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강경

금강경(54) - 제15분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1 - 변화

by 아미타온 2024. 6. 25.

<금강경(54) - 제15분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1 -  변화 >

 

<예산 대련사 극락전>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신의 몸을 바쳐 보시행을 하고,

낮에도 그만큼 몸으로 보시를 행하고, 저녁에도 그만큼 보시행을 하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을 거듭하는 동안 몸으로 보시를 하더라도,

다음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의 말씀을 듣고

아무런 의심 없는 완전한 믿음을 낸다면,

그가 얻는 즐거움이 앞의 사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니 이 경을 글로 적고, 지니며, 외우고,

남에게 설명하는 사람이 얻는 즐거움은 그 어떤 것에 비교하겠는가!

  다시 말해 수보리야, 이 경전은 상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무한한 공덕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지니고, 외우며, 수행하고,

다른 사람과 이 경을 나눌 수 있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지켜보고 살펴볼 것이니라.

그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고 말로 다 할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공덕을 얻을 것이며,

그러한 사람은 여래의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짊어질 것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작은 법에 안주하거나,

여전히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사람은

이 경전을 듣고, 지니고, 외우며 남을 위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어디든 이 경전이 있는 곳은

천신, 인간, 그리고 아수라가 공양하러 올 것이다.

그러한 곳은 곧 불탑과 같으니, 예불을 올리고 공경하여 주위를 돌며,

꽃과 향으로 아름답게 꾸며질 것이니라."

 

 

1. 경전을 지니는 공덕

 

<금강경> 15분의 이름은 '지경공덕(持經功德)'분입니다.

 

금강경을 수지하여 받아지니는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인가에 대해 설법하신 분입니다.

 

앞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금강경의 가르침에 신심을 내고 타인에게 설해주는 공덕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보시하는 공덕보다 더 크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양한 비유로써 그 공덕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 말씀하셨습니다.

 

13분까지 설해졌던 금강경의 가르침의 핵심을

부처님께서는 14분에서 다시 한번 상기하셨습니다.

 

이본 15분에서 금강경의 수지 독송과 위타인설의 공덕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금강경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는 공덕에 대한 

부처님의 찬탄에 대해 생각하며

나도 금강경의 가르침을 수지독송하고 타인을 위해 설해주리라는 

위대한 결의를 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신의 몸을 바쳐 보시행을 하고,

낮에도 그만큼 몸으로 보시를 행하고,

저녁에도 그만큼 보시행을 하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을 거듭하는 동안 몸으로 보시를 하더라도,

다음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의 말씀을 듣고

아무런 의심 없는 완전한 믿음을 낸다면,

그가 얻는 즐거움이 앞의 사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니 이 경을 글로 적고, 지니며, 외우고,

남에게 설명하는 사람이 얻는 즐거움은 그 어떤 것에 비교하겠는가!

 

2. 바깥으로 드러내는 의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하겠지만,

대학 가는 것이 지상과제인 고3교실은

학력고사가 3~4달 앞으로 다가오자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우리 반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 한 명이 머리를 빡빡 깎았습니다.

공부에 열중하겠다던 의지의 표시였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또다른 친구 하나가 머리를 빡빡 깎아왔습니다.

학력고사를 치기 1달 전에는 60명 가까운 친구들 중

거의 10명이 넘는 친구들의 머리가 빡빡이가 되었습니다.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빡빡이 반이 된 우리반의

이러한 변화와 의지에 격려와 칭찬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학력고사를 치고 드디어 대학 진학 여부가 결정이 되었는데,

아쉽게도 처음 빡빡이 친구들의 결과가 별 신통치 않았다.

 

그러자, 선생님이 쓴 웃음을 지으시며

"아쉽네! 빡빡 깎았다고 다 대학가는 것은 아니네..."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머리를 빡빡 깎는 모습을 보이며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가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외부적으로 눈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목표가 성취되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 생을 자신의 목숨을 바쳐 보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가상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침,점심,저녁을 그러한 결의로서

몸을 바쳐 보시하는 행위는 참으로 희유하고 가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외부적으로 보이는

엄청난 보시 공덕의 행위보다도

금강경을 듣고 그 가르침에 완전한 믿음을 내어

글로 적고 외우고 다른 이들을 위해 그 의미를 설명하는 공덕이

훨씬 더 크다는 말씀을 아주 강도 높은 표현으로 하십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얼마나 대단하든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3. 내면의 변화와 마음 자세

 

그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제대로 된

보시를 행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즉, 상이 없고 아낌없는 보시를 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는 것을

지적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을 담은

등불 하나가 오랫토록 그 빛을 발하듯이

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행을 행하라는

금강경의 가르침에 대해 완전한 믿음을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되새기고 그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실천 노력하는 삶이 불법의 근본 목적과 부합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되어~~~"로 시작하는

법구경의 제1구절의 말씀과도 부합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르침은 금강경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지도 실천하지도 않은 채

단순히 금강경만 독송하면 큰 공덕이 있다는 말만 믿고

금강경을 독송하는기복적 경전 독송을 찬양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렇게 바깥으로 보여지는 행위보다

그 행위를 하는 근본 마음을 바르게 통찰하라는 말씀입니다.

 

바깥으로 드러나고 남이 보기에는

참으로 착한 일을 하더라도

본인은 정작 상에 집착하고 욕심과 분노가 붙어

마음이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착한 일을 지속하기 힘들 뿐이며,

선행이 오히려 자신에게 족쇄처럼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에 깊이 공감하여

금강경의 가르침을 새기기 위해 암송하고 

글로 써 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닦아나간다면 어떨까요?

 

선행이나 보시를 할 때에도 금강경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행하려는 마음을 내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쉽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일치되어

점점더 환희로운 마음으로 지치지 않고 아낌없는 마음으로

선행과 보시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보시행이 진정으로 부처님께서 바라시는

보살행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바깥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의 중요함을 강조한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