그러자 뜻밖에도 수마나는
“지금 아우님은 내게 뭐라고 말했지?”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깜짝 놀란 아버지는
“얘야! 넌 지금 제 정신이 아니로구나.
애비를 보고 아우라니?”
그렇지만 수마나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야. 나는 지금 제 정신으로 말하고 있어. 너는 내 아우가 분명해.”
“수마나, 너는 지금 무엇을 무서워하여 이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게냐?”
“그게 아니야. 아우야, 난 지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고 나서 수마나는 죽고 말았다.
수닷타 장자는 수다원 과를 성취한 수행이 높은 재가 신자였지만,
막내딸의 죽음을 맞아 크나큰 슬픔에 빠졌다.
그는 슬픔 속에 장례식을 마치고 곧바로 부처님이 계신 제따와나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는 부처님께 수마나의 죽음을 전하고 수마나가 죽으면서
한 이상스런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수닷타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수닷타 장자여,
그대의 딸은 결코 정신이 흐렸던 것이 아니니라.
죽음에 임박한 수마나는 아주 맑은 정신 상태를 지니고 있었느니라.”
“부처님이시여,
그렇다면 수마나는 어째서 아버지인 저를 가리켜 아우라고 불렀습니까?"
“그것은 세속적인 인연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수행의 수준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라.
그대의 막내 딸은 수행의 깊이에 있어서 그대보다 손위였기 때문이니라.
그대는 수다원 과를 성취했지만 수마나는 사다함 과를 성취했고,
그 때문에 막내딸은 그대를 아우라고 불렀던 것이니라."
“알겠습니다. 부처님!
수마나는 어디에 태어났습니까?”
“수닷타 장자여,
수마나는 도솔천에 태어났느니라.”
“감사합니다. 부처님!
저의 딸 수마나는 살아서는 저의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항상 착한 일을 한다는 즐거움에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 죽어서도 즐거움이 넘치는 천상에 가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수마나는 항상 정신을 예리하게 하여 흐트러트리지 않았고,
늘 자기의 사대 오온에 마음을 잘 집중시키고 있었느니라.
그랬기 때문에 수마나는 살아있는 동안 즐거웠고,
또 다음 생을 받아서도 즐거울 수가 있었던 것이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이 세상에서도 그는 행복하고
다음 세상에서도 그는 행복하다
이처럼 착한 행동을 한 사람은
양쪽 세상 모두에서 행복을 누린다.
나는 선업을 쌓았구나 하는 정신적 기쁨을 느끼고
더욱 행복한 것은 천상에 태어났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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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행의 경지
수닷타 장자는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고독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도와준 재가 신자 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셨던 절인 기원정사를 지으신 분이고,
승가에 대한 아낌없는 보시로 "보시제일"이라고 불리웠던 분입니다.
위사까 부인도 여성 중에 불교 교단에 보시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 어머니의 성품을 이어받아
그 분들의 딸들도 착하고 자비로운 성품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들은 자비롭고 섬세하게
비구 수행자들의 식성을 잘 살펴 적합한 공양을 올렸고,
수행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여 수다원과 이상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특히, 수닷타 장자의 막내딸 수마나는 사다함 과에 올랐습니다.
사다함 과에 오른 수다나는
결혼을 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로 병이 걸려 죽었다고 합니다.
사다함과에 오른 존재가 결혼을 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가질 수 있을까요?
2. 수다원 과와 3가지 잘못된 견해
과연 수다원과와 사다함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의문입니다.
수다원과는 "예류과(豫流果)"라고 합니다.
중생이 아니라 성자(聖者)의 흐름에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수다원은 부처님에 대한 귀의와 불법에 대한 바른 견해를 통해
다음의 3가지 종류의 번뇌를 끊은 수행자입니다.
첫번째는 유신견(有身見)입니다.
유신견은 고정 불변의 '나'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육체와 감정, 생각, 의지, 인식 작용을 가진
고정 불변의 실체로서의 '나'가 있다고 믿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즉, 모든 것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제법무아, 제행무상, 일체개고의 삼법인의 진리의 견해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현생에서 잘 산다 하더라도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계속 윤회하며 이 잘못된 견해에 의해 번뇌의 괴로움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사견(邪見)입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을 증득하는 길에 대한 인연과 인과의 연기법입니다.
따라서, 사성제, 연기법, 인과법의 가치관을 갖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법의 길을 간다고 하면서도 가장 근본 진리인
사성제, 연기법, 인과법에서 벗어나 삿된 견해 속에 산다면 번뇌의 괴로움을 피할수가 없습니다.
세번째는 계금취견(戒禁取見)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미신적인 제사의례, 신에 대한 의식,터부(금기)에 대한 집착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미신적인 잘못된 견해가 번뇌의 괴로움과 악업으로 자신을 인도합니다.
수다원 과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불법을 받아들여
이 3가지의 잘못된 견해에서 오는 번뇌나 괴로움이 없는 수행자를 말합니다.
수다원은 7번만 윤회하면 모든 번뇌가 소멸된 아라한의 성자가 된다고 합니다.
수다원은 이와 같이 잘못된 견해를 버리고,
불법에 귀의하여 큰 번뇌를 잡은 수행자를 말합니다.
3. 사다함 과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교만과 의심과 같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는 더 높은 단계에서 소멸할수 있다고 합니다.
사다함은 수다원 과에서 나아가
감각적인 거친 탐욕과 타인을 혐오하는 악의의
2가지의 번뇌까지 사라진 더 높은 단계의 성자라고 합니다.
사다함 과에 오른 수마다의 마음 속에 있던 결혼에 대한 갈망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남자에 대한 애욕적 욕망보다는 당시 인도 사회의 사회 구조와 관계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처럼 여자도 독신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 풍토였다면
수마다가 결혼을 못한 마음의 상처가 병이 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마다가 죽기 전에 아버지를 아우라고 부른 것은 종교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다함의 경지가 수다원의 경지에 비해 높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종교적 표현인 것이지, 아버지를 무시하는데서 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법에 대한 바른 견해와 함께 거친 탐욕과 악의까지 버리고
자비심을 갖고 출가 수행자를 공양하여 사다함과를 증득한 수마나!
그녀는 도솔천에 태어나서 해탈이 보장된 참된 행복의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반면 악행을 행한 데바닷다는 무간 지옥에 떨어져 나쁜 윤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을 대조하면 어떤 인과의 업을 지어야 하는지를 통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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