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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47) 제14분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2 - 실상

by 아미타온 2024. 6. 6.

<금강경(47) 제14분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2 - 실상>

 

<부산 범어사 일주문>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는

맑고 깨끗한 믿음을 내어 실상(實相)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가장 드문 공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실상은 근본적으로 실상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래께서 그것을 실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범어사 대웅전>

1. 백은 선사 이야기

 

'어느 장군과 백은 선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한 장군은 고향 땅 근방에

"백은(白隱)"이라는 유명한 선승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장군은 일평생 전쟁터를 누비며

나라와 백성을 지키며 고생한 자신들과는 달리 

물 맑고 산 좋은 곳에서 백성들에게 배부른 소리나 하는 스님을 싫어했습니다.

 

장군은 백은 선사를 만나자 대뜸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그대에게 물을 것이 있어서 왔소?   

나는 전쟁터에서 내 칼로 수많은 적군들을 죽이고

또 병사들로 하여금 적들을 죽이게 하였소.

불가에서는 살생을 하면 지옥으로 간다고 했는데,

나는 그럼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나, 내가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이 나라 백성들은 적들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았겠소?

그렇다면 나는 나라와 백성을 구했으니

극락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어떻소?

나는 과연 나중에 죽으면 극락에 오를 것이요?

지옥에 떨어질 것이오?"

 

백은 선사는 장군의 말을 듣고

아래 위로 장군을 한번 훑어보고는

콧웃음을 치며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흥... 장군이라고?

웃기고 있네.

생긴 것은 꼭 도둑놈처럼 생겨가지고

거렁뱅이라도 네 놈보다는 낫겠다."

 

장군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습니다.

어디서나 극진한 대우를 받던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모욕이었습니다.

 

선승이 자신의 물음에 갖은 말로 둘러대면

선사를 실컷 비웃어 주려고 생각했는데,

먼저 한방을 얻어 맞으니 열이 머리 끝까지 솟았습니다.

 

장군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내어 선사를 내려치려고 했습니다.

칼로 내려치려는 순간 백은 선사의 일갈이 들렸습니다.

 

"분노하는 그 순간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다."

 

순간 장군의 머리를 땅하고 치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앞에는 일점의 두려움이나 당황함이 없는

고요하고 평온한 얼굴의 선승이 앉아 있었습니다.

 

무섭게 치밀어 오르던 분노의 불길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장군은 어느덧 손에 든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선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어 추태를 부렸습니다."

 

이 때 다시 백은 선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장군!  이제야 극락문이 활짝 열리는군요."

 

<부산 범어사 전경>

2. 그릇된 미망을 버림

 

아마 불자라면 많이 들었던 선가의 일화일 것입니다.

 

장군과 선승의 일화를 보자면

깨달음은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십년 이십년의 고난의 수행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인식의 전환으로 깨달음이 올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지옥의 고난이 끝나고 극락문이 열렸냐 하면

장군이 마음의 칼을 버림으로서 이루어졌습니다.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지킨

훌륭한 장군이라는 자부심과 명예...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말장난이나 하고

혹세무민하고 있다고 믿었던 승려들에 대한 시기와 분노...

 

이러한 그릇된 상(相)이 마음의 칼이 되어

날이 갈수록 서슬퍼렇게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백은 선사의 한마디에

그릇된 상에서 기인한 마음의 칼을 버리는 순간

평온한 극락문이라는 꽃이 피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허상을 버리는 순간 실상(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거짓이 사라지는 순간 진실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텅 비어 있는 그릇처럼 공한 것입니다.

그 텅빈 그릇에 칼(지옥)을 담을 것인지,

꽃(극락)을 담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인은 바로 나의 생각과 의지입니다.

 

칼(지옥)을 선택하는 순간 칼(지옥)은 내가 되고,

꽃(극락)을 선택하는 순간 꽃(극락)은 내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라고 하는 독립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상에 사로 잡혀 칼을 잡으면 내가 칼이 되고,

진실을 깨달아 꽃을 잡으면 내가 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치를 안다면 우리도 칼을 버리고 꽃을 잡은 장군처럼

허상을 버리는 순간 실상이 드러나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범어사 3층석탑>

3. 실상은 실상이 아니다

 

장군과 백은 선사 이야기를 위의 금강경 가르침에 적용해 봅시다.

 

우리가 금강경의 가르침을 받아 지녀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잘못된 상에서 벗어나

맑고 깨끗한 믿음을 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칼을 버리는 순간 극락문이 나타난 장군이 

진실을 발견하여 마음의 적멸을 얻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참다운 실상이 드러나 평화와 행복이라는

공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실상은

무언가 실재하는 하나의 또 다른 상이 아닙니다.

 

실상은 '실상'이라는 고정된 상에 대한 추구와 집착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이 사라지면 진실이 나타나고, 구름이 걷히면 해가 드러나는 것처럼

허상을 버리면 실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데 드러난 실상을 다만 실상이라 이름할 뿐입니다.

 

"실상은 근본적으로 실상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래께서 그것을 실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수보리 존자의 말씀은 바로 이 의미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