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48) 제14분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3 - 상(相)>
세존이시여, 오늘날 제가 이 훌륭한 경을 듣고
그대로 믿고 받아 지니며 실천에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5백년 뒤,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는 그것에 믿음을 가지고,
이해하고 지니며,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분명 그와 같은 사람은 위대하며 드물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상, 인상, 중생상, 그리고 수자상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상은 곧 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상에서 벗어난 사람을 부처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1. 법화경의 거지 아들 이야기
법화경에 <거지 아들과 장자 아버지의 비유>라는 유명한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부유한 장자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어릴 때 집을 나가서는 길을 잃어버려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어 그 아들은 거지로 몇 십 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궁핍하게 살다 보니 자기 고향도 잊어버리고,
자기 집과 자기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어지고
매일 남의 집에 가서 품을 팔아서 겨우 먹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떠돌다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인
장자의 대궐 같은 집이 있는 동네로 구걸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대궐 같은 집 대문간에 서서 밥을 얻어먹으려고 하니까
그 집 마루에 어떤 부유한 장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
만만한 집이어야 밥도 얻어먹으러 들어가는데,
집이 너무 크고 웅장해서 거지는 쉽사리 그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들어갈까말까 입구에서 망설이며 서성이고 있는데,
평상에 앉아 대문간을 바라보던 장자가 자기 아들인 거지를 보았습니다.
아!!!
그 거지는 꿈에도 그리던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장자는 너무 반가워서 "내 아들아!” 하고 쫒아 나갔더니
이 아들은 자기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겁을 먹고는 부리나케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하인을 시켜 그 아들을 붙들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지 아들은 자기를 잡으려 오는 줄 알고 너무 놀라서 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장자가 생각하기를
‘아, 이래서는 이 아이를 죽이겠구나.’ 싶어서 그냥 내버려 두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한참 기절해 있다가 다시 일어난 아들은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없어져서 살았다 싶어 얼른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하인에게 거지 옷으로 갈아입히고는
자기 아들인 그 거지를 찾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야, 이 사람아, 저기 가면 좋은 집이 있는데,
그 집에 가서 일하면 딴 데 가서 일하는 것보다 두 배의 돈을 주니까 가자.”
라고 일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주로 외양간에서 똥 치우는 일을 시켰는데,
수고비를 두 배로 주니까 열심히 일을 잘 하였습니다.
하루는 이 아버지도 일부러 거지 옷으로 갈아입고
그 아들이 사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들은 그 거친 일을 아주 열심히 하면서도
머슴방에서 재미있게 살고 있었습니다.
거지로서 옛날에 떠돌이 할 때와 비교하면
‘이게 천국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장자는 가슴이 아팠지만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래서 한참 세월이 흘러 십년이 지나서는 집안 청소하는 일을 시키고,
그 다음에는 하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급의 일인 창고를 관리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곳간의 곡식을 밖에 내주고 또 받아 오고 돈도 헤아리는 일을 맡긴 것이었습니다.
거지 아들은 이 집에서 한 이십년 살다 보니까
이제는 그런 것도 할 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그 집의 전 재산을 관리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자기 아버지 재산인줄은 몰랐습니다.
여전히 그 집의 종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그 장자가 늙어 죽게될 즈음이 되었습니다.
장자는 모든 사람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내 아들이오.
이 모든 재산이 이 사람의 것이요.”
그제서야 그 거지 아들은 장자가 자신의 아버지이고,
자신이 관리하던 재산이 자신의 것임을 알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님의 아들딸인데,
무명의 업식에 가리워 그것을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중생들에게
부처님께서 다양한 방편을 써서
마침내 부처의 아들딸임을 알게 해 준다는 법화경의 유명한 비유입니다.
2. 자비로운 방편
금강경의 위의 말씀을 들으니
법화경의 거지 아들과 장자 아버지 비유가 생각납니다.
금강경의 위의 말씀은 제6분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라는 분에
나오는 내용이 리메이크업해서 나오는 부분입니다
.
<금강경>에서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믿고 설법하는 공덕이
수없이 많은 재물과 목숨을 보시하는 공덕보다 더 크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사람이 있는 그 곳이
바로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분들이 있는 곳과 같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금강경>에 바른 믿음을 가지는 사람의 공덕은 참으로 희유하다는 것에 대한 말씀이
여러번에 걸쳐 리메이크업되어 나옵니다.
자신이 부처의 아들딸임을 믿지 못하고 놀라서 거부하는 아들에게
장자 아버지는 "너는 나의 아들이고 이 재산은 너의 것이다."라는 깨우쳐 주시려고
방편을 쓰십니다.
집안의 하인으로 들여서 외양간 똥치우는 일도 시키고
집안 청소도 시키고 창고 관리도 시키면서 성급하지 않고 자비로운 방편을 베푸십니다.
<금강경>에서 상에 집착하지 않는 그곳에
참다운 적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우리들에게
다양한 예화와 비유를 드시고 그것을 반복해서 일깨우며
우리들을 믿음의 세계에 들게 하시려는 부처님의 큰 자비심이 느껴집니다.
그만큼 믿음이 부족한 중생계에 있어서
바른 믿음이란 참으로 희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거지 아들이 자신이 거지라는 상에 매어
거지로 살고 있는 한 부처님의 아들임을 알지 못합니다.
99명을 죽인 살인자 앙굴리마라가 잘못된 믿음의 노예와
살인자라는 상에 매어 있는 한 그는 살인자일 뿐입니다.
똥군 니이다이가 나는 비천한 불가촉천민이라는 상에 매어
지내는 한 그는 여전히 비천한 똥군일 뿐입니다.
기생들의 우두머리 연화색녀도 남자들에 대한 증오라는
상에 매어 지내는 한 악업을 저지르는 색녀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상이라고 하는 것이 영원하고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상인가요?
거지 아들의 본 바탕이 거지인가요?
앙굴리마라가 본래부터 살인자였는가요?
똥군 니이다이가 본래부터 불가촉천민이었는가요?
연화색녀가 본래부터 색녀였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3. 상(相)
잘못된 교육과 인식과 문화와 함께
여기에 자신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결합하여 형성된 것이 바로 상(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도 곧 영원하고 고정되어 변할 수 없는 상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깰 수 있는 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상은 곧 상이 아니며,
인상,중생상, 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라는 말씀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거지 아들이 20년간 하인 생활을 통해
자신을 닦아서 자신이 더이상 거지 아들이 아니라,
장자의 아들이라고 인식하게 된 순간 그는 변화합니다.
"더 이상 나는 거지 아들이 아니라 부처님의 아들이다."
앙굴리마라가 잘못된 믿음의 폐해와
살인자라는 자책감에서 벗어나 참다운 참회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살인자 앙굴리마라가 아니라 비폭력의 성자 아힘사 비구인 것입니다.
똥군 니이다이가 자신이 똥이나 퍼는
비천한 불가촉천민이라는 열등감이라는 상을 버리고
자신이 수행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니이다이는 수행자 니이다이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색녀 연화색녀도 목련존자의 도움으로 남편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자기파괴적인 삶의 허망함을 버리는 순간
더 이상 중생 연화색녀가 아니라 부처님의 신통제일 10대 비구니 제자
중의 한 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상에서 벗어난 사람을 부처라고 이름한다."라는
말씀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은 부처라고 하는 무언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아무리 실감나는 꿈을 꾸었더라도 꿈은 꿈이고,
꿈에서 깨어나면 그것이 꿈임을 아는 것처럼
꿈에서 깨어나 진실을 자각하는 순간처럼
모든 상에서 벗어난 이를 부처라고 이름할 뿐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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