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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36) 제11분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1 - 무위복

by 아미타온 2024. 4. 29.

 

<금강경(36) 제11분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1 - 무위복>

 

<간월암 서해 바다>

 

"보리야,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갠지스 강이 있다면,

너는 그 모든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알이 아주 많다고 하겠느냐?"

  수보리는 대답했다.

"참으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갠지스 강도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그 많은 갠지스강의 모래알이겠습니까?"

  "수보리야, 이제 너에게 묻겠다.

어떤 사람이 이 많은 갠지스강의 헤아릴 수 없는

모래알만큼이나 수많은 보석을 보시한다면,

그 사람은 이 공덕으로 큰 즐거움을 얻겠느냐?"

  수보리는 대답했다.

"매우 큰 공덕을 얻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의지하여 수행하고,

단지 네 구절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준다면,

이러한 공덕으로 얻는 즐거움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니라."

 

 

<서해 바다 간월암>

1. 무위복

 

금강경 제11분의 제목은

"무위복승(無爲福勝)"분입니다.

 

해석하면 "함이 없는 복이여!

참으로 수승하고 위대하구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불교에서는 무위복유위복을 이야기합니다.

 

유위복은 한계가 있고 끝이 있는 복입니다.

자신이 10억의 재산을 가지고 사용한다면 언젠가는 끝이 있습니다.

이렇게 그 복이 끝이 있고 한계가 있는 복을 유위복이라고 합니다.

 

무위복은 한계가 없고 끝이 없는 복입니다.

마치 마르지 않는 한 언제나 솟아나는 약수물과 같이

우리에게 한없는 이익을 주는 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을 체득하여 얻어지는 무위복은

우리의 삶에 한없는 이익과 끝없는 복을 안겨주므로

참으로 위대하고 수승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분입니다.

 

부처님은 금강경 제 11분에서 갠지스강의 모래알을

비유로 드시며 이러한 무위복의 수승함을 설합니다.

 

11분은 이전까지의 내용보다 아주 감성적이고 시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분으로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분입니다.

 

< 바라나시를 흐르는 갠지스강/ 강 건너편으로 모래알이 빛나고 사람들의 기원이 강을 따라 흐른다. >

 

2.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보리야!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갠지스 강이 있다면,

너는 그 모든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알이 아주 많다고 하겠느냐?"

수보리는 대답했다.

"참으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갠지스 강도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그 많은 갠지스강의 모래알이겠습니까?"

 

 

갠지스강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발원하여

인도 동쪽 뱅골만으로 흘러들어가는 2,500km의 큰 강입니다.

 

인도인들에게 갠지스강은 그냥 단순한 강이 아닙니다.

 

인도인들은 갠지스강을 "강가(Ganga)"라고 부릅니다.

 

"어머니 강가"라고 부를 정도로 

인도인들의 한과 사랑과 애환과 신앙이 묻어 있는

강 이상의 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를 갔을 때

갠지스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 일찍 갠지스강에 몸 한번 담그기 위해

가트에 줄지어 선 인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찬 새벽에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며

목욕을 하고 신에게 기원하는 인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인도인들의 갠지스강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 강, 신의 강으로 신앙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인도인의 애환과 신앙이

담겨있는 갠지스강을 예로 드셨습니다.

 

갠지스 강의 모래알수만큼 많은 갠지스강이 있고,

그 모든 갠지스 강의 모래알수가 얼마나 많겠느냐고 물으십니다. 

 

2,500km를 흐르는 갠지스강 유역의 모래알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을까요?

 

그런데, 그러한 갠지스강의 모래알수만큼 많은 갠지스강이 있고,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라고 한다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수보리 존자는 참으로 많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