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교 사찰 기행(2) - 소박하고 고독한 감성의 은각사>
1. 철학의 길
은각사(銀覺寺)는 교토 북동쪽,
지성의 향기 가득한 ‘철학의 길’이
시작되는 작은 언덕 위에 있습니다.
찰학의 길은 은각사부터 난젠지까지 이르는
약 2km의 산책로입니다.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이 길을 산책하면서
사색을 즐겼다고 해서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예쁜 길인데,
수로가 흘러서 물소리 들으며 산책하기 좋은 길입니다.
2.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의 빛, 은각사
은각사의 원래 이름은 자조사(慈照寺)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로운 빛이 비친다'는 뜻입니다.
동백나무 병풍 숲을 지나 은각사에 들어가면
은빛 가득한 모래 정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모래를 깔아서 만든 정원을
일본 말로는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
우리 말로는 '마른 산수 정원(고산수 정원)'이라고 부릅니다.
(물과 나무의 살아 있는 생명이 없는 '마른 산수 정원'이라는 뜻)
이 가레산스이 정원은 과연 무엇을 상징할까요?
물결 무늬의 모래는 ‘은빛 모래 파도’라는 뜻으로
‘은사탄(銀沙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후지산처럼 보이는 모래 언덕은
‘달을 보는 대’라는 뜻의 ‘향월대(向月臺)’라고 합니다.
그 뒤로 2층의 은각이 서 있습니다.
3. 은각
은각은 금각과 대비되어 은으로 칠해져 있어야 하는데,
노송나무 껍질 지붕과 검은 목재로 된 수수한 형상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일본 쇼군이
돈이 없어 은칠을 못했다고 합니다.
은각은 관세음 보살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은각 1층은 '마음을 비운다'는 뜻의 '심공전(心空殿)',
2층은 '파도 소리'라는 뜻의 '조음각(潮音閣)'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바다에서 파도가 밀려오는듯한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의 소리를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보름달이 뜬 바다에 은빛 파도가 밀려오는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로운 마음의 파도 소리가 들리십니까?
60cm로 높이 쌓은 은사탄은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을 입체감 있게 표현한 설정입니다.
자갈 모래와 은각으로 관세음 보살님의 마음 세계를
철학적이고 상징적으로 묘사한 재미있는 모래 정원입니다.
4. 동구당
은각 옆에는 동구당(東求堂)이 있습니다.
'동쪽에서 서방 극락 정토를 구한다'는 뜻입니다.
동구당은 1489년 완공된 은각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 최고 권력자인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짓고 생활했습니다.
동구당 내부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불전'과 함께
공부방이자 다도를 즐기던 개인 생활 공간인 '동인재(同仁齋)'로
이루어진 간소한 구조입니다.
5. 오닌의 난과 쇼군의 고뇌
무로마치 막부가 말기로 접어들자
권력의 약화로 '오닌의 난'이라는 내란이 일어납니다.
오닌의 난 때 교토의 1/4이 붙타고
일본은 지방 영주들의 봉기로 전국 시대의 혼란기로 접어듭니다.
최고 권력자인 쇼군이라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 정치 상황과
인생 무상과 깊은 고뇌를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서는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구하기 위해 은각을 짓고,
죽어서는 아미타 부처님을 향해
극락 왕생에 대한 염원을 담아 동구당에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당시 쇼군은 기도하고 공부하며 마음의 평온을 얻었을까요?
쇼군이 처음 은각사를 지은 초창기에는
동구당과 은각만 있던 담백한 구조였다고 합니다.
쇼군은 문화적, 예술적 소양은 높아서 수묵화, 다도를 좋아하고
많은 승려, 무사들과 교류하며 '동산(東山) 문화'의 한 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은빛 가레산스이 정원도 없고, 방장도 없었습니다.
전국 시대의 혼란기에 황폐화된 은각사는
다행히 창건 당시의 동구당과 은각은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 두 전각을 중심으로 후대에 새롭게
다채로운 정원을 조성하여 오늘날의 은각사가 탄생한 것입니다.
6. 지천회유식 정원
오늘날 은각사에는
자연 축소판의 지천 회유식 정원도 있고,
푸른 쿠션 같이 포근한 이끼 정원도 있습니다.
연못과 나무와 돌이 있는 지천 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
연못과 나무와 돌 사이를 돌면서
축소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정원입니다.
즉, 축소된 자연을 감상하고 즐기면서
힐링하겠다는게 지천회유식 정원이고,
눈에 보이는 한계를 뛰어넘어 철학과 상상력을 결합하여
월등한 미학적 경지에서 노닐겠다는 결과물이 가레산스이(고산수) 정원입니다.
아무튼 물과 나무와 돌이 어우러진 자연을
평화롭게 거닐면서 은각사의 풍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7. 이끼 정원
푸른 쿠션 같은 이끼 정원.
11월 늦가을에도
이끼 정원은 푸르고 싱그럽고 시원했습니다.
저 이끼 정원처럼 나의 마음 세계를
푸르고 싱그럽고 시원하게 가꾸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은각사는 다양한 형태의 정원을 거닐며
일본 정원의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8. 일본인의 미의식과 감성
특히, 낙엽이 지고 단풍이 드는 가을의 은각사는
소박하고 고독한 일본 특유의 미의식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인의 미의식과 감성에는 황금찬란한 금각사보다
오히려 소박한 은각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낙엽지는 가을에 가면 정원의 낙엽까지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줍는 정원사를 볼 수 있습니다.
철저히 청소하고 관리하는 땀과 노력 덕분에
은각사 정원의 아름다움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금각사와는 다른 일본인 특유의
소박하고 고독한 미의식을 잘 느낄 수 있는 은각사!
그 아름다움을 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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