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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74) - 초연한 5백 비구들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7. 6.

<법구경(74) - 초연한 5백 비구들 이야기>

 

<서산 마애 삼존불>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5백 명의 비구들과 관련하여 게송 83번을 설법하시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한 브라흐만의 요청을 받아

비구 오백 명과 함께 네란쟈 지방에 머무신 적이 있었다.

 

그때 초청자인 브라흐만은 부처님과 비구들을 잘 보살피지 않았다.

 

그때는 마침 네란쟈 지방이 흉년을 겪고 있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을 양식도 충분치 못했다.

 

그래서 탁발을 나오는 비구들에게

아주 적은 양의 공양밖에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비구들은 실망하지 않고,

말에게 먹이려고 내놓은 쭉정이 곡식이나마

매일 같이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지냈다.

 

그렇게 우기 안거를 무사히 마친 부처님께서는

네란쟈의 브라흐만에게 통보하신 다음

오백 명의 비구들을 거느리고 기원정사로 돌아오셨다.

 

그러자, 사왓티의 모든 사람들은

부처님이 돌아오신 것을 환영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올렸다.

 

이때 비구들을 따르며 생활하는

까삐야(수도원에서 음식과 의복을 맡은 속인 심부름꾼들)의

한 무리가 비구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실컷 잠자고 일어나 소리 지르면서 뛰고 춤추며 야단법석을 부렸다.

 

이날 저녁 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오셨을 때

비구들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저 까삐야들은 네란쟈 지방에서 흉년을 당했을 때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고분고분하더니,

이제는 좋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이리저리 날뛰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등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에 비해 저희 비구들은 좋은 환경에서나 나쁜 환경에서나

변함없이 자기의 행동을 잘 제어하면서 여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일반적인 행동으로서,

그들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갈 때는 슬퍼하고 당황하며,

무엇인가 잘 되어갈 때는 좋아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인생의 괴로운 오르막길에서

혹은 즐거운 내리막길에서나 항상 평정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을 읊으셨다.

덕 높은 사람은 모든 집착을 포기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며 감각적 쾌락에 빠지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움이나 슬픔을 당하여도

날뛰거나 좌절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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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차

 

실력은 평균도 중요하지만, 편차도 중요합다.

편차가 심한 사람을 흔히 기복이 심하다고 합니다.

기복이 심한 사람은 자신의 평균을 자기 실력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참다운 실력자는 평균도 높지만,

무엇보다 편차가 적은 사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편차는 실력의 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수행 세계와 마음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어린애들은 마음에 드는 좋은 상황에서는 너무 좋아서 미친듯이 날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되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애였을 때는 어린애라고 귀엽게 봐 줄 수 있겠지만,

어른이 되고 특히 수행자가 이렇게 널뛰기가 심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왜냐하면 안정되게 수행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감정의 기복과 편차가 큰 장애로서 작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부동심(무심)

 

수행 세계에서 유난히 "부동심", "무심"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부동심"과 "무심"을 이루려고 그렇게 애를 씁니다.

 

"부동심"과 "무심"이란 과연 어떤 마음 상태일까요?

 

좋은 상황에서도 좋음으로 인한 폐단이 없고,

나쁜 상황에서도 나쁨으로 인한 폐단이 없는 마음이

"부동심", "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상황에 처하면 기쁨이 지나쳐

지랄발광을 하거나 분수를 잃어버리거나 개념을 상실하는 폐단이 없고,

나쁜 상황에 처하면 괴로움이 지나쳐

당황, 우울, 침체, 의욕상실과 같은 폐단이 없는 마음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미동이 없고

아주 담담한 마음 상태를 "부동심", "무심"이라고 흔히 착각합니다.

 

선가에서 자신이 공양하는 한 수행자의 수행력을 테스트 해보기 위해

어느 할머니가 자기 딸을 예쁘게 분장하여 수행자를 유혹하게 시켰습니다.

 

그 수행자가 아무 미동도 없이 목석처럼 가만히 있자

공부 잘못시켰다고 수행자를 내쫓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심"과 "부동심"이 무조건 목석처럼 냉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의 비유적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법구경 이야기를 통해

"무심"과 "부동심"이 어떤 마음상태라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보시자를 잘못 만난데다 흉년이 들어 

말에게 먹일 밀기울을 공양받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밀기울이나마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자신이 해야할 수행을 꾸준히 해 나가는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사왓티로 돌아와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수행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상황이 되어도

과거 못먹은 것에 대한 보상이나 먹는 것에 취해

자신이 해야할 수행의 정도를 잊어버리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반면, 배고프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풀이 죽어 있고

좋은 음식을 먹는 상황에서는 이리저리 날뛰면서

의미없는 행동을 하는 까삐야들의 모습을 봅니다.

 

좋은 환경이나 나쁜 환경과 같은 상황에 따라

판단을 흐리게 하고 오류를 범하게 하는 마음의 흔들림을 몰아내고

마음의 안정을 통해 명확히 상황을 판단하여

이고득락의 좋은 결실을 맺게 하는 마음이 "무심"이고 "부동심'입니다.

 

 

3. 이욕의 길

 

무심과 부동심의 길은 '이욕(離慾)'의 길입니다.

 

자신의 집착과 갈망을 통찰하여

자신의 마음을 제어한 자만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약해지고 흔들리는가?"

"나는 그 약해지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이 주제를 사유하고 통찰해서

자신의 집착과 갈망에서 자유로운 이욕의 길을

가는 자가 얻어지는 마음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심과 부동심의 길은 "서원"의 길입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가?"

"내가 의지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나는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인가?"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묻고 갈구하고 기도하고 서원하여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명확해진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심과 부동심의 길은 자비의 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내가 사랑해야 할 존재의 괴로움을 없애주기 위해

나는 어떤 친절과 사랑을 베풀 것인가?"

 

자기를 위한 삶만이 아닌

상대에게 주는 사랑을 통해 이기심을 없애고

더욱 잘 사랑하게 되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평안을 얻은 따뜻한 사람이 갈 수 있는

마음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덕 높은 사람은 모든 집착을 포기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며 감각적 쾌락에 빠지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움이나 슬픔을 당하여도

날뛰거나 좌절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무심과 부동심은 이욕의 길, 서원의 길, 자비의 길을 

갈구하고 구현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