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경(14) - 제4 묘행무주분(3) - 허공 >
수보리야. 동방(東方)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서방, 남방, 북방,
그리고 아래와 위의 허공을 측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하면
그러한 덕행으로 인해 얻는 즐거움은
허공과 같이 커서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보살은 이러한 나의 가르침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느니라.
1. 푸른 하늘
큰 산에 올라 동서남북 아래 위의 하늘과 허공을 바라보면
마음이 넓어지고 시원해집니다.
왜냐하면 그 하늘과 허공의 넓이와 깊이는 측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상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함으로서
얻는 행복도 푸른 하늘과 허공처럼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행을 행하는 이유는
행복과 평화와 해탈의 열매를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보시를 할 때에도 보시를 하고 나서
행복하고 평온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집안 청소를 하더라도 어지런 사람을 원망하고
청소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온갖 짜증이 섞여 청소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가족들을 위해 청소를 하더라도
그 청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양은 먼지보다도 더 작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안의 청결과 깨끗한 환경에서 살
가족들의 행복을 행각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청소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청소를 하면서 청소를 즐길 수 있고
청소 후에도 헤아릴 수 없는 큰 행복이 찾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그 마음이 상에 집착하거나 짜증이 섞이지 않고
맑고 평온한 마음으로 행할 수 있다면
동일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180도로 다를 수 있습니다.
2. 사사로움
도올 김용옥 선생의 <금강경 강해>를 보면
노자 도덕경 7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몸을 뒤로 하기에 그 몸이 앞서고
몸을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재한다.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능히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니....
금강경에서 말씀하시는 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사사로움이 없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즉, 노자가 말하는 "사사로움이 없는 무사(無私)"가
금강경의 "집착함이 없는 무아(無我)"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사로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꾸
집착과 욕심의 덫에 걸려들고 무주상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사사로움이 없이 행동한다면
보다 쉽게 무주상보시를 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없이 넓고 맑은 하늘과 허공을 보며
사사로움이 없이 무주상보시의 행복을 느낄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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