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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55) - 제15분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2- 성지

by 아미타온 2024. 6. 27.

< 금강경(55) - 제15분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2- 성지  >

 

<한송사지 문수 보살상 (국립 춘천 박물관)>

 

 

다시 말해 수보리야!

이 경전은 상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무한한 공덕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지니고, 외우며, 수행하고,

다른 사람과 이 경을 나눌 수 있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지켜보고 살펴볼 것이니라.

그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고, 말로 다 할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공덕을 얻을 것이며,

그러한 사람은 여래의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짊어질 것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작은 법에 안주하거나,

여전히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사람은

이 경전을 듣고, 지니고, 외우며 남을 위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어디든 이 경전이 있는 곳은

천신, 인간, 그리고 아수라가 공양하러 올 것이다.

그러한 곳은 곧 불탑과 같으니, 예불을 올리고 공경하여 주위를 돌며,

꽃과 향으로 아름답게 꾸며질 것이니라."

 

<선림원지 출토 관음보살상>

 

1. 기복불교

 

한국불교를 흔히 기복불교라고 합니다.

대학 입시 때 영험하다는 팔공산 갓바위에 가서 절을 하며

기도하는 보살님들의 모습이 한국불교의 이미지가 연상될 정도입니다.

 

기복불교는 부처님께 복을 달라고 비는 불교를 말합니다. 

 

그런데, 불교인이 복을 비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부처님을 일컫어 복덕을 구족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이나 수행자들을 일러 복전(福田), 즉 복이 열리는 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복을 기원하고 비는 것은

어찌보면 불자로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중요한 문제는

"복"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대해서입니다.

 

불교에서는 복에는 '유루복'과 '무루복'이 있다고 합니다.

 

유루복은 새어나가는 복이라는 뜻이고,

무루복은 새어나가는 것이 없는 복이라는 뜻입니다.

 

유루복은 공을 하늘로 던졌을 때

올라갈만큼 올라가서는 언젠가는 떨어지는 복입니다.

 

즉, 건강과 장수, 재산의 증식이나,

자손의 번영이나, 욕망의 실현이나,

재난으로부터의 구제와 같은

자신과 가족의 안락만을 구하는

한정되고 부자유한 윤회의 세계 안의 복락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고 갈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 성취를 통해 고통과 갈구로부터 벗어나야겠지만,

그것은 윤회 세계와 중생 세계 안의 복락으로

그러한 복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불교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불교는 유루복을 구하는데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기복불교가 비판을 받습니다.

 

 

2. 무루복

 

반면, 무루복은 허공처럼 언제나

변함없고 끝이 없는 복을 말합니다.

 

생로병사가 없는 불보살과 성인들이 누리는

영원하고 걸림없는 정토 세계의 복과 같습니다.

 

이러한 복은 윤회 세계 내에서의 욕망에 입각하여

세속적 복락을 구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그 가르침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사람,

즉, 금강경을 믿고 금강경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자는

부처님의 진실한 가피와 공덕인 이러한 무루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왜 그런가요?

 

부처님께서는 작은 법에 안주하는 이는,

즉 자신만의 안락을 구하는 이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므로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남을 위해 설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금강경은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중생들을 구제하리라고 마음을 낸 보살들에게

상에 집착하지 않는 보시행,

댓가를 바라지 않는 보살행을 하며

그 마음을 청정히 내라는 주문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상에 집착하지 않고

베푸는 보시행과 보살행을 통해서

우리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의

온갖 집착과 갈애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수행할 때

즉, 대승의 큰 법에 우리들이 의지하여 수행해 나갈 때에만

다함없는 무루의 복덕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참다운 성지

  

불교를 아끼는 사람들은 한국 불교의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현재 한국 불교는 침체의 수준을 넘어

퇴보를 향해 나가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승 불교를 이야기하지만, 

대승 불교 라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현재 한국불교의 현실입니다.

 

한국 불교가 출가 승려든, 재가 불자이든간에

한국 불교 조계종이 금강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고 있지만 

출재가를 막론하고 금강경적인 정법과 수행과

보살행에 기초한 불교 풍토가 한국 불교는 빈약합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에 의거한

상에서 벗어난 보시행과 보살행을 수행하지도 않고,

세속적 복락만 추구하는 기복불교를 행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금강경의 소중한 가르침을

가르쳐 주지도 받지도 않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이 설해지는 곳에는

천,인, 아수라가 와서 꽃과 향을 올리며 공양하고,

불탑처럼 모시는 성스러운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금강경을 독송하려고 하는 기도터나 참다운 도량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강경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삶을 살기 위해 보시하고 인욕하는

그 사람이 바로 공양을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가 금강경의 이 가르침에 따라

발심하고 일으설 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재가자들이 금강경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 세상은 따뜻해지고 부처님의 혜명과

불교의 정법안장이 바로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