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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56) - 제16분 능정업장분(能淨業障 分) 1- 멸시

by 아미타온 2024. 7. 1.

< 금강경(56) - 제16분 능정업장분(能淨業障 分) 1- 멸시 >

 

<국립 춘천 박물관 철불 부처님>

 

  "더 나아가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을 외우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난받거나 멸시당한다면,

그가 과거 생의 죄업으로 악도(惡道)에 떨어질 터였더라도,

지금 그가 비난받고 멸시당하는 까닭으로 과거에 지은

모든 죄업은 사라질 것이며,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수보리야, 헤아릴 수 없는 아주 오랜 옛날, 연등불을 만나기 전에

나는 8백 4천만억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올리고 그들을 받들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세에 이 경전을 지니고, 외우고, 익히며, 수행한다면,

이 공덕으로 얻는 즐거움은 내가 과거에 모든 부처님을 섬기면서

얻은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훨씬 더 클 것이다.

사실 그러한 즐거움은 생각할 수도 없고,

수리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으며,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말세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지니고, 외우며, 익히고, 수행하여,

그 공덕으로 얻을 즐거움은 너무나 크다.

만약 내가 지금 자세히 설명한다면,

어떤 이는 그것을 듣고 의혹을 품으며 믿지 않을 것이니라.

허나 수보리야, 이 경전의 심오한 뜻은

생각과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경전을 지니고 수행함으로써 얻는 공덕

또한 생각과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라."

 

 

1. 능정업장(能淨業障) 

 

<금강경> 제16분의 제목은

"능정업장(能淨業障)"분입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것으로

선세의 모든 더러운 업이 능히 깨끗히 소멸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이 쇠퇴한 말세(말법 시대)에 금강경을 수지독송한다면

그 공덕이 불가사의할 것이라는 말씀도 나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신심을 갖고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에 대해 잘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을 외우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난을 받거나 멸시당한다면,

그가 과거 생의 죄업으로 악도(惡道)에 떨어질 터였더라도,

지금 그가 비난받고 멸시당하는 까닭으로

과거에 지은 모든 죄업은 사라질 것이며,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2. 인과법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설하면

헤아릴 수 없는 큰 공덕이 있을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현재생에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거나 멸시를 당하거나

삶에 여러가지 곤란이 생기는 등의

현재생에서 좋지 않은 과보가 생긴다면 

금강경의 공덕을 의심하고 부처님의 말씀에 회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제16분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부처님의 지적으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가져오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과보를 가져온다'는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의 인과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잘 사는 경우도 볼 수 있고,

반대로 좋고 옳은 일을 하면

오히려 더 손해를 본다라는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금동 보살상 (국립 춘천 박물관)>

 

3. 긴 윤화적 관점

 

여기에 대해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답을 제시합니다.

 

즉, 인과 관계의 설정을 너무 협소한

현재적 시점에만 국한해서 바라보지 말고,

과거생-현재생-미래생 이라는 긴 윤회적 관점에서

인과 관계를 바라보고 그 연기적 실상 전체를 간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현재 생에 좋은 행위를 하면

현재생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과의 법칙은 한치 오차도 없어서

비록 현재생에 과보를 받지 못할지라도

내가 현재 좋은 일을 하고 있는 행위는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선과를 이룰 것입니다.

 

현재 내가 좋은 행위를 하는데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악한 과보는

과거생의 나의 악한 업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행위의 인과 관계를

기나긴 윤회의 과정 속에서 넓게 설정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일하면 손해본다.", "나쁜 놈이 더 잘된다."라는

우리의 현실적 판단은 옳은듯 하지만,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긴 윤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과의 법칙은

나의 현재 삶에서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이

곧 나의 현재적 행위의 결과만은 아니라고 하는

과거생과 미래생으로 연결된 보다 드넓은 인식의 지평을

제공하는 아주 훌륭한 논리 구조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해서 손해 보기 때문에

좋은 일을 안 할 것이 아니라,

현생에서는 손해보든 말든 반드시 선업을 계속 쌓아가는

행위야말로 올바른 인과적 행위라는 것입니다.

 

 

4. 핍박과 멸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도 이러한 긴 윤회적 관점에서의

인과법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금강경>의 실천으로 인해

현세에서는 핍박과 곤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금강경을 실천해서 생기는 과보가 아니라

자신이 과거생(전생)에 행한 악업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현재생의 그러한 핍박과 곤란으로 인해

전생의 죄업이 다 씻기고

미래에는 반드시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우리에게 던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즉, "님을 위한 행진곡"에서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노래가사가 있습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을 실천한다고 

현재 생에서 어리석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눈밝은 불보살님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 흔들리지 말고 더욱더 부지런히 금강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격려의 메세지를 주시는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