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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1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1 - 바른 믿음

by 아미타온 2024. 2. 22.

<금강경(1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1 - 바른 믿음>

 

<진천 보탑사 다보탑>

<금강경 제6분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진심으로 믿고 그것에 의지하는 사람이 앞으로도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수보리야.

여래가 열반에 든 후 5백년 뒤에도

즐거이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사람이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들으면 그들은 이것을 진리로 믿고 의지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한 분, 혹은 두 분, 세 분, 네 분,

혹은 다섯 분의 부처님이 계실 동안에만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부처님이 계실 동안 선근을 심어온 사람들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여래의 말을 듣고 단 한 순간이라도

맑고 순수한 믿음을 내는 사람이면 누구나 여래가 그를 지켜보고 보살피며,

이로 인해 그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공덕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사로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법이나 법이 아닌 것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으며,

이것은 상이다 저것은 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느니라.

왜냐하면 그가 법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는 또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도 잡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법이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면

이 또한 그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에도 집착하지 말고 법이 없다는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여래께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모든 가르침을

하나의 뗏목으로 여겨야 한다."라고 하신 숨은 뜻이다.

가르침이 아닌 것이며 가르침조차도 모두 버려야 한다."

 

<진천 보탑사 미륵 삼존불>

 

1. 희유

 

금강경 제6분의 제목은 '정신희유(正信希有)'분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에 대해 바른 믿음을 갖는 것은

정말 희유하고 대단한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49일간 머무시며 세상사람들에게

어떻게 법을 설할 것인가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탐욕과 분노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내가 깨달은 이 법을 설법하는 것은 쉽지 않아라."

 

왜냐하면 부처님 법(진리)은 탐욕과 분노 라는 중생심의

욕망 세계의 거센 물결을 역류하여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욕망과 분노의 파도에 휩쓸린 세속의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을 듣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보탑사 연못 부처님>

 

2. 바른 믿음

 

하물며 <금강경>의 가르침은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금강경> 4분에서 "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하라"

무주상보시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착한 보시를 할 때 보시한다는 상(相)에 빠져 있는

중생들이 믿고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금강경 5분에서 "형상으로 보는 것은 허망한 것이며,

형상에서 벗어나야만 여래를 볼 수 있다"는 사구게이 나옵니다. 

 

이 가르침 또한 형상에 집착하며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고 바른 믿음을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보리 존자는 상에 집착하는 중생들이

<금강경>의 가르침을 과연 바르게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의심을 냅니다.

 

제 6분은 이러한 수보리 존자의 염려와 의심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입니다.   

 

< 보탑사 영산전 500나한 >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진심으로 믿고 

그것에 의지하는 사람이 앞으로도 있겠습니까?"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가르침은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 생각과는 다릅니다.

 

특히, 세상이 혼탁하고 근기가 떨어지는 후세의 사람들이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부처님께 위의 질문을 올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