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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24) - 해동 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12) - 백화도량발원문

by 아미타온 2024. 5. 17.

 

<불교 인물사(24) - 해동 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12) - 백화도량발원문>

 

< 낙산사 관음보살상 >

 

1. 의상 대사의 관음 신앙

 

지금까지 의상 대사의 <법성게>를 살펴보았습니다.

 

의상 대사는 <법성게>에서 알 수 있듯이

화엄의 위대한 학승이었습니다.

 

동시에 의상 대사는 관세음 보살님을

열렬히 신앙한 신앙인이기도 했습니다.

 

의상 대사가 670년 중국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의상 대사는 왜 그렇게 간절히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기를 원했을까요?

 

의상 대사는 오늘날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이 있는

동해안의 어느 토굴에서 다음과 같은 발원문을 작성하고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도 낙산사 동해 바다를 보면 관세음보살님을 만나기

간절히 바랬던 의상 대사의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수월 관세음보살님 (수월 관음도 고려 불화)>

 

2. 백화도량발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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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首歸依 계수귀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觀彼本師 觀音大聖 大圓鏡智   

관피본사 관음대성 대원경지      

(저의 근본이 되는 스승 관세음보살의 대원경지를 관찰하오며)

 

亦觀弟子 性靜本覺 所有本師 水月莊嚴 無盡相好

역관제자 성정본각 소유본사 수월장엄 무진상호

(또 제자의 성정본각에 계신 근본이 되는 스승께서

수월로 장엄하신 다함이 없는 상호를 관찰하옵고 )

 

亦有弟子 空華身相 有漏形骸 依正淨穢 苦樂不同

 역유제자 공화신상 유루형해 의정정예 고락부동

 

(또한 제자의 헛된 몸과 유루有漏의 형체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정토淨土와 예토穢土의

즐거움과 괴로움은 같지 않습니다. )

 

今以 觀音鏡中 弟子之身

금이 관음경중 제자지신

(이제 관세음보살님의 거울(대원경지) 속에 있는 제자의 몸으로)

 

歸命頂禮 弟子鏡中 觀音大聖  

귀명정례 제자경중 관음대성

(제자의 거울(대원경지) 속에 계신 관세음보살님께 귀명정례 하옵고)

 

發誠願語 冀夢加被 惟願弟子 生生世世 稱觀世音  

발성원어 기몽가피 유원제자 생생세세 칭관세음

(진실한 발원의 말씀을 사뢰오니 가피를 내려주시길 바라오며

오직 원하옵건대 제자는 세세생생 관세음보살님을 염하며 )

 

以爲本師 如菩薩頂戴彌陀 我亦頂戴觀音大聖  

이위본사 여보살정대미타 아역정대관음대성

 (근본이 되는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오니

관세음보살이 아미타 부처님를 떠받들듯이 

저도 관세음보살을 떠받들겠습니다. )

 

十願六向 千手千眼 大慈大悲 悉皆同等

십원육향 천수천안 대자대비 실개동등

(10가지 원十願과 6가지 회향六向,

천수 천안과 대자 대비는 관세음보살님과 같아지며 )

 

捨身受身 此界他方 隨所住處 

사신수신 차계타방 수소주처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몸을 버리거나 몸을 받는 곳마다)

 

如影隨形 恒聞說法 助陽眞化 普今法界

여영수형 항문설법 조양진화 보금법계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이

저는 관세음보살을 따라서

언제나 설법을 듣고 참된 법을 널리 퍼트리겠습니다. )

 

一切衆生 誦大悲呪

일체중생 송대비주

(널리 온 누리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관세음보살의 대비주를 외우고 )

 

念菩薩名 同入 圓通三昧性海  

염보살명 동입 원통삼매성해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염불하게 하여

다 함께 원통 삼매의 성품의 바다에 들게 하며 )

 

又願弟子 此報盡時

우원제자 차보진시

(또한 원하옵나니

제자의 목숨이 다할 때에는)

 

親承大聖 放光接引 離諸怖畏 身心適悅

친승대성 방광접인 이외포외 신심적열

(친히 관세음보살님께서 빛을 놓아 맞이해 주시며)

 

一刹那間 卽得往生 白華道場 

일찰나간 즉득왕생 백화도량

(모든 두려움을 떠나서

몸과 마음이 쾌활하고 찰나에 백화도량에 왕생하여서 )

 

與諸菩薩 同聞正法 入法流水 念念增明 現發如來 大無生忍

제보살 동문정법 입법류수 념념증명 현발여래 대무생인

(모든 보살과 더불어 정법을 함께 듣고 진리의 흐름에 들어가서

생각생각 더욱 밝아져서 부처님의 무생법인을 깨달게 하소서 )

 

發願已 歸命頂禮 觀自在菩薩摩訶薩 

발원이 귀명정례 관자재보살마하살

(이미 원을 발하였으므로

관자재보살 마하살에게 귀명정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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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

 

3. 낙산사와 관음 신앙

 

<백화도량발원문>입니다.

 

"백화도량"은 관세음 보살님이 거주하신다는 보타 낙가산에는

흰 꽃이 만발한다고 하는 의미로 관세음 보살님의 도량이란 뜻입니다.

 

의상은 <백화도량발원문>에서 드러나듯 

관세음보살님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아

관세음보살님처럼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불법을 펼쳐나가려는 서원을 다짐하고 목욕재계하고 기도에 임했습니다.

 

 이 발원문과 함께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 끝에

의상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여의주와 수정 목걸이와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 관세음보살님은

"산 정상에 2그루 대나무가 있는데,

그 곳에 절을 세우라."고 해서 절을 세우고 창건한 절이 낙산사입니다.

 

낙산은 관세음보살님이 머무신다는

'보타낙가산(Potanaka,補陀洛伽山)'의 준말입니다.

 

의상 대사는 신라에서  관세음보살님처럼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불법을 펼치려는 서원을 다짐하고 보살행에 전념했습니다.

 

의상은 중국에서 화엄을 배웠고 

화엄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신앙적 측면에서는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 보살님을 향한

신앙과 같은 종교적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3대 관음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낙산사과

화엄 종찰이면서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부석사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부석사 안양루와 무량수전 >

 

4. 부석사와 정토 신앙

 

의상 대사가 676년 창건한 화엄10찰 중 가장 중심 사찰인 부석사는

화엄경의 주 부처님인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부석사에는 주 부처님을

서방 극락 정토의 교주이신 아미타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그래서, 주법당의 이름도 "영원한 생명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란 뜻의 "무량수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누각도 안양루(安養樓)라고 해서

극락 세계인 안양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은 하나로 통합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를 장엄하고

그곳으로 중생들을 인도하는 현역 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이기 때문입니다.

 

부석사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것은

마치 관세음보살이 아미타 부처님을 항상 모시는 것처럼

의상 대사도 영원히 관세음보살을 모시겠다는

본인의 서원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힙니다.

 

부석사를 창건할 때 의상 대사는 화엄 사상과 함께 

48대원을 구현하여 서방 극락 정토를 만든 아미타 부처님과

극락으로 중생들을 인도하기 위해 현역으로 뛰고 계신 관세음보살처럼

자신도 보살의 삶을 살아가며 신라를 정토로 구현하려는 신념이 확고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의상 대사는 화엄 사상을 정토 신앙과 접목하여

보살행의 실천과 불국토(정토)의 건설을 통해

자신의 불법을 이 땅에 구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원융한 화엄법계의 사상을 

보살행과 정토 건설의 실천으로 꽃피우려 하였던 의상 대사가

대중을 불교로 이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실천가였슴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의상의 보살행은 불법의 전파와 수많은 제자들의 양성에서 드러납니다.

 

그의 문하에서는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10대 대성을 비롯하여 3,000여 제자를 양성하였다고 합니다.

 

이 생에서 의상 대사가 불법을 대중들을 위해 펼치기 위해

얼마나 간절히 노력하였는지를 나타냅니다.

 

<백제 금동 관음 보살상>

 

5. 위대한 실천가, 의상 대사

 

오늘날 우리나라 많은 사찰의

창건주가 의상 대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수많은 절의 창건에 의상 대사와

그 제자들이 직간접으로 많이 연관되어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열심히 살면서도 그는

출가 수행자로서 계율을 지키고 청빈하게 살았습니다.

 

땅과 노비를 내리겠다는 왕의 불공에 대해

출가자로서 부정한 보시는 받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의상 대사의 모습에서

그가 출가자로서 얼마나 철저한 원칙을 갖고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토 신앙을 통해 드러나는 의상의 열렬한 신앙심,

법성게를 통해 드러나는 의상의 화엄 교학의 지성,

승려의 본분에 맞는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려 했던 그 원칙성은

출가 보살로서 의상 대사가 보살적 실천과 구현에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자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