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19)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4 - 집착>
그러므로, 법에도 집착하지 말고
법이 없다는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여래께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모든 가르침을
하나의 뗏목으로 여겨야 한다."라고 하신 숨은 뜻이다.
가르침이 아닌 것이며 가르침조차도 모두 버려야 한다."
1. 불교의 목적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는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행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함을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확산시켜
타인의 고통을 가엾이 여기고 이들까지 참된 자유와 행복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은
중생의 참된 자유와 행복인 해탈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다양한 중생과 상황에 맞는 방편법을 통해
중생을 제도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은
참된 자유와 행복의 언덕에 이르기 위한 뗏목과 같다는 것입니다.
즉, 중생들의 참된 자유와 해탈이 상위 개념이고 목표라는 것입니다.
2. 뗏목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마저 뗏목으로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선가에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저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뗏목이 필요합니다.
뗏목은 물을 건널 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각자의 뗏목이 자신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최고의 뗏목이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을 건넌 다음에도 뗏목을 지고 가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부처님께서 당신의 가르침을 뗏목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씀은
법에 대한 잘못된 집착이나 고집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입니다.
3. 자비
이 대목에서 부처님의 깊은 자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설법하신 무상무주(無相無住)의 가르침은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 훌륭한 가르침도 확고하게 증득하지 못한 채 함부로 사용한다면
이로 인해 고통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마저도 지혜롭게 통찰하여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사려깊은 자비심이 깃든 구절입니다.
말세에도 계를 받아지니고 복을 닦는 수행자가
금강경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고 믿는 것은 희유한 일입니다.
그러나, 깊은 지혜와 사유 없이 법상과 비법상의 개념의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는 오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부처님의 따뜻한 자비심이
"나의 가르침을 뗏목과 같이 여기라"는 말씀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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