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교 사찰 기행(11) - 고도 나라의 약사 도량, 나라 약사사>
1. 일본 법상종 총본산, 나라 약사사
나라 약사사(야쿠시지).
약사사는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답사기- 일본 나라 편' 표지 그림으로 등장합니다.
일본의 고도 나라를 대표하는 멋진 도량입니다.
약사사는 절 이름처럼 약사 여래 부처님을 모신 도량입니다.
약사사는 '남도 7종' 대찰 중 하나로
유식 불교를 공부하는 일본 법상종의 총 본산입니다.
그런데, 동탑을 제외한 나머지 전각은
현대에 새롭게 조성된 것입니다.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도량이 불타서 소실되더라도 굴하지 않고
복구하는 일본 불교인들의 집념이 존경스럽습니다.
경주에 갈 때마다 휑한 황룡사 터를 보면 아쉽습니다.
몽고 침략 때 불탔으니 소실된 지 800년이 지났습니다.
황룡사가 약사사처럼 제대로 복원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일본의 클림트, 후센 데츠가 사랑한 약사사
일본 화가 중에 '후센 데츠(不染鐵)'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1895년 도쿄에서 스님의 아들로 태어나
교토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센 데츠는
말년을 약사사가 있는 나라 니시노교(西京)에 거주하며
고도 나라의 풍광을 그렸습니다.
향토색 짙은 수묵화와 풍경화를
유럽의 클림트와 비슷한 화풍으로 몽환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전에 나라 현립 미술관에서 후센 데츠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키스>를 그린 클림트가 백배는 더 유명하지만,
은은하게 고도 나라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후센 데츠의 그림의 매력에 흠씬 빠졌습니다.
후센 데츠의 '낙엽 정토'라는 작품입니다.
흑백의 수묵화와 황금의 장벽화를
융합해 놓은 듯한 이 그림은
금강역사가 대문을 지키는 가을밤의
전통적인 일본 절 모습이 아름답고 신비하고 평화롭습니다.
3. 약사사 동탑
후센 데츠는 말년에 약사사 동탑을
배경으로 수십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특히, 약사사 동탑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예술 세계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후센 데츠에게 약사사 동탑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후센 데츠에게 약사사 동탑은
자신이 신앙하는 원불(願佛)과 같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돌아갈 곳, 의지할 곳,
그리운 곳, 사랑하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수십 점의 약사사 동탑을 그리며
후센 타츠는 많이 행복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2019년 약사사 갔을 때
아쉽게도 약사사 동탑은 장막에 덮인 채 보수 수리 중이었습니다.
크레인으로 구조물을 떼어내는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수선하지만 복원이 완료된 약사사 동탑의 모습을 약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후센 데츠가 사랑했던 그림 속의 약사사 동탑은 저 모습이었구나.'
약사사 동탑은 730년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34m입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목탑으로 훤칠하니 잘 생겼습니다.
나라 호류지 오중탑과는 또 다른 멋스러움이 있습니다.
지붕이 6개라서 6층탑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각 층마다 속지붕인 상계를 넣은 삼중탑입니다.
2층과 3층은 누각 난간이 있어 더욱 묘미가 있습니다.
한 예술가의 깊은 사랑을 받을만큼 멋집니다.
3. 약사사 특별 배관
가을의 약사사는 특별 배관을 합니다.
금당, 강당을 포함한 일반 입장료는 800엔인데,
서탑, 식당, 현장 삼장관의 3군데를 특별 배관하여 1,600엔입니다.
비싼 입장료지만,
새롭게 복원하는 약사사에 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4. 서탑 과 부처님 생애 조각
서탑은 1528년 일본 전국 시대 혼란기에 불타버린 것을
400년이 지난 1980년에 다시 복원했습니다.
동탑과는 달리 붉은 색상을 입혀서 독특한 분위기의 서탑입니다.
특별 배관 기간이라 서탑에 입장했습니다.
불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일본 목탑인 서탑 속에는
4방으로 부처님의 성도, 교화, 열반, 사리 분배의
4가지 중요한 스토리를 담은 멋진 현대 조각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성도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리수 아래 부처님을 유혹하고 공격하는
마왕의 딸과 마군의 모습이 리얼했습니다.
약사사는 나라 시대 때 조성된 천년 전의 동탑과 불상과 함께
새롭게 복원된 서탑과 금당, 그 속에 공들여 조성한 수준 높은
현대 불교 조각과 불화들이 어우러져 멋진 도량입니다.
4. 금당
약사사 금당입니다.
약사사는 일본의 덴무 천황이 병에 걸린 왕비의
쾌유를 빌기 위해 약사 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창건했습니다.
약사 여래 부처님은 중생들을 병고에서 벗어나
해탈을 도와주는 부처님입니다.
옛날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일본에서 가장 많이 신앙되던 부처님이 약사 여래 부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오래된 절에는 약사여래 부처님을
본존으로 모신 절이 참 많습니다.
약사사가 창건된 때는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고
당나라와의 교류가 이루어지던 시절이라서
백제 양식과는 다른 당나라 풍의 불상이 조성되었습니다.
청동으로 주조된 약사여래 삼존불입니다.
검은 빛깔에 너무 미끈해서 최근에 조성된 부처님처럼 느껴졌습니다.
부처님을 협시하는 일광, 월광 보살님은
허리를 약간 틀고 육감적인 포즈를 취하고 계셨습니다.
광배도 아주 섬세했습니다.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류지 불상의 조성과는
불과 100년 후인데 새로운 양식의 불상이 조성되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여 모방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섭취하는데 빠른 일본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5. 강당
유식 불교 법상종의 본산인 약사사 강당입니다.
법상종 스님들이 공부하고 논강하던 강당은
미륵 삼존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식 불교의 대표적 논사인
무착 보살과 세친 보살이 미륵 부처님 옆에 서 계십니다.
무착 보살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무착 보살이 어느날 심한 악취가 풍겨서 가까이 가서 보니
개 한 마리가 피부병을 얻어 온 몸이 썩어
상처 주위로 구더기가 득실대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더러워서 피했을 자리인데,
무착 보살은 그 개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를 살리자니 구더기를 죽여야 겠고,
구더기를 살리려니 개가 죽을 것 같았습니다.
무착 보살은 자신의 혀로 구더기를 핥아서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손에 연꽃을 드신 부처님이 출현하여
무착 보살을 가피해 주셨다고 합니다.
구더기까지 가엾이 보는 무착 보살의 자비심은 무량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는 일체유심조를 설하는 유식 불교도
무량한 자비심에 바탕을 둔 대승 불교라는 것을 잘 인식해야겠습니다.
6. 식당
식당입니다.
식당은 스님들이 공양을 하고 의식을 행하는 곳입니다.
식당의 중앙에는 현대 <아미타 삼존 정토도>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일본 국보인 호류지 금당 벽화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멋진 불화였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도쿄 예술대학 명예교수인 화가 토시오 타부치(75)씨가
4년 동안 작업기간을 거쳐
필생의 역작으로 완성한 극락 변상도라고 합니다.
그 뒤로는 불교가 일본에 전래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멋진 현대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현대에도 우리에게 불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이 공을 들여 노력해서
훌륭한 불상과 불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많은 분들이 공들임과 노력 속에
불교 도량과 불교 신앙과 불교 문화가 끈질기게 계승되고
새롭게 창조되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던 약사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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