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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41) 제13분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2 - 막행

by 아미타온 2024. 5. 16.

<금강경(41) 제13분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2 - 막행>

 

<용인 호암 미술관 희원 도깨비>

 

 

"왜냐하면 여래가 말한 반야바라밀은

사실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로 반야바라밀인 것이다."

 

 

 

 

1. 막행막식

 

"금강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잘 받아지니라"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금강경은 마무리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다시 법문을 시작합니다.

 

"여래가 말한 반야바라밀은

사실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로 반야바라밀인 것이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상(相)에서도 벗어날 것을 주문하시며

가르침의 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시고 계십니다.

 

누군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는

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금강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듣고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어떠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불교인들 중에 "모든 것은 공하다"고

주장하는 '입만 9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무애자재행"을 행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공(空)이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수행은 하지 않고 거짓말하고 술마시고

호색하고 도박하고 별별 하지 말라는 행동을 골라서 합니다.

 

그러더라도 업보를 받지 않고

이런 행동을 걸림 없이 행한다는

공의 삶과 무애행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얼치기 불교인들은

수행이라는 상을 가지는 사람보다

백만배나 더 위험한 사람입니다.

 

 

2. 참된 무애행

 

자신의 마음을 확고히 길들여서

욕망과 분노를 떨쳐낸 결과로서

더 이상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는

잘못된 분별심의 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성자로서의 능력과 사랑을 베푸는데,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게 되는 경지를 '무애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욕망과 분노를 잡아 내지 못하고

좋고 싫고 옳고 그른 마음의 장난인 분별심에

끊임없이 놀아나고 있슴에도

모든 것은 공하다고 하고 상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마음이 시키는대로 자유롭게 살자고 이야기하면서

인과를 부정하고 막행막식하며 "상이 없슴"의 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은

오히려 지옥행이 예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위인들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막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훈련이기 때문에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하나의 상(相)을 만들어 정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수행에 대한 바른 상을 세우고,

그 수행의 상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면이 있어야 합니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바라밀행을 할 때

상에 집착하지 않는 참다운 보살행을 하라는 의미를

"상에 집착하지 않음"이라는 상에 잘못 집착해버리면

부처님께서 바라시는 길에서 180도 어긋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원효 대사의 <발심수행장>에 

"동쪽 길을 서쪽인 줄 잘못 가는 나그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동쪽 길을 서쪽 인줄 잘 못 가는 나그네는

계속 어긋날 길을 끝없이 걸어가 아무런 유익도 보지 못합니다.

 

자비로운 부처님께서는 이 측면을 경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면

이것은 참다운 금강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에

부디 금강반야바라밀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