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33) 제10분 장엄정토분(藏嚴淨土分) 3 - 불국토>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야!
보살이 불국토를 고요하고 아름답게 하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고요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실 불국토를 고요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일러서
불국토를 고요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1. 불국토 장엄
불국토는 말 그대로 "부처님의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청정국토(淸淨國土)"를 두 글자로 줄인 말인
"정토(淨土)"라는 말로도 흔히 사용됩니다.
기독교적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천국과 비슷합니다.
세속적인 왕의 불완전한 기준이 아닌
불보살에 의해 정의롭고 평화롭고
보편적인 기준인 불법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를 교리적으로 '사바세계'라고 부릅니다.
고통과 질병과 가난과 전쟁과 죽음이 있어서
참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세계, 즉 인토(忍土)라는 뜻입니다.
보살은 사바 세계의 중생들에 대해 자비심을 가지고
불국토나 정토로 고요하고 아름답게 건설해 나가는 존재를 말합니다.
이것을 금강경에 나오는 한문 용어라고 하자면
"보살은 불국토를 장엄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는 모습들을
우리들은 많은 경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서방 극락 정토
가장 대표적인 불국토가 모든 불자들이
죽음 이후에 가기를 염원하는 아미타 부처님의 서방극락정토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본래 한 나라의 어진 왕이었는데,
세자재왕여래라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발심하여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이라는 이름의 비구가 되었습니다.
법장 비구는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제하고자
괴로움이 없고 공부하기 좋은 불국토를 건설하겠다는
고귀한 48가지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한량없는 시간동안 바라밀행을 실천하여
서원을 성취하고 성불하여
아미타불(영원한 생명의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저 서쪽 10만억 국토가 지난 곳에
이상적인 불국토를 건설하셨는데,
그 곳이 바로 서방극락정토 입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부처님의 오른팔로서
사바세계중생들을 위해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미 건설되어 있는 불국토 이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토화하려는 불보살님의 노력들도 있습니다.
3. 지장보살님
대표적인 분이 지장보살입니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중생을
다 구제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고통받고 사나운 중생들이 사는 지옥세계를 정토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대원력과 대자비의 보살님이신 것입니다.
지장보살과 같은 대보살의 삶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비관하거나 묻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비심과 서원을 가지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정토를 만들어가려는 행위를 우리는 "보살행"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보살이란 존재는 서원과 자비를 가지고
불국토를 장엄하려는 존재라고 개념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4. 진정한 불국토 장엄
그런데, 수보리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보살이 불국토를 고요하고 아름답게 장엄하는 것은
사실 불국토를 고요하고 아름답게 장엄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때문에 그것을 일러서 불국토를 고요하고 장엄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구절을 한문 금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직역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장엄하게 함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장엄이라 이름하는 것이다."이다.
이 말씀은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보살의 현실적 보살 행위를 부정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보살은 중생에 대한 자비심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고자 하는 원을 세우고 노력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것은 긍정되어야 할 일이고,
권장되어야 할 일이고,
마땅히 그러하여야할 일입니다.
금강경에서 부정하고 있는 것은
"장엄하게 만들고 있다"라는
보살의 자의식과 아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것은
보살이 내가 장엄하게 불국토를 만들고 있다는 아상이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것을 진정으로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강경에서는
"A는 A가 아니기 때문에 A라고 이름한다."는
부정의 논리 전개가 많이 나옵니다.
이러한 금강경의 부정은 A 그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A를 하고 있다는 아상의 부정을 거쳐야
그것이 참되고 진정한 A가 될 수 있다는 식의
논리전개라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5. 폴 포트의 비극
캄보디아에 "폴 포트"라는 권력자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킬링필드"를 낳은 캄보디아의 정치인이었습니다.
우리는 폴포트를 히틀러와 같은 악마와 같은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폴포트는 어릴 때 승려 생활도 했던 불교인이었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혁명가였다고 합니다.
그는 독립 투쟁으로 캄보디아를 해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해방후 자신의 조국을 불교적 무욕(無慾)에 기초한
소박하고 이상적인 사회주의 세상으로 건설하려는 열망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폴포트가 참 소박하고 조용한 좋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이 집착이 되고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구체제에 협력했던 사람들, 부자들, 지식인들 등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기 곤란한 계층의 사람들을
잔혹하게 싹쓸이 살상을 하는 방법으로 조급하게 혁명을 추진해나갔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반혁명 세력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극단적인 예겠지만,
불교사회주의나 장엄된 국토와 같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한 세상이 고정된 상이 되고,
자신이 그 상에 대한 열정과 집착의 노예가 되어
조급함을 제어해나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자신과 타인을 파멸과 고통으로 치닫게 만드는
사슬이 될 수 있으니 이를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금강경에서 경계하는 것은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아상이 되어 여기에 집착을 하여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조급함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이러한 상에 대한 집착은 욕망과 다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결코 사람을 행복하게도 평안하게도 해줄 수 없으니
이러한 집착과 욕망을 잘 경계하고 통제해서
자신과 타인을 살리는 불국토 장엄을 하는 보살이 되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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