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강경

금강경(18)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3 - 법상(法相)

by 아미타온 2024. 2. 26.

<금강경(18)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3 - 법상(法相)>

 

<경주 남산동 동서 석탑>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사로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법이나 법이 아닌 것이라는 상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그가 법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는 또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도 잡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법이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면 이 또한

그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 남산동 동탑>

 

1. 법상과 비법상

 

말법 시대에도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자가 있어

금강경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믿고 행한다면

이 사람에게는 희유한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희유한 공덕이 있느냐 하면

그 사람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며,

법상이나 비법상에도 빠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개념의 상이 등장합니다.

 

바로 '법상(法相)'과 '비법상(非法相)'입니다.

 

법상 (法相) 은 "이것은 진리다."고 단정하며 고집하는 생각입니다.

 

반면에 '비법상(非法相)'은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고 단정하며 고집하는 생각입니다.

 

'법상'과 '비법상'이란 진리(법)를 "바르게 보는 견해"인

"정견(正見)"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주 남산동 서탑>

 

2. 사법(四法) 의 법문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사법(四法)"에 대한 법문을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바른 법을

지니고 수호하는 4가지 방법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입니다.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 어떤 수행승 중에서 누군가가

1) 이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친히 들었다.    

2) 이것을 청정한 교단으로부터 들었다.

3) 이것은 나이 많은 장로들로부터 들었다.

4) 이것을 유능하고 지혜로운 어떤 스님으부터 들었다.

라고 하는 네 가지 경우에 그것을 무조건 그대로 믿거나

무조건 비방하지 말고 낱낱의 말을 깊이 생각하여 ,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과 율에 의거하여 비추어 본 다음에

자신의 견해를 세우는 것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을 누가 말하든,

누구의 권위를 빌어서 말하든,

권위나 편견에 끄달려 성급히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판단 기준은 바른 부처님의 말씀,

즉, 진리의 법과 율에 의해서만 판단되므로

차분히 부처님의 전체적인 말씀인 교법을 근거로 

자신의 밝은 이성으로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경주 남산동 서탑 팔부신중상(1)>

 

3. 병에 따른 처방

 

부처님은 스스로를 유능한 의사에 비유하시곤 하셨습니다.

 

갖가지 병에 걸려 있는 수많은 중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가 어떤 병에 걸려있는지를 진단하시고

그 병의 원인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처방을 주신 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經)과 율(律)입니다.

 

그런데, 비록 부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경전의 어느 구절만으로 기계적으로 모든 문제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부처님의 바른 진리의 가르침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계시다면 바로잡아 주시겠지만,

부처님 입멸 후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바로 이러한 점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각기 다른 중생의 병에 맞는 처방을 찾아야 한다면 

경전의 말씀 뿐 아니라 경전에 없는 말이라도

그것이 부처님의 말씀인 법과 율에 비추어 통찰해 보고

자신의 밝은 이성으로 깊이 사유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즉, 누구에게 들었든, 어떤 근거로 말해지든 

그 외형과 형식에 끄달리지 말고

바른 부처님 법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사유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에 바르게 법을 지니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경주 남산동 서탑 팔부신중상(2)>

 

4. 정견

 

이러한 부처님의 "4법"에 대한 말씀은

바로 '법상'과 '비법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권위자가 말했다.", "TV에서 보았다.", "과학자의 연구 결과이다."

등등 특정 인물과 매체의 권위든, 아니면 자신의 독단적인 판단이든

너무 성급하게 "진리"와 "비진리"로 나누어 개념을 정리하고 분별합니다.

 

이처럼  개념의 칼을 휘두르면서

시비를 분별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진리"와 "비진리"라는 개념의 칼을 휘둘러

시비에 빠져 자신과 타인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을

불교적 용어로 "법상"과 "비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라는 문제 의식을 갖고

다양한 각도와 진실에 입각하여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려깊게 전후좌우를 살펴보고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만 봐도 가짜 뉴스, 편향된 시각의 언론매체,

이익 집단을 대변하는 권위자나 과학자들의 말 등에 얼마나 많이 속고 있나요??

 

이러한 정보를 아무 비판이나 문제 의식없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폐혜는 이루 말할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사의 일들도 이러한데, 종교적 가르침 또한 그렇지 않을까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과 율을에 입각하여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

신중히 생각해서 자신의 견해를 세우는 것은 "정견"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빨리 결론을 내어 

'법상(진리다)'과 '비법상(진리가 아니다)'으로 나누는

개념 정리는 사상 누각처럼 그 기반이 허약합니다.

 

이처럼 법상과 비법상에 집착하여 시비의 개념의 칼을 휘두르며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 칼을 맞고 누군가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여기에 욕망과 악의까지 가미된다면 왜곡된 진실로 인해

자신과 세상을 어지럽히고 힘들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