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62) 똥을 먹다 아라한이 된 잠부까 비구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잠부까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 70번을 설법하셨다.
잠부까는 사왓티 성에 사는 한 재산가의 아들이었다.
그는 전생의 인연에 의해서 아주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잠을 잘 때는
침구가 없이 흙바닥 위에서 자기를 좋아했고,
음식은 쌀밥 대신 자기의 대변을 먹었다.
그래서 그가 나이가 들었을 때 그의 부모는
그를 발가벗고 생활하는 아지비까 수행자들의 수도원으로 보냈다.
그렇지만 아지비까들도 음식 대신에 대변을 먹는 그의 행동을 보고
참아내지 못하여 자기네 단체에서 추방해 버렸다.
그러자 잠부까는 밤중에
사람들이 배설한 대변을 몰래 주워 먹고는
낮에는 하루 종일 다리 하나를 세우고 서서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자기가 이렇게 서 있는 것은
자기가 오직 공기만을 먹고 살기 때문이며,
또 만약에 자기가 두 발을 모두 땅에 딛게 되면
이 지구는 자기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는 잠을 자지도 않고 앉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사람들 사이에 '잠부까(승냥이 자칼)'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마침내 그의 이 같은 언행은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그중 어떤 사람들은 맛좋은 음식을 가져와 그에게 공양을 올리기까지 했다.
그러면 잠부까는 아주 겸손한 태도로 사양하면서
자기는 오직 공기를 먹을 뿐
그 밖의 다른 음식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음식을 가져온 사람들이 한사코 권하면
풀잎 끝에 음식을 약간 묻혀서 입에 대서
먹는 시늉을 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자, 이제 됐습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내가 이렇게 적은 음식이나마 취했으니
이제 당신에게는 큰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이같이 발가벗고 외발로 서 있으면서
밤에 자기의 대변만을 몰래 먹고 산 세월이 자그만치 55년이나 되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잠부까가
머지않아 아라한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날 저녁 때
잠부까가 외발로 서서 생활하는 곳으로 가시어
잠부까에게 하룻밤 지낼 적당한 장소가 없겠느냐고 물으셨다.
잠부까는 자기가 있는 편편한 바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위의 석굴을 가르키며 저곳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날 밤을 거기어서 보내셨는데,
그날 밤 초경(初更)이 되자 동남방을 맡은 천상의 천왕이,
이경(二更)에는 삭카 천왕이, 삼경(三更) 에는 마하브라흐마 왕이
자기 권속들을 거느리고 와서 부처님께 각기 공경 예배를 올렸다.
이때 숲 속은 밝게 빛나서 마치 대낮처럼 모든 사물이 잘 보였고,
그 빛은 널리 퍼져 갔기 때문에 잠부까는 이 광경을 세 번이나 보게 되었다.
그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날이 밝자마자 부처님이 계신 곳까지 와서
간밤에 자기가 본 찬란한 빛이 무엇이었는지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사실대로 대답해 주시었다.
그러자 잠부까는 매우 감동되어 부처님께 사뢰었다.
“당신은 참으로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그토록 위대하다고 알려진
삭카나 마하브라흐마 천왕들이 당신께 공경과 예배를 올리겠습니까?
저는 지난 55년 동안 공기만을 마시며
뼈를 깎는 듯이 어려운 수도생활을 해 왔지만
제게는 마하브라흐마나 삭카 천왕은 고사하고
천인 한 사람 내려와 공경을 표한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잠부까에게 말씀하셨다.
“오, 어리석은 잠부까여.
너는 비록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있을 지라도 여래를 속이지는 못하느니라.
여래는 네가 그 동안 네 자신의 대변을 먹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네가 흙바닥 위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과보의 소유자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느니라.
잠부까여, 너는 지난 과거생에 카사파 부처님 당시에
어느 신자가 덕 높은 비구 스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공양하는 것을 방해하여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또 다른 재가 신자가 너를 통하여 그 덕 높은 비구 스님에게
음식 공양을 보낼 때 그 음식을 던져 버림으로써 그로 하여금
공양을 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그런 습관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니라.
그 때문에 너는 금생에 너 자신의 대변을 음식 대신에 먹어야 하였으며,
또한 흙바닥 위에서 잠을 자는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니라.”
이에 잠부까는 무서움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껴서
전생의 나쁜 행동을 후회하며 발가벗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잠부까에게 가사를 주시어 몸을 가리게 하시고,
그를 위해 사성제와 위파사나 수행법을 차례로 설법하셨다.
잠부까는 부처님의 설법을 열심히 마음 기울여 듣고 있다가
부처님의 설법이 끝나자마자 곧 아라한이 되었고 비구 승가에 들어 왔다.
이와 같은 일이 있는 뒤에 잠부까를 스승으로 높이 받들며 공양을 올리던
양가와 마가다 등지에 사는 재가 신자들이 도착하여
자기 스승이 부처님과 같은 가사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고 당황해하였다.
그들은 두 사람 중 누가 어른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잠부까가 나서서 자기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것과,
이제 자기는 비구 승가에 들어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부처님께 제자의 예를 올려 보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설법하셨다.
“너희들의 스승은 극히 적은 음식을 먹으면서
한 발로 서서 잠을 자지 않는 고행을 55년간이나 해왔느니라.
그러나 그 55년간의 고행 생활이란 어제 오늘 그가 행한
지극히 짧은 비구로서 수행에 비할 때 16분의 1도 되지 못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설사 어리석은 자가 굉장한 고행을 하면서
풀잎 끝에 닿을 정도의 음식만 먹고
한 달 또 한 달을 살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사성제를 깨달은 사람의
십육 분의 일의 가치도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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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지비까 교단(사명외도)
잠부카 테라가 처음 출가한 교단은
아지비까(Ajivika) 교단이었다고 합니다.
이지비까 교단은 부처님 당시에 육사외도 중의 하나인
'막갈라 고살라'의 교단입니다.
불교 경전에 "사명외도(邪命外道)"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하는 교단입니다.
'사명외도'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고 삿된 방법으로 생
계를 유지하며 먹고 사는 외도'라는 뜻입니다.
왜 이들이 이러한 이름으로 불교 교단으로부터 비판 받았을까요?
이들은 자이나 교보다 더 가혹하고 엄격한 고행을 행하는 교단이었다고 합니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가시나무나 못박힌 판자에 앉거나,
뜨거운 불위를 걸어다니는 등 이들의 고행 방법은 가혹하고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이들은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것으로는
영혼(靈魂), 지(地), 수(水), 화(火), 풍(風), 허공(虛空), 득(得), 실(失),
고(苦), 락(樂), 생(生), 사(死)의 12가지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유물론자였습니다.
즉, 지, 수, 화, 풍이라는 물질적 실체와 '영혼'이라는 정신적 실체,
이러한 존재들이 활동하는 공간인 허공,
물질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법칙인 득과 실,
생명체가 나고 죽는 법칙인 생과 사,
이들이 겪는 고와 락의 감정을 존재의 불변의 실체로서 인정했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행동이나 운명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개척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연적인 요소의 결합과 법칙에 의하여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숙명론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선한 행위를 하든 악한 행위를 하든
인과적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고,
자연적으로 결정된 윤회의 삶을 계속하다보면
언젠가는 해탈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숙명론자들인 아지바까 교단이
왜 고행을 주된 생활의 방편으로 삼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고행도 자연의 정해진 이치,
즉 결정으로 보아 고행 그 자체를 목적시하였다거나,
혹은 고행에 대한 어떠한 실천적 의의를 인정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지바까 교단의 교주인 막갈라 고살라가
자이나 교주인 마하비라와 함께 수행을 했다고 하고,
교주가 죽은 후에 주로 자이나 교단에 흡수된 것으로 보아
자이나 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아지비까 교도들은 자연의 정해진 이치를 따르기 위해서든,
수행의 실천적 가치를 위해서든,
고행의 모습으로 존경심을 유발하여 먹고 살기 위한 생활방편이든,
철저한 고행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이들은 자이나 교와 함께 육사 외도들 중에서도 유력한 교단 중의 하나였습니다.
특히, 부처님께서 주로 전법을 펼치셨던
기원정사가 있던 사위성(사왓티)이 이들의 본거지로 교세가 강했습니다.
이들은 불교 교단과 경쟁 관계였기 때문에
부처님과 불교 교단을 험집내기 위해 사악한 짓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인과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바라보았던 아지비까 교단은
자기 교단의 여자 신도인 순다리를 기원정사에
자주 출입하게 한 뒤에 살해하여 기원정사에 묻어 버리고
불교 교단에서 살해한 짓이라고 루머를 퍼트리는 등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2. 아라한
밥 대신 똥을 먹고,
집 대신 흙바닥에서 자는
아주 엽기적인 생활 습관을 가진 엽기남이었던 잠부까!
그는 처음에 아지비까 교단으로 출가했습니다.
엽기적인 습관 때문에 쫓겨났지만,
그가 이들로부터 배우고 익힌 것은
고행의 생활법과 인과를 부정하는 숙명론적 견해였던 것입니다.
그는 고행의 생활법으로 사람을 속이고 존경을 받으며
실제로는 똥을 먹으며 엽기적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엽기남이었던 잠부까는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바로 아라한 과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천상계의 여러 천왕들로부터 공양받는 모습으로
잠부까가 고행의 생활법을 통해 사람들을 속여
공양과 존경을 받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 것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잠부까 테라의 엽기적인 생활 습관이
전생의 어떠한 업의 과보인지를 가르쳐주심으로 해서
그가 아지비까 교단으로부터 배운 인과를 부정하고
숙명론적 견해가 허구라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게 해 주셨습니다.
비록 엽기적인 삶을 살았지만
세속에 대한 욕망이 없었고
고행으로 축적된 수행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부처님으로부터 사성제와 인과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만으로 바로 아라한 과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엽기남에서 아라한으로 180도의 화려한 진화,
위대한 탄생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법구경 게송 또한 이와 맥락이 닿아있습니다.
극미량의 음식만 먹고 고행을 행하며 몇 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사성제와 인과의 도리를 깨달은 사람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고행주의자들이
고행을 신봉하며 살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성제와 인과의 도리를 듣고
금방 이해하고 받아들인 점에서 보자면
잠부카 비구는 비록 엽기남이기는 했어도
고행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었고 지성적인 수행자였슴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통해 엽기남에서 아라한으로
바로 전환이 가능했던 잠부카 비구의 이야기는
사성제와 인과의 다르마에 대한 철저한 납득과 이해가
수행자의 변화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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