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73) 공양을 올린 깐아마따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깐아마따와 관련하여 게송 82번을 설법하시었다.
깐아마따('깐아의 어머니' 라는 뜻)는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두터운 재가 신자였다.
그녀에게는 '깐아'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깐아는 멀리 시집을 가서 다른 마을에 살았는데,
어느 때 오랜 만에 친정에 와서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그때 깐아의 남편은 사람을 보내어
그녀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친정 어머니인 깐아마따는
딸에게 하루만 기다리면 맛좋은 마른 고기를 준비하여
너와 네 남편이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주겠다며 딸을 붙들었다.
그래서 깐아는 하루를 더 기다렸다.
마른 고기 반찬을 가지고 떠나려는데,
때마침 비구들이 탁발을 나와 그중 한 비구가
깐아마따네 집 앞에 서있는 것이었다.
이를 본 신심이 깊은 깐아마따는
딸에게 주려던 고기 반찬을 비구의 공양그릇에 넣어 드렸다.
그러자 다른 비구들에게도
그 이야기가 퍼져서 깐아마따네 집에
맛좋은 고기 반찬이 있다 하여 모두 그 집으로 몰려 왔다.
(당시 고기를 먹는 것은 계율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깐아마따는 딸에게 주기 위해
다시 고기를 준비해야 하였고,
그 때문에 며칠이 더 지나갔다.
그러자 깐아의 남편은 다시 사람을 보내어
아내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재차 독촉하였다.
그러자 깐아마따는 이번에야말로
딸을 그냥 보낼 수 없다하여 또 고기를 준비했는데,
전처럼 그것을 비구들에게 공양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되풀이되었다.
그리하여 남편으로부터 세 번째로 사람이 왔다.
이제 내일까지도 아내가 오지 않으면
자기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깐아마따는 이번에야말로
딸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고기를 준비하기 위해 하루를 더 묵으라고 딸을 붙들었는데,
역시 다음날도 준비한 고기 반찬은 비구들에게 공양되어
끝내 깐아는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깐아마따의 딸인 깐아는 비구들 때문에
자기가 빨리 시집으로 돌아가지 못함으로써 이혼을 당했다며
비구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욕설을 해댔다.
이 때문에 비구들은 깐아마따네 집에 가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깐아마따네 집을 직접 방문하시었다.
깐아마따는 부처님께 약간의 쌀죽을 공양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공양을 드신 다음 깐아를 불러 물으셨다.
“여래의 비구들은 공양 올린 것을 받아간 것인가,
아니면 공양 올리지 않은 것을 가져간 것인가?”
"부처님이시여!
비구들은 공양 올린 것을 받아가셨습니다.
그 분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깐아마따는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깐아에게 설법을 해 주시었고,
깐아는 그 설법이 끝나자 곧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깐아마따네 집에서
수도원으로 돌아오시던 길에
우연히 코살라 국왕 빠세다디 왕과 만나셨다.
꼬살라 국왕은 깐아가 비구들에게 한
모진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므로,
이번에 부처님께서 깐아에게 설법을 하신 결과가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여래는 깐아에게 설법을 베풀어
그녀로 하여금 다음 생에 아주 부유해지도록 하였소.”
그러자 코살라 국왕은 매우 기뻐하여
그녀를 내생에 부자가 되게 할 것이 아니라,
금생에도 부자가 되게 해야 한다면서
그녀가 부자가 되게끔 도와주겠노라고 부처님께 약속했다.
빠세다디 왕은 곧 사람과 가마를 보내어 깐아를 궁으로 불렀다.
그는 곧 많은 신하들에게 선언했다.
“누구든지 내 딸 깐아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깐아를 데리고 가라.”
그러자 신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깐아를 양녀로 삼아 자기가 죽으면
그녀에게 자기의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아뢰었다.
그는 깐아에게 말했다.
“네가 원하는만큼 얼마든지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거나 시주를 해도 좋다.”
그래서 부자가 된 깐아는 네 군데 성문에
공양을 올리는 상을 만들어 놓고
탁발을 나오는 비구들에게 맛좋은 음식을 풍부하게 공양을 올렸다.
비구들이 이런 깐아의 공양에 대해
부처님께 보고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깐아의 마음은 한동안 안개에 가린 것처럼 혼란하였으나
지금은 여래의 법문에 의해 청정하고 고요하게 되어
그같은 공양을 즐겁게 행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불법의 진리를 잘 새겨들어
깊고 맑고 고요한 호수와도 같이
자기 마음을 정숙하게 한다.
--------------------------------------
1. 공양 이야기
<법구경>에는 부처님과 제자분들에게 대한
공양 이야기가 여러번 나옵니다.
자신이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왕에게 올릴 꽃을 부처님께 공양 올린 꽃장수 이야기..
외도를 믿는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이혼당할 것을 감수하면서도
부처님께 공양을 준비하는 며느리 이야기..
이번에는 딸이 시집에 선물로 가져갈 고기 반찬을
비구들에게 계속 공양함으로서 딸이 이혼을 당할 정도로
신심이 깊었던 친정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등장합니다.
참고로 먼저 출가 비구가 왠 고기 반찬을 먹고 좋아하느냐고
우리 한국 불교 전통에서는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 승려가 고기 먹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죽이는 것을 내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것,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라고 듣지 않은 것,
나를 위해 죽인 것이라고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의
'3가지 깨끗한 고기(淨肉)'라고 하여 고기 먹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불교 문화 전통에서
스님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중국 불교의 영향이 큽니다.
중국에서 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은
달마 대사와의 문답으로 유명한 양 무제 때부터였습니다.
양무제는 <열반경>을 특히 좋아해서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열반경 속에 "계살생(戒殺生)"이란 구절이 있었습니다.
양무제는 스스로 생각해서 살생을 근본적으로 막자면
아예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명을 내렸습니다.
"백성들은 채식을 숭상하고,
승려들은 일률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 없다.
천지 신명과 조상도 승려의 대접을 받는다."
천지신명과 조상이 승려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제사상에도 고기를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무제의 왕명 이후 스님이 고기를 먹지 않는 계율이
중국을 비롯한 우리 나라에도 규정되어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맛있는 고기 반찬을 먹기 위해
출가 비구 스님들이 모여드는 장면도 재미있고
사위의 이혼 협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고기 반찬을 계속 공양올리는 친정 어머니도 참 대단한 신심입니다.
2. 공양의 공덕
이러한 친정 어머니 때문에 이혼을 당해
승가를 비난하고 지랄발광을 하는 딸 깐아를 찾아가
부처님께서는 어떤 법문을 하시는가요?
"고기 반찬 좋아하는 우리 제자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혼당하게 해서 미안하다.
마음이 아프지?"가 아닙니다.
"여래의 비구가 공양 올린 것을 받아간 것이지,
공양 올리지도 않은 것을 훔쳐간 것이냐?" 라고 반문하시며
"어디서 승가를 비난하고 비구를 욕하고
공양을 올린 네 어머니를 원망하느냐!!!"고 깐아를 꾸짖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깐나에게
부처님이 설법하여 깐나를 수다원과에 이르게 한 법문의 내용은
부처님과 제자분들에게 올리는 공양의 공덕에 대한 법문이었을 것입니다.
부처님 법문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부처님과 제자분에게 올리는 공양의 중요함에 대한 자각이
깐아로 하여금 수다원에 오르게 했습니다.
이 후 깐아는 이혼당한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친정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즐겁게 공양하는 여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초기 불교에서 재가자들이 복락을 구하는 방법으로 두가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부처님과 그 제자분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
다른 하나는 이웃들에게 보시하는 것.
법구경과 같은 초기 경전에서는
이웃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부처님과 그 제자분들에게 올리는 공양이
재가자들이 복락을 구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권장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부처님과 스승과 수행자들에게 올리는 공양이
보시 중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가질까요?
<보리도차제>에 공양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음식이나 꽃, 과일 등으로 공양을 올릴 때는
아까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신이 먹기 전에 먼저 공양을 올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동기로 인하여 이생에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는 삼악도에 태어나지 않게 되는 원인을 만들어
언젠가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같이 특별한 분들을 위하여 공양을 올리게 되면
동기가 다소 좋지 않더라도 공덕을 얻을 수가 있다.
좋은 논에는 아무렇게나 씨를 뿌려도 열매를 맺는 것처럼,
동기가 좋지 않더라도 깨달음을 얻은 특별한 분들을 위하여
공양을 올리게 되면 특별한 공덕을 얻을 수가 있다."
최고의 보시.
좋은 논에는 아무렇게나 씨를 뿌려도 열매를 맺는 것처럼
동기가 다소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깨달음을 얻은 이,
깨달음의 길을 가는 수행자에게 올리는 공양은
최고로 의미있는 보시, 인과적으로 특별한 공덕이 따르는 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수행과 깨달음의 가치,
수행과 깨달음을 돕는 공양의 가치가 크다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재가자의 공양을 통해서 수행자가 법을 펼칠 수 있고
수행문이 끊기지 않고 존속될수 있는 것입니다.
내생에는 깐아를 부유하게 할 것이라는 부처님의 말씀도 모자라서
왕까지 나서서 깐아에게 현생에서도 부유하게 되는 공덕을 맛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부유한 공덕을 다시 부처님과 제자분들에 대한
공양으로 회향하는 깐아의 모습을 봅니다.
깨달으신 분,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에게 올리는
공양이야말로 최고의 보시라는 것,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최고로 의미있는 자비행의 구현이라는
가르침을 주는 법구경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법구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구경(75) 의사 지와까의 질문 이야기 (1) | 2024.07.10 |
---|---|
법구경(74) - 초연한 5백 비구들 이야기 (0) | 2024.07.06 |
법구경(72) 난장이 밧디야 비구 이야기 (0) | 2024.06.30 |
법구경(71) 8일만에 아라한이 된 빤디따 사미 이야기 (0) | 2024.06.26 |
법구경(70) 참으로 행복한 마하 깝삐나 비구 이야기 (1) | 2024.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