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60) 부처님께 꽃을 공양한 꽃장수 수마나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꽃장수 수마나와 관련하여 게송 68번을 설법하셨다.
수마나는 매일 아침마다 코살라 국의
파세나딧 왕에게 자스민 꽃을 납품하는 꽃장수였다.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꽃을 가지고 왕궁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왕궁으로 가다가
둥그런 광명이 머리 위에 머물러 있는 부처님께서
수많은 비구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탁발을 하시기 위해 시내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부처님의 거룩하신 상호를 뵙자마자
왕에게 바치기로 되어 있는 꽃을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솟아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서 만약 자기가 국외로 추방되거나
심지어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꽃만은 부처님께 바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의 양 옆과 앞뒤에다 가지고 있던 꽃을 흩뿌렸다.
그러자 위로 던져진 꽃들은 공중에 머물러
부처님의 머리 위에서 일산(日傘)과 같은 모양을 만들었고,
옆으로 던져진 꽃들은 성벽처럼 부처님을 감싸면서
부처님의 움직임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탁발을 하시는 동안 그 꽃들은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여섯 가지 색깔의 빛과 함께 따라 움직였다.
이를 본 수천 수만의 시민들은 부처님 일행을 뒤따라오면서
그 아름답고 희귀한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하여 합장 공경을 올렸다.
시민들이 그처럼 기뻐하자 수마나가
환희심에 들뜬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리하여 왕에게 꽃을 보내지 못하게 된 수마나는
아내를 자기 대신 왕궁에 들여보내서 오늘 꽃을 바치지 못한 것을 사죄했다.
수마나의 아내는 안절부절 못하고 미안해했는데,
이미 부처님의 신자로서 왕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도리어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왕 자신도 밖으로 나가서
그 아름다운 광경을 직접 보았을 뿐 아니라,
부처님께 나아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그런 다음 왕은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왕궁으로 모시고 들어와 공양을 베풀었다.
공양이 끝나자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로 돌아오시게 되었을 때는
왕도 멀리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 드렸다.
그런 다음 왕은 왕궁으로 돌아와 수마나에게
여덟 마리의 코끼리와, 여덟 마리의 말,
여덟 사람의 남자 노예와 여자 노예, 여덟 사람의 시종,
그리고 팔천 냥의 황금을 상으로 내렸다.
기원정사에 도착하여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오늘 꽃장수 수마나가 행한 좋은 공양으로
그는 어떠한 공덕의 과보를 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생각하지 않고
여래에게 꽃을 공양하였느니라.
그는 이 공양 공덕으로 다시는 지옥・아귀・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며,
마침내는 벽지불이 될 것이니라.”
이렇게 대답하시고 부처님께서 간다꾸띠(부처님 처소)로 들어가시자
꽃들은 부처님의 처소 앞에서 땅으로 모두 떨어져 내렸다.
그날 밤 부처님의 정기적인 법회가 끝난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그 행동의 과정과 결과가
기쁨이요 행복이어서
한 점 후회도 없었나니
수마나의 행동은 매우 훌륭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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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양의 공덕과 환희
경전에서는 다른 어떤 공양과 보시보다
부처님과 아라한에게 올리는
공양과 보시의 공덕이 참으로 크다고 말합니다.
이번 <법구경> 이야기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한 꽃장수의 공양의 공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꽃장수는 왕에게 바칠 꽃을 부처님께 공양함으로써
자신에게 미칠 손해와 위험까지 감수하며 꽃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은 그 꽃 공양으로 나쁜 악도에 태어나지 않을뿐 아니라,
해탈까지 얻는 큰 공덕까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과 스승과 수행자에게 올리는
공양과 보시의 공덕이 왜 이렇게 큰 것일까요?
첫째는 공양의 대상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을 통해 해탈에 근접하는 수행자의 삶의 가치,
바른 가르침을 펼치는 부처님과 스승의 삶의 가치가
다른 어떠한 중생들의 삶과 성취의 가치와는 비교할수 없습니다.
해탈의 길을 걸어가고 해탈의 길을 가르쳐주는
부처님과 스승과 수행자에게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제공하고
행복과 기쁨을 주는 공양의 가치는 다른 존재에게 공양하는 가치보다 훨씬 큽니다.
둘째는 공양을 올리는 사람의 마음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있는 부처님과 이라한이므로
공경과 정성을 다해서 공양물을 준비하고
공경과 정성을 다해서 올리는 과정에서 행복과 환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국외로 추방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면서 꽃을 공양했던 꽃장수는
부처님을 위해 공양한다는 그 마음이 참으로 행복하고 환희로왔습니다.
공양은 믿음의 대상에 대해
자신의 정성과 공경을 바치는 것이므로
그 정성과 공경이 힘겨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환희의 길로 자신을 향하게 합니다.
오늘날에도 걸식하는 남방 불교의 전통에서는
재가자들이 음식물과 의복을 출가 수행자들에게
공양하고 보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큐 프로그램에서 미얀마에서
출가 수행자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갈 때
자신이 정성을 다해 지은 밥과 반찬을 공양올리는 여인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물을 공경을 다해 올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올리는 공양은 삼귀의의 구현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2. 6법 공양
<법구경> 이야기를 보면 부처님 당시에도 꽃 공양을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북방 불교권에서는 흔히 '6법 공양'이라고 해서
공양물로서 초, 향, 꽃, 과일, 쌀, 차(茶) 의 6가지를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초는 지혜의 등불을 상징하는 공양물입니다.
초는 자신을 태워(자비) 세상을 밝혀주는 대승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향은 해탈의 향기를 상징하는 공양물입니다.
향은 깊숙이 숨어 있고 가려진 곳까지 향기를 두루 나눠 주는 공덕이 있습니다.
꽃은 보살행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공양물입니다.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워 있는 모습은 마음을 환희롭게 하는 공덕이 있습니다.
과일은 깨달음의 열매를 상징하는 공양물입니다.
과일은 오랜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물로서
우리의 수행이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차는 선정의 맛, 해탈의 맛을 상징하는 공양물입니다.
차는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고 선정과 지혜를
깨닫는 감로의 즐거움, 감로의 맛을 나타냅니다.
쌀은 깨달음의 결실의 풍성함을 상징하는 공양물입니다.
봄부터 수많은 노력과 인고의 세월을 거친 후
가을에 수확하는 곡식처럼 깨달음의 결실의 풍성함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공양물의 의미를 잘 알고 공양을 올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꽃장수 수마나의 공양에 대해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그 행동의 과정과 결과가
행복이고 기쁨이어서
한점의 후회도 없었으니
수마나의 행동은 매우 훌륭했도다."
공양을 올리는 자신과 공양의 대상이
모두 행복이고 기쁨이어서
한 점 후회도 없는 훌륭한 공양이 되려면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공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잘 통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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