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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76) 마하 가섭 존자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7. 14.

<법구경(76) 마하 가섭 존자 이야기>

 

<부처님을 협시하는 아난 존자와 가섭 존자 (서울 정각사)>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마하 가섭 존자와 관련하여 게송 91번을 설법하셨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라자가하(왕사성)에서 안거(安居)를 보내신 적이 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안거 기간이 끝나기 약 보름 전부터

안거가 끝나면 이곳을 떠날 것이니 준비를 하라고 이르셨다.

 

그 말씀을 듣고 비구들은 가사를 바느질하여

새로 염색하기도 하고 오래 입은 가사를 세탁하기도 했다.

 

이때 이곳의 많은 재가 신자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은 마하 가섭 존자도

자기 가사를 세탁하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것을 본 몇몇 비구들은 수근 대면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는

신자들이 많은 이곳을 과연 마하 가섭 존자가

떠나려 할 것인지 어떤지를 의심했다.

 

마침내 보름이 지났다.

그날 저녁에 부처님께서는 이 도시에

어린 사미의 수계(受戒), 공양을 올리는 의식, 장례 등

여러 가지의 행사가 있으므로 모든 비구들이 한꺼번에

다 떠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뒤 부처님께서는 죽림정사에 남을 비구로서

마하 가섭 존자를 비롯한 몇 사람의 비구를 지명하셨다.

 

그래서 마하 가섭 존자와 중간 정도의

법랍의 몇 사람은 라자가하(왕사성)에 남게 되었다.

그러자 몇몇 비구들이 마하 가섭 존자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마하 가섭은 부처님과 함께 가지 않게 되었다.

이건 우리가 예측한 대로지 뭐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의 이 같은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충고하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는 여래의 아들 마하 가섭이

라자가하의 신자들과 그들이 바치는

물품 따위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냐?

그렇다면 너희는 참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느니라.

마하 가섭는 그것에 집착해서가 아니라,

여래의 지시에 따라서 여기에 남는 것이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마음 집중 수행에 전념하는 수행자는

감각적 쾌락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마치 백조가 진흙 연못을 쉽게 버리듯

아라한은 모든 욕망을 던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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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마하 가섭 존자>

 

1.  마하 가섭 존자의 출가

 

마하 가섭 존자는 부처님 입멸 후

교단의 중심이 되어 교단을 이끌었던 제자였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

'두타 제일(의식주에 대한 소욕지족과 무소유를 실천하는 행위)'의

제1인자로 불리웠습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의 흐트러짐을 보시고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집하는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신 교단의 지도자셨습니다.

 

마하 가섭 존자의 원래 이름은 '핍팔리'였으나

출가한 뒤 카사파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당시 교단에는 우루벨라 가섭 등 배화교도였던 가섭 3형제와 같이

여러 명의 가섭이 있었습니다.

 

가섭 존자는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에 

'마하 가섭'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마하' 라는 말은 '크다.', '위대하다.'를 뜻하는 존칭어이기 때문입니다.

 

가섭 존자는 마가다국의 왕사성 근처의

바라문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매우 부유하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가섭 존자는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서

두타행에 익숙했던 것이 아니라,

출가 전에는 높은 계급의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슴에도 

수행을 위해 두타행을 행했던 것이었습니다.

  

가섭 존자는 어려서부터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 수행자가 되려는 염원이 있었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그의 부모는 가섭 존자의 결혼을 서둘렀고,

후손의 단절을 염려한 부모의 결혼 권유를 뿌리치기 어려웠던

섭 존자는 한 조각가에게 아름다운 여인상을 만들게하여

이와 같은 여인이라면 결혼하겠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수소문 끝에 바이샬리 근처의 한 마을에 사는 바라문의 딸인

'밧다 카필라니'라는 조각의 아름다운 여인상과 똑같이 닮은 여인을 찾아내었습니다.

 

가섭존자는 몰래 밧다카필라니를 찾아가

세속적 욕망에 얽힌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고,

가섭 존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밧다 카필라니는

결혼은 하되 육체적 관계는 맺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12년 동안의 결혼 생활 동안 두 사람은

부부로서의 정을 나누지 않은채 생활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가섭 존자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두 사람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노예들을 자유로운 신분으로 풀어준 후

자신들의 염원대로 각자 출가 수행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가섭 존자는 마가다 국의 수도인 왕사성의 죽림정사에서 부처님을 만났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단 8일만에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다고 합니다.

 

반면 밧다 카필라니는 당시 아직 불교 교단에는

여성 출가가 허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외도 수행자 문하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여성의 출가가 허용되었을 때 가섭 존자의 권유로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밧다 카필라니는 처음 외도수행자의 문하에 들어갔을 때

그녀의 뛰어난 미모 때문에 많은 곤란과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왕사성에서 이미 아라한의 경지를 증득한

가섭존자를 만난 그녀는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았고,

가섭존자는 그녀를 죽림정사로 데리고 와서

비구니 교단의 마하파자파티 장로니에게 청해 구족계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비구니가 된 밧다 카필라니는 탁발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그녀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

자신이 걸식하여 얻은 음식의 절반을 그녀에게 나누어주었다 합니다.

 

이 일로 인해 사적인 정에 연연하여 남에게 의지한다고

다른 여러 비구니들에게 비판되기까지

가섭 존자와 밧다 카필라니의 도반으로서의 인연은 계속되었다고 전합니다.

 

<아라한>

 

2. 마하 가섭 존자의 두타행

 

가섭존자는 두타행과 관련된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떠나서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는 두타행은

부처님께서도 칭찬하시고 권장하신 출가 수행자의 이상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교단내에서도 가섭존자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부나 권력, 외모 등의 세속적 외양에 치중되어 있어

그러한 기준을 수정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섭 존자의 허름한 옷차림이 시작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왕사성에서 탁발을 마치고 잠시 쉬시고자 할 때,

곁에서 부처님과 함께 있던 가섭 존자는

자신의 가사를 벗어 앉으실 자리를 마련해 드렸습니다.

 

스승이신 부처님을 맨바닥에 앉게 해서는 안된다는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가섭 존자는 자신의 가사보다 부처님의 가사가 낡고 허름한 것을 보고,

부처님께서 휴식을 취하시고 일어나시자 자신의 가사를 부처님께 공양 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 존자의 공양을 받으시고

당신께서 입고 계시던 낡은 가사를 가섭 존자에게 주셨습니다.

 

그 후 가섭존자는 한결같이 그 낡은 가사만을 입고 다녔는데,

낡아 빠진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다른 수행자의 비웃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코살라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도 가섭 존자의 행색이 초라하여

다른 수행자들이 아라한인 가섭 존자에게 존경을 갖추지 않고

가섭 존자의 행색에 대해 쑤근대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법 도중 가섭 존자를 부처님의 옆자리에 앉도록 하여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제자로서 손색이 없는 

위대한 아라한임을 교단에 인식시키셨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낡은 가사를 받으신 사건과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를 부처님의 옆자리에 앉게한 사건은

중국 선종에서 부처님의 정법이 가섭 존자에게 전수되었고,

그후 선종 조사들까지 이어졌다는 정통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가섭 존자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가섭 존자의 행동이 이상하면

가섭 존자의 뒤에서 쑤근덕거리며 이런 저런 뒷말을 많이 했던 것입니다.

 

죽림정사에서 있었던 이번 법구경 사건도

이러한 가섭 존자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비구들이

가섭 존자가 재가자들의 보시물에 집착하여

죽림정사를 떠나지 않는다고 비웃고 쑤군덕거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쑤군거림을 보신 부처님이 다시 한번 나서셨습니다.

 

부처님은 가섭 존자 남은 것은 공양물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부처님의 지시에 의해 남은 것이며

가섭 존자는 모든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난 아라한임을 선언하시며

분란을 종식시키셨습니다.

 

잘 먹고 싶고, 잘 듣고 싶고, 잘 입고 싶고, 잘 살고 싶은

우리의 감각적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챙김에 전념하고 진리를 궁구하는 진실된 수행자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

하는 무학 대사의 말이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에 집착해있는 사람의 눈에는 두타 제일인 가섭 존자마저도

자신의 욕망의 눈으로 곡해하여 의심과 질투와 비난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오직 진실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갖춘 존재만이

바른 사람을 바르게 보고 평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