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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50) - 제14분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5 - 인욕

by 아미타온 2024. 6. 15.

<금강경(50) - 제14분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5 -  인욕>

 

<서울 우면산 대성사 관세음보살상>

 

 

수보리야!

여래가 인욕바라밀(忍辱波羅密)은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말했으므로

그것을 인욕바라밀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아주 옛적에 인욕선인이었을 때를 생각한다면,

가리왕(歌利王)이 내 몸을 갈갈이 찢었을 때,

나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 때 만약 내가 그러한 견해에 머물러 있었다면

나는 그 왕에게 분노를 느끼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니라.

또한, 아주 옛날 5백 생을 거듭하면서

나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지 않고 인욕바라밀을 수행하였다.

 

 

1. 석가족과 유리왕 이야기

 

우리들이 당하는 재앙을 보면

대부분 화를 참지 못한데서 그 원인이 있습니다.

 

순간의 화를 찾지 못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는 많습니다.

 

부처님의 종족인 석가족이 멸망한 이야기도

석가족과 유리왕자가 인욕을 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약소국이었던 석가족의 카필라국에

강대국인 코살라국왕이 청혼을 했습니다.

 

석가족은 고결한 석가족의 공주를

야만적인 코살라국에 시집 보낼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쁘고 총명한 여종을 왕족으로 속여

코살라 국왕에게 시집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유리 왕자가 7살 되던 해에

외갓집에 놀러 왔다가 새로지은 신전의 제단 위에 올라가서 놀았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한 행동인데,

석가족은 "종년의 자식이 감히 신전을 더럽히느냐?"고 말했습니다.

 

유리 왕자는 태자인 자신을 "종년의 자식"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큰 원한을 품고 코살라국으로 돌아가 그 원한을 키웠습니다.

 

왕위를 찬탄한 유리왕은 후일 부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즉위 후 제일 먼저 카필라국을 침략하여 석가족을 몰살시켰습니다.

 

그의 원한이 얼마나 컸던지 석가족을 머리만 남기고 땅에 파묻은 뒤

코끼리로 밟아 죽였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과거에 뿌린 것은 작지만 비록 지금 얻는 것은 많다."

는 옛말이 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한 경솔함과 원한에 의한 업보는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욕은 보살들의 수행덕목인 6가지 바라밀 중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분노로 인한 업보를 자각하여   

나에게 주어지는 삶의 어려움과

타인의 비난, 중상, 모략, 굴욕 등을 참아내어

분노의 마음을 일으켜 복수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욕은 단순히 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타인에 대한 저주가 가득하면서

참는 것은 참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게 속으로 누르며 참으면 울홧병이 생기고

언젠가 그 분노가 계기를 만나면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욕에도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과 같은

상에 집착하지 않고 인욕행을 하라."

 

그리고, "인욕바라밀조차도 인욕바라밀이 아닐수 있기 때문에

인욕바라밀일수 있다"는 말씀을 합니다.

 

 

2. 가리왕과 인욕 선인 이야기

 

이러한 인욕행과 인욕바라밀의 예로서

부처님의 전생담 하나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깨달음과 중생구제를 위한 보살행을 닦으며

수없는 생을 살아온 과정을 적은  부처님의 전생을 기록한 

<본생담>에 나오는 것으로 "가리왕과 인욕 선인의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 전생에 인욕선인이라는 수행자가 되어

인욕을 실천하기 위해 홀로 산중에서 수행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의 왕이었던 가리왕이 많은 신하와 궁녀들을 데리고

그 산으로 사냥을 왔습니다.

 

왕은 사냥을 하고 나서 점심을 먹자 노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궁녀들은 이 틈을 타서 놀라 나갔다가

산 중에서 인욕선인이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녀들은 공경하는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와 꽃을 꺾어

인욕선인에게 공양하고 그 앞에 앉아 조용히 설법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편, 잠에서 깨어난 가리왕이 궁녀들이 보이지 않자 

군사들과 같이 궁녀들 찾았습니다.

 

그런데, 궁녀들이 인욕 선인과 같이 있는 것을 보고는

질투심이 불타올라 화가 나서 "너는 무엇을 하는 놈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인욕 선인은 "저는 인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왕은 그의 인욕을 시험이라도 하겠다는듯이

그의 신체를 칼로 잘라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팔을, 그리고 두 다리를,

그리고 그의 얼굴의 코가 잘리는 고통 속에서도

인욕 선인은 가리왕에게 분노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높은 도에 뜻이 있으니 어떻게 이와 다툴 것인가?

이 왕은 나에게도 이렇게 칼질을 하는데

하물며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하리요.

원하거니 내가 부처가 되면 반드시 이 사람을 먼저 제도하여

중생들이 그 악을 본받지 못하게 하리라."

 

한편, 가리왕이 인욕선인을 가해하는 것을 보고

사천왕이 분노하여 가리왕과 그의 처자를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자 인욕선인은 말했습니다.

 

"이 재앙은 내가 전세에 불교를 받들지 않고

그를 괴롭혔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악을 행하여 화가 따르는 것은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도다.

과거에 뿌린 것은 작지만 지금 얻는 것은 많도다.

내가 그대의 명에 따르면 화가 천지와 같아 업보는 이어질 것이니

어찌 화를 마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다면 부디 가리왕을 해치지 말라."

 

이 말을 마치자 인욕선인의 피가 우유빛과 같은 젖이 되고,

예전과 같이 몸이 온전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자 극악한 가리왕도 크게 뉘우치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였습니다.

 

후일 인욕선인은 부처를 이루어 석가모니불이 되었고,

가리왕은 인욕선인의 원대로 부처님의 첫 제자인 교진여가 되었다고 합니다.

 

 

3. 분노에서 벗어난 인욕바라밀

 

인욕선인의 인욕행을 보면 화살을 남(가리왕)에게 겨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인욕선인)에게 돌립니다.

 

자신이 욕을 당하는 것은 과거의 업에 대한 과보를 받는 것으로

자신이 그 욕을 피하려고 한다면 

더욱 큰 화가 될 것이라는 업보에 대한 자각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전생의 악연으로 가리왕에게 고초를 당하면서도

이를 참음으로서 악연을 끊겠다는 의지가

인욕의 근본이 되고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조건 내탓이요."라는 수동적 받아들임이 아닙니다.

 

한번 맞은 독화살을 남에게 다시 돌려

분노와 원망으로 즉각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잘못이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분노에 대한 업보를 차분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태 파악을 하고 참음으로서 악한 인연을 끊겠다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업보에 대한 자각이 

인욕행을 할 때의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욕선인은 자신의 고초를 문제 삼지 않고

왕의 무지와 난폭으로 인해 백성들이 받을 고초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 왕에게조차도 자비심을 일으키고

그를 먼저 구원할 원을 세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실 당시에 마왕의 무리가 불화살을 쏘자 

그 불화살이 연꽃이 되어 되돌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즉, 자비심을 일으켜 그를 구제하리라는 원을 세움으로서

악한 인연을 오히려 선한 인연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비심과 자비심에 기초한 원력의 결과

원수 사이가 오히려 스승과 제자의 사제 관계로 변화하게 됩니다.

 

인욕선인의 인욕행을 보면 가리왕에 대한

원망이나 복수,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비탄이나 좌절이 없습니다.

 

즉, 내가 참는다는 아상이나,

너가 죽일놈이라는 인상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중생상이나,

내가 대단한 인욕행을 한다는 수자상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업보를 자각하고 자비심과 원력으로 

악한 인연을 선한 인연으로 돌리려는

참으로 착한 인욕 바라밀만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참다운 인욕행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인욕행을 한다는 그러한 모든 상을 떠났기에

진정한 인욕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무주상 인욕행을 

500생을 거듭하며 인욕바라밀을 닦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분노는 자신이 쌓아온 모든 공덕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지 못하는 것이 모든 화의 근원이고

인욕이 만복의 근원입니다.

 

우리의 인욕행이 처음에는 미약하더라도

인욕선인의 이야기를 자주 생각하여

우리도 화살을 남에게 즉각적으로 돌리지 말고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려는 업보에 대한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한과 미움 속에서는

업은 무서운 과보로 자라고

인욕과 자비 속에서는

아름다운 과보로 자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악행을 하는 대상에 대한 자비와 원력을 세워

이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다면

더 이상 분노와 울화가 우리 곁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