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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28) 수행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누뿝빠 비구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2. 27.

<법구경(28) 수행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누뿝빠 비구 이야기>

 

<용인 와우정사>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수행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 36번을 설법하셨다.


사왓티 성 내에 은행가의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집으로 자주 탁발 나오는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님, 저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비구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가진 재산을 삼등분 하여,

그 중 한 몫은 사업에 쓰고,

다른 한몫은 당신의 아내와 자녀들의 생계에,

그리고 나머지 한 몫은 부처님의 교단에 시주하십시오.”

 

은행가의 아들은 당장에 그대로 실천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말했다.

 

“자,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남았습니까?”

“이제 부처님께로 가서

부처님과 법보와 승가에 귀의하고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잘 지키도록 하십시오.”

 

그는 이것도 곧 실천하고 나서, 다시 비구에게 물었다.

 

“이제는 열 가지 계를 받아 지니면서

사미 스님이 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그는 단계적으로 수행을 해 나갔는데,

이 때문에 그는 "아누뿝바"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아누뿝바는 사미 스님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당신은 이제 비구가 되어 수행을 쌓아야 하오.”

 

그래서 아누뿝바는 마침내 비구가 되었다.

 

<와우정사 대웅전 불보살님>

 

비구가 된 아누뿝바는 스승으로부터는 

경전의 가르침을 배우는 한편,

계사(戒師) 스님으로부터는 율장의 실천에 대해 배웠다.

 

그런데, 계사 스님은 그에게 쉼 없이

율장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까다롭게 굴었다.

 

"이것은 계율에 어긋나며, 이것은 어긋나지 않는다.

이것은 율장에 비추어 옳고, 이것은 옳지 않다."

 

그러자 아누뿝바는 매우 싫증을 내어 이렇게 생각했다.

 

‘아, 얼마나 피곤한 일이냐?

내가 비구가 된 것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차라리 가정에 돌아가 해탈의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다음부터

그는 비구 생활에 흥미가 없어져서 불만만 쌓였다.

 

그래서, 그는 공부도 게을리하고,

몸과 마음에 대한 현상 관찰인 위빠사나 수행도 등한시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는 몹시 쇠약해지고 피부도 거칠어졌으며,

혈관은 튀어나오고 몸은 바짝 말라 갔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압박을 받아 뼈만 남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동료들은 그에게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 그는 수행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하루는 그의 스승이 그를 부처님에게 데리고 갔다.

 

<용인 와우정사 대웅전 비로자나 부처님>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너희들은 무슨 일로 왔느냐?”

 

아누뿝바의 스승이 대답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이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구여, 너의 스승이 네 대신하는 말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비구여,

너는 왜 수행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느냐?”

 

“부처님이시여,

저는 생사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스승은 경전과 수행을 배우라 하시고

저에게 계를 주신 스승은 율장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마침내 제 몸과 마음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래서 차라리 가정을 지닌 채 수행을 해서 해탈할 수 있다면

그 길이 최선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누뿝바 비구에게 물으시었다.

 

“비구여, 네가 만일 한 가지만 잘 지킬 수 있다면

너는 다른 모든 것을 보호할 필요가 없느니라.”

 

“부처님이시여,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네 마음이니라.

너는 그 한 가지만 잘 지키도록 하여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마음은 섬세하고 미묘하여 보기 힘든 것

어느 곳이건 즐거움을 따라 움직인다.

현자는 그런 마음을 잘 지키나니

잘 지켜진 마음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 게송을 들은 은행가의 아들 아누뿝바 비구와

 다른 많은 비구들은 아라한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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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와우정사 불상>

 

1. 근기

 

아누뿝바 비구는 재가자였을 때부터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기를 바라는 서원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삼등분하여

1/3을 승단에 보시하며 공양을 하였고,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5계를 수지하는 것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즉, 불법의 씨앗(근기)이 튼실한 비구였습니다.

 

그러나, 출가를 하고 정식 비구가 된 이후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식 비구가 된 이후 계율을 가르치는 스승으로부터

출가 비구로서 지켜야 할 많은 계율의 적용에 대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윤회고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에 도움이 되는 계율 공부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역작용으로 작용했던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우직했던 우팔리 존자는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통해서 수행의 성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가전련 존자는 '논의 제일'로서 논리적으로 불법을 가다듬어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으로 수행의 성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누뿝바 비구는 두 분의 유형과는 다른

성품과 바램과 재능을 가진 수행자였던 것이었습니다.

 

<용인 와우정사 불두상>

 

2. 방편

 

음악에 재능 있고 관심 있는 아이에게

영어 공부, 수학 공부를 강요하여 시키면서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고 엇나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두 스승은 아누뿝바 비구에게 맞는 방식으로

공부를 지도할 수 있는 안목과 지혜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수행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아야 합니다.

 

수행의 목적과 가치(처음)는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행복과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수행의 과정과 방법(중간)이 수행자의 성향과 환경에

맞지 않아 열의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수행의 결과와 결실(끝)이 수행의 목적과 가치(처음)에

부응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법입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지고

수행에 회의가 생겨 방황하던

아누뿝바 비구에게 부처님은 방편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오직 마음 하나만 파고 들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여

특성화 교육을 시켜 교육의 성과를 보듯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아누뿝바 비구에게는

마음을 잘 관찰하고 지켜가는 훈련법을 지시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누뿝바 비구는 달라졌습니다.

 

이전에 스승의 교육 방식으로는 몸은 피폐하고

마음은 우비고뇌에 시달리던 아누뿝바 비구가

마음 수행으로 정진하자 마치 물 만난 고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섬세하고 미묘하고 보기 힘든 마음을 잘 살피고

우비고뇌로부터 마음을 잘 지키는 기술을 터득하여

고통에서 벗어난 참된 자유와 해방인 해탈의 경지에

이른 아라한 과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워

바른 방편으로 제자와 도반을

유익한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부처님이야말로

수행의 길에서 인(因)이 결실을 맺게 해 주는 햇빛 같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