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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22) 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3 - 흉내

by 아미타온 2024. 3. 7.

 

< 금강경(22) 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3 - 흉내 >

 

<국립 경주 박물관 불상>

 

 

왜냐하면 여래께서 깨닫고 설하신 가르침은
별개의 독립된 존재로 생각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설명될 수도 없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은 자존(自存)하는 것도 아니며, 자존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1. 구지 선사와 엄지 손가락



중국 당나라 때에 구지(俱指) 선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 

가르침을 얻으려고 찾는 이가 있으면
한결 같이 엄지 손가락 하나만 세울 뿐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먼 곳에서 구지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법을 물으러 왔습니다.


 마침 구지 선사는 출타하고

안 계셔서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지 스님을 시중 드는 동자가

“우리 스님의 법문이라면 그 동안 많이 보고

들은 바가 있어 저도 잘 알고 있으니 저에게 물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이에 객승이 정중히 물으니

동자는 구지 선사가 하듯이

곧바로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습니다.


불법을 얻으려 왔던 스님은

의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가다가
구지 선사를 만나게 되어

절에 다녀온 이야기를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절에 돌아온 선사는 동자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좀 전의 그 법문을 나에게도 한 번 해다오.”

 

그랬더니 동자는 엄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순간 구지 선사는 동자의 손가락을 거머 쥐고 칼로 잘라 버렸습니다.


울며 달아나는 동자를 고함을 질러 부르며

“어떤 것이 불법의 참다운 뜻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동자는 자신도 모르게 하던 버릇대로

엄지 손가락을 들려 했으나 이미 엄지 손가락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동자의 마음은 활연히 열렸습니다.

 

<국립 경주 박물관 불상>

 

2. 최선의 길

 

이 선가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구지 선사에게는 엄지 손가락을

세우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자처럼 다른 사람이 하는 최고의 법이라고 해서

따라하거나 흉내내기를 하는 것은 원숭이 짓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짓거리는 그만두고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이 체득한 진리를 소중히 여기라는

경책이 담겨있는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이 이야기를 깊이 성찰해보면
이 이야기는 금강경 7분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것은 

흔히 "최고다.... 제일이다..."를 이야기하고 싶을 때 

우리들이 버릇처럼 하는 행동입니다.


구지 선사가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인 이유는

"최고의 도는 이 엄지손가락 같은 것이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심명에 보면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버릴 것은 이것 저것 따지는 간택심 뿐..."

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신심명의 이 말씀처럼
"지극한 도, 최고의 도, 제일의 도는

어렵지 않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엄지 손가락처럼 내 속에 내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세상과 동떨어진 먼 어떤 곳에

최고의 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처럼 내 가까이서 내 삶 속에서

엄지손가락처럼 최고의 삶을 구현해내는 것이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최선의 길은 어떤 길일까요?


아이를 키우는 최선의 길이

많은 교육학자가 주장하는 교육 이론과 철학의

최상을 조합한 것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고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킨 유일한 길만을 추구해나간다면

십년이 가더라도 아이를 교육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최선의 교육은 한가지의 길은 아니고,

다양한 방편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향상과 행복을 위한 좋은 길을 스스로 궁리해내고
그 길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실천하고 피드백하며 구현해나간다면

그것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요?


현실에서 벗어나 최선의 길에 항상 머리 싸매고

생각 속에서만 살아간다면 실로 어리석은 짓일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지극한 도', '최고의 깨달음', '위대한 가르침' 이라고

할만한 그 무엇은 없는 것입니다.

그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지극한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눈에 보이는 엄지손가락과 같이

생생한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엄지 손가락마저

하나의 상으로 만들어버렸던 동자에게는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리는 극한의 방법으로

따끔하게 그 상을 베어내 버려 

그 상마저 없어지는 순간 동자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동자가 깨달음을 얻은것처럼 우리들도

깨달음의 상, 가르침의 상에

빠져 들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7분의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려는 의도는

구지 선사의 의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래께서 깨닫고 설하신

뭔가 최고의 깨달음, 최상의 가르침

뭐 이런 것을 자꾸 구하려고 하는 것은
생각많고 흉내만 내는 원숭이 짓같은 것이니 이제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의 현실의 삶 속에서 너에게 필요한 실천을 통해

큰 결과로 만들어내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하라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