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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19)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7) - 법성게(2)

by 아미타온 2024. 4. 28.

<불교 인물사(19)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7) - 법성게(2)>

 

<화엄 도량 해인사 구광루>

 

1. 하나 속에 모두 있고, 모두 속에 하나 있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모두 있고 여럿 속에 하나 있어

일즉일체아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 세계 담겨있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일체의 티끌마다 시방 세계 들어있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무량한 오랜 세월 한 생각 찰나이고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한 생각 순간 속에 무량 세월 들어있네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삼세 속에 또 삼세가 엉켜 있는 모양이나

잉불잡난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어지럽지 아니하여 서로가 뚜렷하네

   

화엄의 세계관에서 우리는

세계의 일부이며 동시에 세계의 전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를 단순히 전체와의 관련성이 배제된 일부라거나,

개체의 영향력을 무시한 전체라고만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화엄의 세계관은 자신뿐 아니라,

중생과 세계의 가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바탕되어 성립됩니다.

 

하나 속에 모두 있고,

모두 속에 하나가 있듯,

그리고 삼세 속에 또 삼세가 엉켜 있는 모양이듯이

개체는 전체 속에서 그 의미를 가지며, 

또 전체는 하나의 개체 속에서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즉, 서로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관계된 전체(related whole)"라는

원융한 세계관인 것입니다.

 

예를들어, 아빠, 엄마, 아들, 딸은

각각 각자의 특성을 가진 전체면서 가족을 이루는 일부입니다.

 

가족은 단순히 서로 분리된 개인간의 연합체가 아니라,

이러한 개인들간의 상호 의존적이고 순환적인 관계 체계를 가짐으로써

가족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가족으로서의 세계는

언제나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나 특성과 변화에 따라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 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은 물론 이미 온 지구가

이미 이러한 하나의 체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전쟁과 소요가 나와 무관하지 않고,

아마존의 밀림이 파괴되고 환경이 오염되는 것이 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세계의 경제가 우리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중동의 기름값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관계된 전체’라는 뜻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떠한 개별적 사건도 그것과 관련된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나 규명 없이는 그 실상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관계된 전체"라는

화엄의 관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직관적인 방법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분석적 공부와 이해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개인의 특성이나 바른 관계성, 

이러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사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공부가 깊어질수록

개인과 세상의 관계성을 화엄적으로 바르게 바라보며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일부와 전체)는 

서로 인과 연이 되어 끝없이 연기를 계속합니다.

 

마치 "인드라"라는 천신에게는

우주를 다 보듬어 쌀 정도의 큰 그물이 있는데,

그 그물들의 그물코에는 각기 서로 다른 빛깔을 내는

구슬들이 무수히 매달려 있어  서로가 서로를 비춘다고 합니다.

 

한 구슬 안에 다른 구슬들이 들어와 비치고

다른 구슬들 역시 그러하듯이

세계는 중중무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연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화엄의 관점은 개체의 차별성을 존중하고,

개체의 가치를 신뢰하고 평등하게 바라보는 세계관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서로 다른

인종, 신분, 종교, 문화, 이념을 포용하지 않고 서로 대립하고

그들간의 체계에 대한 지나친 경직과 고집으로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화와 분쟁을 일으켜 왔습니다.

 

이들 체제와 차별의 경계가 누그러지고 개방적일 때,

서로간의 대화가 가능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개체와 전체가 조화로운 공존을 이룬 것이 참다운 세계의 모습입니다.

 

<영산회상도(영산정토)>

 

2. 개체와 전체의 조화로운 공존의 불국토, 정토(淨土)

 

이러한 조화로운 관계가 나라와 사회, 승가, 가정에서 꽃피는 곳이 바로 정토입니다.

 

의상 대사는 이와 같은 정토의 세계를

신라 사회와 화엄 승가를 통해 구현하려 했습니다.

 

676년 부석사를 창건한 후

논밭 장원과 노비를 기증하려는 왕명에 대하여

의상 대사는 다음과 같이 왕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법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평등하게 보고

신분의 귀천을 없이하여 한가지로 합니다.

더우기 <열반경>에서는 8가지 부정한 재물을 말하고 있는데,

출가한 제가 어찌 논밭을 가지고 노비를 부리겠습니까?

저는 법계를 집으로 삼고 바리때로 밭갈이를 하여

진리의 곡식이 익기를 기다립니다."

 

이 대목에서 의상 대사가 세속적 신분(진골)을 넘어

출가 승려로서의 본분과 인간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화엄적 세계관이 나타납니다.

 

의상 대사는 신라 전역에 화엄의 가르침을 널리 펴서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그의 문하에는 10대 제자와 3,000명의 문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10대 제자 중에는 지통과 같은 천민 노비 출신,

진정과 같은 빈민 출신의 제자들이 배출되어 그의 법을 계승하였습니다.

 

의상의 화엄 승가는 이처럼 신라의 완고한 골품제 신분 사회 속에서도

신분의 평등을 주장하고 비록 세속적 신분이 낮았을지라도

불법을 배우는데는 차별이 없다눈 개인의 가치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화엄적 실천을 해 나갔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