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40) 제13분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1 - 회향>
13분 여법수지분
이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을 어떻게 불러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전은 모든 번뇌망상과 고통을 없애주고,
해탈에 이르게 해 주는 힘이 있으므로
마땅히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 이 이름으로 부르고, 그 깊은 뜻을 수행하여라.
왜냐하면 여래가 말한 반야바라밀은
사실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로 반야바라밀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야, 여래가 가르친 것이 있느냐?"
수보리가 대답했다.
"여래께서 가르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야,
삼천대천세계에 작은 티끌이 많이 있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여래가 말한 티끌은 작은 티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진실로 작은 티끌인 것이다.
또한 여래가 말한 세계는 사실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이름하여 세계라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야, 여래를 32상(相)으로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 존자는 대답했다.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여래께서 32상이라고 말한 것은
근본적으로 상이 아니기 때문에 여래께서 32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이나
여러번 자신의 목숨을 바쳐 보시하고,
또 어떤 사람이 경전을 이해하여 의지하고 수행하며,
단지 네 구절만이라도 남을 위해 설명한다면
이로 인한 공덕으로 얻는 즐거움은 매우 클 것이니라."
1. 여법수지
제13분은 "여법수지(如法受持)"분입니다.
"금강경을 여법하게(법에 맞게) 받아지니라"는 뜻입니다.
금강경 마지막 32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심을 마치시었다.
장로 수보리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
그리고 일체 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며,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믿고 받아 들이고, 받들어 행하더라."
여법하게 법을 받아지닌다는 것은
마지막 32분에서 나타난 장면과 같다고 생각하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이 설해지는 곳은
부처님의 제자뿐 아니라,
일체의 모든 천,인, 아수라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고 공양을 올리는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법석에서 금강경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에 참다운 믿음의 마음을 내고,
크게 기뻐하고 환희스러운 마음으로
금강경을 받들고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바로 금강경을 법에 맞게 여법하게 받들어 지니는 모습입니다.
2. 회향
이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을 어떻게 불러야 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전은 모든 번뇌망상과 고통을 없애주고,
해탈에 이르게 해 주는 힘이 있으므로
마땅히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 이 이름으로 부르고, 그 깊은 뜻을 수행하여라.
우리들은 흔히 대승 불교와 소승 불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태국,미얀마,스리랑카 등의 남방불교를 소승 불교라 하고,
한국,일본,중국,베트남,티벳 등의 북방불교를 대승불교라고 합니다.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노력하는 불교를 소승 불교라고 하고,
대승불교는 자신과 타인을 함께 성불의 길로 나아가는 불교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회향(回向)"이라는 개념으로
소승과 대승을 분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선인선과 악인악과'를 말합니다.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불교를 배워서
선한 행위를 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공부해서
좋은 과보를 받아 이생에서도 항상 행복하고
다음 생에서는 천상과 같은 세상에 태어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선근(善根)을 심어서 좋은 세상으로 가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과관입니다.
그런데, 회향(回向)은 문자 그대로 "방향을 바꾼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선행을 하고 불법을 배우는 선근의 방향을
자신만의 행복과 안락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돌린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가?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전환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선근을 "자신의 안락과 행복"의 추구에서
자기의 "깨달음"의 추구로 방향전환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의 선근을 "자신의 안락과 행복"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깨달음과 행복"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이러한 회향의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정확한 구분은
회향을 하고자 하는 불교이냐
그렇지 않는냐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살은 이러한 2가지 회향을 서원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살이 2가지 회향을 잘 하기 위해서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6가지 바라밀행을 잘 닦아야 합니다.
보시바라밀은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지계바라밀은 우리 삶의 일정한 규율과 도덕을 의미하는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인욕바라밀은 나를 화나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들을 잘 참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진바라밀은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흔들림없이 매진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선정바라밀은 잊지 말아야할 것을 잘 기억하거나 주의를 기울이고,
명상에 의한 정신의 집중과 통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5가지 바라밀행의 마지막에 반야 바라밀이라는 것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반야바라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반야바라밀이란 위의 5가지 바라밀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지혜의 힘이 기반이 되어야함을 알려주는 바라밀입니다.
금경경에서 설하는 금강반야바라밀은 바로
"바라밀이라는 상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를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보시를 행할 때 보시를 한다는 상이 없어야
아까움 없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참다운 보시를 행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계율을 지킬 때에도 내가 바른 계율을 지킨다는 상이 없어야
상황에 따라 이성적이고 관용적인 판단이 가능합니다.
자신이 인욕을 행할 때에도 내가 저 사람을 참고 용서한다는 상이 없어야
다른 사람을 뒷끝 없이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진을 행할 때에도 내가 정진하고 있다는 상이 없어야
뒤돌아보지 않고 끝없는 불퇴전의 정진이 가능한 것입니다.
자신이 선정을 행할 때도 내가 선정을 하고 있다는 상이 없어야
스님처럼 절에 들어가서 좌선을 하거나,
인도 수행자처럼 요가를 하는 것만이 선정이라는 상이 없이
재가 생활을 하면서도 바른 선정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반야의 지혜
이와 같이 우리들이 선근을 심어
자신의 안락과 행복만을 위해 살려는 방향에서 전환하여
자신의 깨달음의 추구와 타인의 행복과 깨달음을 위해
살려고 하는 회향의 마음을 가진 보살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로 6가지 바라밀을 꾸준히 닦아야 하는데,
앞의 5가지 바라밀의 완성과 참다운 바라밀행을 위해서는
그릇된 상과 욕망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반야 바라밀의 공부와 수행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강경에서 설하는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은
하늘을 치는 번개와 벼락과 같은 강력한 힘으로
이러한 그릇된 상과 욕망을 부수어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단단한 금강석(다이아몬드)와 같은 단단함으로
그릇된 상과 욕망이 침범할 수 없는 힘이 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의 경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부르고
그 깊은 뜻을 새기고 닦아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금강경의 이름을 말씀하시고
제자들이 환희하며 신수봉행함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사실 금강경에서 말씀하시는 대의는 여기서 마무리가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금강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금강경>이 실제로는 여기서 끝을 맺고
이후에 나오는 32장까지는 앞에서 설한 금강경의 가르침과
예들에 대한 반복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때에도
주가 되는 곡조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그 노래 전체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하고
그 주가 되는 곡조가 더욱 돋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강경에서 이후에 펼쳐지는 이러한 반복적 가르침도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이해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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