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2) - 제14분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7 - 뗏목 >
여래는 '모든 상은 상이 아니므로,
모든 중생은 중생이 아니다.'라고 했느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있는 그대로의 말을 하는 자이며
진실만을 말하는 자이니,
여래는 사람들을 속이는 말이나 다른 말을 하지를 않는다.
수보리야! 여래가 깨달은 법은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붙잡을 수 없는 허망한 것도 아니다.
1. 강과 뗏목
부처님은 뗏목은 강을 건너는데
꼭 필요한 훌륭한 도구지만,
강을 건너고 난 후에도 영원히
집착하여 지고 갈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많은 가르침은
각기 다른 근기와 상황에 처한
중생들에게 가르쳐 주신 방편법입니다.
부처님의 방편법은
우리가 고통의 강을 건너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방편법 하나가
그 어떤 상황이나 사람들에게 맞는
절대적인 하나의 고정된 가르침이 될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팔만사천법문이 행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방편법을
마치 절대적인 고정된 상으로 바라보고
강을 건너도 뗏목을 언제나 등에 매고 다닌다면
얼마나 힘들고 이상할까요?
즉, 고정된 상이 되어버린 가르침에 집착한다면
부처님의 원래 의도와 가르침의 근본 뜻과는 달리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2. 달과 손가락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달이 아닙니다.
달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기 위하여 손가락이 필요할 뿐입니다.
손가락은 거짓을 말하지 않지만,
만일 우리가 손가락에 집착하여 달을 보지 못한다면
손가락에게 속은 듯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러면 손가락을 비난하고,
부처님이 거짓을 말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점을 경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래는 있는 그대로의 말을 하는 분이며,
진실을 말하시는 분이며,
사람들을 속이는 말이나,
다른 말을 하지를 않는 분입니다.
그런데, 가르침이라는 상에 집착한 사람이
자기 깜냥대로 가르침을 해석한 사람이
달을 보지 못할 때는
어리석게도 가르침을 비난하고 부처님을 비난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은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붙잡을 수 없는 허망한 것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롭게 가르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되새기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실천하면 가르침은 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상(法相)에 집착하여 만사를 법상이라는 칼로
안팎으로 휘두를 때는 그 칼을 맞아 고통을 당할 수도 있으니
이러한 점을 잘 알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허망하게 만들지 말라는
부처님의 자비심이 담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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