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7) 사마와띠 왕비 이야기>
부처님께서 꼬삼비 근처의 고시따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꼬삼비 국 우데나 왕의 왕비 사마와띠와 관련하여 게송 21〜23번을 설법하시었다.
사마와띠는 꼬삼비 국 우데나 왕의 왕비로서
오백 명의 궁녀를 거느리며 호화스러운 궁전에 살고 있었다.
왕비에게는 궁전의 꽃을 돌보아 주는 '쿠주따라'라는 여자 시종이 있었다.
그녀는 수마나라는 여인이 운영하는 꽃가게에서 매일같이 꽃을 사다가 왕비의 궁전을 꾸며 주었다.
어느 날 쿠주따라는 수마나의 꽃가게에서 부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녀는 선근(善根)이 깊었으므로 설법을 듣자마자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고,
왕궁에 돌아와 왕비와 궁녀들에게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가르침을 전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같은 경지를 얻게 되었다.
그런 공덕으로 그날부터 쿠주따라는 힘든 노동은 하지 않게 되었으며,
왕비와 궁녀들의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쿠주따라는 그 이후부터 부처님의 법회가 있을 때마다
그곳에 가서 설법을 듣고 와서는 왕비와 궁녀들에게 전하곤 했다.
그러는 동안에 쿠주따라는 마침내 경율론 삼장에 통달하게 되었다.
사마와띠 왕비와 궁녀들은 쿠주따라로부터 부
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배우기는 했지만
한번도 부처님을 뵈온 적은 없었으므로
기회가 있으면 꼭 부처님을 뵈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원을 이야기하면 왕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왕에게 그 소원을 말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부처님을 왕궁으로 초대하지는 못하고
부처님이 지나가시는 길 쪽의 벽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을 통해서 부처님의 뵈오면서 합장 공경을 올렸다.
한편 꼬삼비 국왕 우데나에게는 또 다른 왕비가 한 사람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간디야였는데, 브라만 마간다의 딸이었다.
예전에 마간다는 부처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부처님의 준수한 모습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모를 지녔다고 자부하는
자기의 딸 마간디야를 부처님께 바치겠노라고 제의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마간다여, 여래가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기 직전에
마왕은 요염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의 딸들을 나에게 보내어 유혹하였느니라.
그렇지만 여래는 모든 감각적인 욕망을 벗어났기 때문에
그런 제의에 대해 아무런 동요가 없었느니라.
그렇거늘 하물며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으로 가득찬
여자를 내가 어찌 즐거이 생각하겠느냐?
여래는 그 여인의 털 한 올조차 여래의 몸에 닿지 않게 할 것이니라.”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간디야의 부모는
사람의 몸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를 여실히 깨달아 아나함 과를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딸을 동생에게 맡긴 다음
출가하여 비구, 비구니 스님이 되었다.
그들 부부는 머지않아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딸 마간디야는 자기의 용모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에 대해 큰 수치심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일로 입은 창피함을 반드시 갚아 주리라고 별렀다.
얼마 뒤에 그녀의 후견인이던 그녀의 숙부는
왕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서 마간디야를 꼬삼비 국왕 우데나에게 바쳤다.
그래서 왕비가 된 마간디야는 사마와띠 왕비가 부처님을 존경하여
벽에 구멍을 내고 부처님께 존경의 예를 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이 부처님을 곤경에 빠뜨릴 기회라고 생각하여
왕에게 이 사실을 왜곡하여 보고했다.
즉, 사마와띠 왕비는 부처님과 매우 불결한 내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데나 왕은 그 말을 대수롭게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그 구멍을 보았으나,
별다른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간디야의 농간은 거기에서 그치진 않았다.
왕은 사마와따의 궁에서 며칠 머문 다음에는 미간디야의 궁에서 머물곤 하였다.
어느 때 왕은 마간디야의 궁에 머물고 있었는데,
미간디야는 이제 며칠이 지나면 왕이 사마와띠 궁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하자 질투심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간디야는 또다시 음모를 꾸몄다.
그녀는 왕이 언제나 삼현금(三鉉琴)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남몰래 삼현금의 빈 통 속에 뱀 한 마리를 넣어두었다.
그런 다음 왕이 사마와띠의 침실에 들어가기 전에 침실을 조사해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먼저 들어가서 삼현금 속의 뱀을 침상 위에 풀어놓았다.
뱀은 ‘쉬잇’ 소리를 내며 침상 위에서 뙤리를 틀었다.
마간디야는 그것을 보이면서 이것은 왕비가 왕을 독살하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왕도 마간디야의 말을 믿게 되었다.
왕은 분노하여 사마와띠 왕비를 왕궁 뜰에 세우고 그 뒤에 오백 명의 궁녀들을 세웠다.
그런 다음 독을 묻힌 화살을 시위에 먹여 직접 사마와띠를 겨냥하여 쏘았다.
이때 사마와띠 왕비와 오백 명의 궁녀들은 이에 대해 조금의 증오심과 원한심도 갖지 않고,
도리어 왕과 마간디야에게 자비의 마음을 보내고 있었다.
우데나 왕의 활 솜씨는 아주 유명했다.
전하는 말로는 그가 쏜 화살은 바위도 꿰뚫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의 경우에는 그가 쏜 화살이
왕비를 맞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화살 끝에는 연꽃이 매달려 있었다.
왕은 이 신비한 결과를 보고는
마침내 왕비에게 아무런 허물이 없다는 것을 알아
사마와띠 왕비와 궁녀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부처님과 빅쿠들을 궁으로 초청하여
그녀들이 직접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렇지만 미간디야의 음모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의 숙부에게 사람을 보내어 사마와띠 왕비의 궁에 불을 지르라고 사주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비 궁이 불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때 궁안에 있던 왕비와 궁녀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좌선 수행에 마음을 집중했고,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사다함 과를, 어떤 사람은 아나함 과를 성취하였다.
사마와띠 왕비의 궁에 불이 났다는 소식은 곧 우데나 왕에게도 전해졌다.
왕은 급히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렇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어서 궁 안의 사람들을 구해 낼 도리가 없었다.
우데나 왕은 이것이 마간디야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눈치를 보이면 마간디야가
자기 소행이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 뻔했으므로
교묘하게 증거를 잡아내리라고 마음먹었다.
왕은 마간디야를 의심하는 빛을 전혀 보이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이제야 안심이다!
사마와띠가 살아 있을 때 나는 내가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서
늘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이제는 안심이다!
누가 이런 좋은 일을 해준 것일까?
아마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한 일일 테지.”
왕이 이런 말을 하며 다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 있던 마간디야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 일은 제가 한 것입니다.
제가 제 숙부에게 부탁하여 사마와띠와 궁녀들이
모두 궁 안에 있을 때 밖에서 문을 잠그고 불을 지른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말했다.
“틀림없이 그랬겠지.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소.
당신 이상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오.
나는 당신에게 큰 보상을 해야겠소.
그리고 이 일을 도운 다른 사람들도 어서 불러오시오.”
그래서 마간디야는 숙부를 비롯하여 이 사건을 도운 친척들을 불러 들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마간디야의 친척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친척이라면서 궁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는 동안 왕은 왕궁 뜰에 깊은 구덩이를 여러 개 파 두었다가,
마간디야를 비롯하여 이번 일에 관계된 사람들의 하체를 하나씩 하나씩 그 속에 묻었다.
그런 다음 그들의 머리 위에 볏짚을 깔고 불을 붙여서
그들의 머리와 피부가 타 들어가는 고통을 맛보게 하였다.
그런 잔혹한 형벌로 그들을 꾸짖고 나서,
우데나 왕은 커다란 쟁기로 땅을 갈아 그들을 흙과 범벅이 된 상태로 죽여 버렸다.
이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켜서 비구들 간에도 화제가 되었다.
어느 날 법당에 모인 비구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들어오시었다.
비구들은 어째서 사마와띠 같이 선량한 사람이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 과보의 전말을 이렇게 이야기해 주시었다.
다만 금생만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마와띠 왕비와 오백 명의 궁녀들은
전생에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과보를 받았던 것이다.
전생의 어느 때 그녀들은 왕비와 궁녀로서 왕과 물놀이를 갔었다.
물놀이가 끝난 다음 그녀들은 어디에든 가서 따뜻한 불을 쬐고 싶었는데,
그때 마침 근처에 초막이 하나 있었으므로 그녀들은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그 안에는 마침 벽지불께서 깊은 선정에 들어 계셨다.
그는 왕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들은 벽지불께 화상을 입게 한 이 사실이
왕에게 알려지어 큰 벌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예 벽지불을 화장시켜 버렸다.
그들은 그 행위가 원인이 되어 그 후로도 여러 번이나 불에 타 죽는 과보를 받았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의 세 편 게송을 읊으시었다.
마음 집중은 죽음을 벗어나는 길
마음 집중이 되어 있지 않음은 죽음의 길
바르게 마음이 집중된 사람은 죽지 않는다.
마음 집중이 되지 못한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다.
이 같은 진실을 완전하게 알아
항상 마음을 집중시키는 현자에게 있어
마음 집중은 그에게 법희(法喜)를 주고
그를 언제나 성스러운 길에 머물게 한다.
현자는 지속적으로 마음 집중을 수행하여
내적 고요함과 평화를 성취하나니
니르바나(열반)는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난 경지,
니르바나(열반)는 위없는 참된 기쁨이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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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해 망상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든다." 는 경전의 말씀이 있습니다.
육체의 부정함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간디야의 부모는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아나함 과를 증득하는 공부 인연으로 삼았습니다.
반면 마간디야는 깊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고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고는 악행을 저질러 악업의 과보를 받았습니다.
왜 마간디야는 깊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을까요?
그녀는 피해 망상 증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 망상은 피해 의식의 상처,
자신에 대한 지나친 우월감,
잘못된 신념에 대한 확신 등으로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지나치게 왜곡하는 망상적 증상, 정신적 장애입니다.
피해 망상에 빠지면 수치심과 자기 비하, 턱없는 우월감과 열등감,
상대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 증오와 분노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 표출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마간디야는 부처님의 말씀과 의도를 왜곡해서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부처님 말씀을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에 대한 폄하로 생각하고
큰 상처를 입고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해 원한을 품었고 궁전에 들어간 후로는
부처님을 믿는 왕비와 여인들에게까지 원한을 품었습니다.
자신의 원한과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집요하게 원한과 시기심을 키우며 무서운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아무 죄없는 왕비와 여인들을 방화로 불태워 죽이려 했고,
결국 그녀도 그 자신의 악업의 과보를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이러한 정신병적 피해 망상 증상이 나타나는가?
첫째는 있는 그대로를 담백하게 보지 못하고 왜곡되어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감각과 인식 작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애착과 혐오라는 색안경을 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자기 감정에 놀아나서 연기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통찰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좋고 싫음'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날 뛸뿐이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바르고 그른지에 대한
인과와 연기를 볼 수 있는 사유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구경> 게송의 말씀대로라면
"마음 집중"을못하기 때문이다고 생각합니다.
2. 마음 집중
"마음 집중은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마음 집중하지 않음은 죽음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집중의 출발은 주의력 깊게
자신의 감각과 인식 작용을 살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야 '애착과 혐오'라는 색안경을 끼고
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제어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놀아나서 제멋대로 망상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과와 연기를 살필 수 있는 통찰과 사유를 해 나갈 수 있도록
사려깊게 마음를 개발해나가야 합니다.
마음 집중이 되지 않는다면
마간디야처럼 망상의 노예가 되어
함부로 악업을 저지르며 나쁜 윤회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음 집중이 되어 있지 않음은 죽음의 길이고,
마음 집중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마음 집중의 중요함에 대한 진리를 잘 알아서
수행하는 사람은 다르마(법,진리)의 즐거움을 알고
자신을 성스러운 길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며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난 열반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르마(진리, 법)의 즐거움을 알고 성스러운 길에서 물러나지 않고
열반의 행복을 얻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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