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대흥사>
1.두륜산과 대흥사
남도의 끝
해남 두륜산 대흥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빨리
봄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두륜(頭輪)'이란 말은
산 정상이 모나지 않고 둥글다는 뜻과,
산의 모양이 둥글게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넓고 둥근 산의 품에 안겨 있는
부처님 도량이 바로 대흥사입니다.
그 둥글고 넓은 두륜산의 품처럼
일주문의 글씨도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양지 바른 백련사 동백 숲길과는 다르게
대둔사 계곡은 겨울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한두 그루 동백나무를 제외하고는
앙상한 나무 가지와 콸콸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겨울이 나 아직 안 죽었소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입구에 빨간 글씨의 비석이 있어 유심히 봤는데,
"꽃과 나무를 꺾지 마시오"라는 말을 저렇게 붉은 글씨를
멋진 비석 위에 새겨 놓아서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 해탈문
해탈문을 들어서면
대흥사 전경이 정겹게 펼쳐져 있습니다.
해탈문 안에는 청사자에 앉아 계신 문수 동자님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하얀 연꽃을 피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들도 밝고 덕성있게 자라날 수 있도록
공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탈문'이라는 날렵한 글씨체는
조선 중기의 명필, 이광사 선생의 글씨입니다.
둥글고 포근한 어머니 산에 안겨
대흥사는 자칫 나른해질 수 있는데,
그 안일함과 나른함을 경계하는 듯
해탈문의 글씨체는 날렵하고 날카롭습니다.
산의 덕성과 글씨의 필체가 서로 상생의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나지 않고 사방을 둥글게 품어주는
큰 산인 두륜산에
포근하게 안겨져 있는 대흥사.
언제 와도 명당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가람입니다.
누워 계신 부처님의 형상이라는
두륜산의 능선의 곡선이 참 보기 좋습니다.
임진왜란 때 승병 대장이던 서산(西山) 대사는
두륜산 대흥사 터가 만세가 지나도록
불법이 훼손되지 않는 넓고 좋은 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발을
편양 언기 스님에게 물려주며
해남 대흥사에 잘 봉안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포근하고 좋은 가람터 덕분에
13분의 대종사를 비롯해 많은 스님들이
배출된 것 같습니다.
3. 연리수
대흥사를 지키는 수호목인
연리수 나무님.
뿌리가 서로 이어져 두 그루이면서
하나의 나무가 된 연리수를 보면서
'무정(無情) 설법'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말없이 저렇게 서 있는 것 만으로
사람들에게 신비와 감흥과 각성을 불러 일으키니
저 연리수의 설법을 '무정 설법'이라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 대웅보전
대흥사는 대웅보전 영역의 남원(南院)과
천불전 영역의 북원(北院)의 둘로 중심 영역이 나누어 집니다.
대웅전 가는 계곡길입니다.
양지바른 곳이라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풀들이
햇빛에 비춰서 더욱 파랗게 보여서 좋았습니다.
계곡물을 건너면 나타나는 침계루입니다.
전각 건물보다
현판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이 글씨를 쓴 인물인 이광사 선생의 삶을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이광사는 '동국진체'라는 자신의 서체를 완성한
서예의 대가입니다.
소론 집안 출신으로 가문이 역적으로 몰려
풍지박살이 나는 와중에 귀양가서
힘든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서체를 완성한
참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이광사 선생의 마음 세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대흥사 북쪽 고즈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대웅보전입니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
약사여래 부처님의 세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세 부처님은 참 잘 생긴 부처님입니다.
엄정하면서도 자애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부처님이라고 할까요.
법당 안에는 극락조를 타고 극락 가는
극락 왕생인의 조각이 있어서
저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옵니다.
역시 이광사 선생이 쓴
날렵한 모습의 대웅보전 현판입니다.
대웅보전 현판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합니다.
추사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선생은
당시 대흥사에서 주석하며
다도의 대가로 이름높은 초의 선사와 절친이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로 귀양가면서
이광사 선생의 대웅보전 현판 글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자신의 '대웅보전' 현판 글씨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8년 귀양에서 돌아와
산전수전 다 겪은 다음 그 때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하며
이광사 선생의 글씨라고 다시 걸라고 했던 스토리가 담긴 현판입니다.
좋은 현판의 글씨가 전각의 품격을 더 높여줍니다.
화룡첨정인 셈입니다.
대웅보전 옆에는 염불 기도하던 전각인
무량수각이 있습니다.
무량수각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추사체의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대흥사 전각은 그야말로 명필들의 향연입니다.
4. 천불전
천불전 가는 길.
대흥사를 감싸고 있는 두륜산은 참 넓고 넉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불전 입구인 '가허루' 현판.
전라도 3대 명필 중 한 분이라는
전주 출신의 이삼만 선생의 글씨입니다.
귀양 온 이광사를 스승삼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프나 안 아프나
하루에 천 자씩 쓰면서 탁마했던 노력의 화신이 이삼만 선생입니다.
이 분의 귀한 글씨를 대흥사에 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천 분의 부처님을 모신 천불전.
천불전에는 천불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흥사 천불전 부처님도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천불전 부처님은
원래 경주의 옥돌로 경주 기림사에서 조성한 천불 부처님입니다.
경주에서 조성하여 뱃길로 해남 대흥사로 모셔 오다가
풍랑을 만나 일본 대마도로 떠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흥사 스님들이 일본에 가서 협상하여
다시 모시고 왔다는 일화가 전하는 천불 부처님입니다.
천불 부처님께서 노란 가사를 입고 계신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하늘을 날아갈듯 천불전 전각의 모습과
날렵한 이광사 선생의 천불전 글씨가 조화를 잘 이룬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불전 옆에는 용호당 이라는 전각이 있고,
이 곳 툇마루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 마음이 여유롭습니다.
근세의 서예가 '김돈희' 하는 분의 현판입니다.
정감이 느껴지는 현판입니다.
5. 관음전
천불전 옆에는 관음전이 있습니다.
황금빛 관세음보살님과
천개의 손이 그려져 있는 푸른 벽화가
사람의 마음을 아주 환하게 해 줍니다.
좋은 산에 넓은 터전,
좋은 부처님과 좋은 글씨가 어울어져
대흥사는 정말 좋은 가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 표충사
한편 대흥사에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세 분의 승병장을 모신 표충사가 있습니다.
서산, 사명, 처영의 임진왜란 삼대사를 모신 표충사.
표충사 글씨는 대흥사에 표충사를
조성한 정조 대왕의 친필입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짓밟는 왜적들에 대항하여
출가 승려로서 불살생계를 파하고 지옥가는 것을 감수하고
칼을 들어야 했던 세 분의 스님들의 고뇌와
우국 충정의 마음 세계가 깃든 곳입니다.
암울한 억불의 시대를 살면서도
국란의 나라와 불교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어야 했던
서산, 사명, 처영 세 선지식의 마음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정숙하게 인사드렸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서산 대사가 사명 대사가 아닌
20대의 어린 편양 언기 스님에게 의발을 전수한 이유는
전란의 와중에 피를 묻히지 않고 파계하지 않은 편양 언기 스님이
법을 이어받아 스님들을 가르치고 법향을 풍기는 것이 바른 출가의 법통이라는
서산 대사의 '올곧음'에 대힌 가치 판단과 큰 자비심이 있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법이 2500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많은 선지식들의 고뇌와 인욕이 있었슴을 느끼게 하는 대흥사입니다.
7. 부도전
서산 대사를 비롯한 13국사를 배출한
대흥사의 스님들의 부도탑과 부도비가 있는 부도전입니다.
대흥사를 거쳐간 13명의 대종사를 비롯한
수많은 선지식들이 불법을 지키고 전해 주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불법을 닦고 배울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부도전입니다.
훌륭한 선지식들에게 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