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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75) 의사 지와까의 질문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7. 10.

<법구경(75)  의사 지와까의 질문 이야기>

 

<서산 개심사>

 

부처님께서 지와까의 망고 동산 수도원에서 계시던 어느 때,

지와까의 질문과 관련하여 게송 90번을 설법하시었다.

 

데와닷따는 어느 때 부처님을 해치려고

왕사성 영취산 정상에서 부처님을 향하여

큰 바위를 굴러 내린 일이 있었다.

 

그때 바위가 구르면서 산에 박혀 있던 바위와

서로 부딪치면서 깨어진 바위조각이 튀어

그 중 하나가 맨발로 걸어오시던

부처님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상처를 내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지와까의

망고 동산 수도원으로 가시었다.

 

거기서 부처님께서는 당시 널리 이름이 알려진 의사였던

지와까로부터 치료를 받으시었는데,

그는 약을 조금 바른 뒤 부처님의 발가락을 붕대로 조심스럽게 감았다.

 

그런 다음 그는 성 내의 다른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떠나면서

저녁때 다시 돌아와서 붕대를 풀어드리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지와까가 볼일을 다 보고 부처님께로 돌아오려고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간 이어서 성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밤 부처님을 뵙지 못하게 되어 매우 염려했다.

 

왜냐하면 만약 붕대를 제시간에 풀어 버리지 않으면

부처님의 몸 전체에 큰 열이 나서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와까가 와야 할 시간에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붕대를 풀어 버리도록 지시하셨고

상처가 완전히 치료된 것을 아시었다.

 

이튿날 지와까가 아침 일찍 도착하여

부처님께 간밤에 큰 고통을 당하여 불편하시지는 않으셨는지 여쭈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시었다.

 

"지와까여!

여래는 부처를 이룬 이래 고통으로 인하여

불편을 느껴 본 적은 없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아라한에게 있어 생사의 여행은 끝났다.

슬픔과 오온의 현상으로부터 해탈하고

모든 얽매임을 다 파괴해 버린 그에게

이제 더 이상의 마음의 괴로움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많은 사람들이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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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라한 장풍 대작전

 

백유경의 이번 편부터는 아라한의 장이다.

아라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전에 류승범 주연으로 나온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철부지 순경 류승범이

선배 순경과 함께 어느 술집에 순찰 나갔다가

조폭들과 연계된 술집 주인에게 비굴하게 얻어 맞았습니다.

 

그는 큰 모욕감을 느끼고

절대 무공을 연마하여 절대악의 무림고수를 물리치고

도시의 평화를 지킨다는 코믹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제목처럼

아라한은 과연 장풍을 날리는 것과 같은

엄청난 신통력의 대능력자일까요?

 

이 영화대로라면 부처님은

데바닷다의 바위 파편에 상처를 입어서는 안되고,

날아온 바위를 장풍으로 산산조각 내어버리는 신통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2. 수다원

 

아라한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법구경의 게송에서는

'모든 얽매임(번뇌)을 다 파괴해버려

더 이상 괴로움을 받지 않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얽매임(번뇌)을 파괴해버려야 아라한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초기 불교적 교리에 의하면 얽매임(번뇌)를 10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색수상행식의 오온이든, 영혼이든, 아트만이든

무엇인가 영원하고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고 믿는 잘못된 견해를 말합니다.

 

2번째는 사성제와 연기, 인과에 대한 의심을 말합니다.

 

3번째는 미신적인 제사 의례, 금기(터부)에 대한 집착을 말합니다.

 

이 세가지 번뇌는 심리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견해와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와 믿음에서 벗어나서

무상과 무아, 일체고의 삼법인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심을 확고히 가진 존재가

바로 중생에서 벗어나 성자의 흐름에 든 수다원입니다.

 

 

3. 사다함과 아나함

 

4번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입니다.

 

맛있는 것을 탐하고 좋은 소리, 냄새, 빛깔 등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좋고 싫고 하는 분별심과 

여기에서 오는 갈애와 집착을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라고 합니다.

 

5번째는 악의(惡意)입니다.

 

어떤 대상의 모습이나 행위를 보면

자신에게 유쾌함과 불쾌함을 주는 것이 있을 때

불쾌함을 주는 것에 대해 짜증과 혐오감이 생기고

악의로 빠져 미움, 증오, 원한, 질투, 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탐욕과 분노와 같은 심리적인 번뇌는

성자의 두번째 단계부터 벗어날수 있습니다.

 

성자의 2번째 단계라고 하는 사다함은

좋고 싫고 하는 분별심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감각적 쾌락을 많이 탐하지 않게 되고

악의 중에서도 복수, 원한, 증오, 질투, 시기와 같은 거칠고 큰 악의를 없앤 존재입니다.

 

이 사다함의 단계에서도

아직 미세한 감각적 욕망에 대한 끄달림이나

짜증과 같은 약한 악의는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자의 3번째 단계라고 하는 아나함 단계가

이러한 감각적 욕망과 악의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입니다.

 

 

3. 아라한

 

그런데, 아직 5가지 번뇌가 더 남아 있습니다.

 

6번째는 물질적인 세계인 색계(色界)에 대한 욕망입니다.

7번째는 정신적인 세계인 무색계(無色界)에 대한 욕망입니다.

8번째는 아만심과 교만함,

9번째는 불안, 초조와 들뜸,

10번째는 무지와 무명 입니다.

 

아라한은 이 5가지 번뇌마저도 완전히 없앤 존재를 말합니다.

 

아나함의 단계에서는 감각적 욕망(욕계의 욕망)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편안하면서도 즐겁습니다.

 

또한 미움, 증오, 원한과 같은 불쾌한 혐오에서 온

악의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당당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평화롭고 안락하고 좋은 것 등을

추구하는 정신적인 욕망은 가지고 있습니다.

 

아라한은 이러한 욕망까지도 완전히 멸한 존재입니다.

 

즉, 삶과 죽음을 비롯한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초연하게 되어

6,7번째 물질적 세계인 색계와 정신적 세계인 무색계에 대한

욕망에서도 벗어난 존재가 바로 아라한입니다.

 

한편, 아나함의 단계에서도

자신에 대한 아만심, 교만심은 남아 있는데,

아라한의 단계에서는 이러한 아만심과 교만심까지 완전히 끊습니다.

 

이러한 욕망과 교만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불안, 초조함과 들뜸이 없이 마음이 늘 안정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6~9번째 번뇌에서 벗어나

자신이 아라한이라는 의심이나 회의가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즉,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까지 완전히 멸해 있어야 합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게송처럼

"이제 생사의 여행은 끝났고,

슬픔과 오온의 현상으로부터 해탈했고,

모든 얽매임(번뇌)을 다 파괴해버려 더 이상 나에게는 괴로움은 없다."

라고 스스로 아라한에 올랐다는 자증의 선언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아라한입니다.

 

아라한의 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라한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아라한은 아프지도 않은 존재,

정신 활동이 끊어진 존재,

장풍을 날리는 신통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이러한 10가지 얽매임(번뇌)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괴로움을 받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불교 수행을 통해 생사에서 벗어나

완전한 행복(이고득락)을 이룬 존재가 아라한입니다.

 

우리가 불교 수행을 통해 무엇을 끊어야 하고,

어떤 단계를 밟아야하는지를 바르게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