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물사(38)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14) - 정토 >
7. 정토(淨土)
(1) 정토를 구함
다시 물었습니다.
“오늘날의 수행자들이 정혜를 닦는다고는 하지만
도의 힘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토를 구하지 않고 사바세계에만 머무르게 되면
고난이 닥칠 때 공부가 뒤로 처질까 염려스럽습니다.”
지눌이 살았던 시대는
군부 쿠테타와 민란으로 인해
사회가 매우 어지럽던 시대였습니다.
문벌 귀족 사회였던 고려 사회의 모순이 폭발되던 시대였고,
출가 승려들도 수행과 대중 교화라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벗어나
명예와 이익을 위해 부패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며 많은 사람들은 말법 시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시대에 수행자들은
정혜(선정) 수행을 통해 도를 닦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음 생을 위해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2) 마음 닦음
내가 대답했습니다.
“이 또한 사람마다 달라서 한결같이 말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향해 큰마음을 일으킨 중생이 최상승선의 가르침을 듣고
물질적인 요소로 이루어진 육신이 물거품 같고 허깨비 같으며
여섯 가지 감각 대상 또한 허공의 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마음과 본성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요
진리의 성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아득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습기(習氣: 습관의 힘)가 있다 하더라도
자유롭고 거침이 없는 지혜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근본 지혜인 것입니다.
이른바 근본 지혜란 오래토록 익혀 온 습기를
굴복시키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것입니다.
비록 방편적인 삼매를 통해 정신의 혼미함과 산란함을 벗어나긴 하지만,
망상과 분별이 참된 본성에서 일어나는 줄 알기 때문에
본래 깨끗한 성품에 그대로 맡겨서 집착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에 맡겨 습기를 다스림으로써 지혜를 더욱 밝히고
인연에 따라 사물을 이롭게 하도록 보살도를 행하면
비록 삼계 안에 있더라도 어디든 진리의 정토 아닌 곳이 없습니다.
또한 세월이 흘러도 본체를 변하지 않으므로
큰 자비에서 나오는 지혜에 맡겨서 인연을 따라 유유자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단번에 성현의 지위에 올라
신통력을 갖춘 뛰어난 인물만큼은 못되더라도
여러 생에 걸쳐 심고 가꾼 착한 심성이 있어서
근본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본래 고요하고
마음의 작용이 자유롭고 거침이 없어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믿기 때문에
말법 시대에 살더라도 공부가 뒤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지눌 스님은 공성(空性)을 알고
자신의 마음의 성품을 확고히 자각하는 것을
'근본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근본 지혜와 수행을 통해
습기를 다스림으로 지혜를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 가고
자신의 인연 따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보살도를 행한다면
이 세상이 바로 진리의 정토라는 말을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부가 된 사람은
비록 말법 시대에 살더라도
결코 공부에 뒤떨어질 염려가 없다는 자신감을 표시합니다.
(3) 자력과 타력
그러나, 만약 여러 가지 선행을 닦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수행하면
공부가 순조롭지 못하거나 중도에 그만두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부지런히 삼보에 공양하고 대승 경전을 읽고 외우며
예불과 참회를 하되 중도에 그만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자력과 타력이 서로 도와서
가장 뛰어난 진리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습니까?
자력(自力)은 스스로 수행하는 것을 말하고,
타력(他力)은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을 믿고 신앙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눌 스님은 자력과 타력이 서로 도와서
가장 뛰어난 불법의 진리를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씀합니다.
다음생에 극락 정토에 태어나고자 아미타 부처님을 신앙하는
타력 신앙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토 신앙에만 머물고, 이 생에서 자신이 닦아야
할 것을 닦지 않는다면 문제입니다.
극락도 아미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성불의 길을 가는 도량이라면
이 생에서도 부지런히 수행하고 공부하는 힘을 갖고 극락 가야 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중생을 위해 세운 48대원을 알고,
법장 보살이 어떻게 아미타부처님이 되셨는지를 안다면
극락 왕생 신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생에서 열심히 공부할 곳입니다.
따라서,극락에 태어나기 위해 마음을 내어 타력 신앙을 하더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고 선행을 행하는 실천이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력과 타력을 함께 닦아야 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말씀은
신앙과 함께 수행의 실천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눌 스님은 마음의 성품을 보는 견성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수행을 통한 돈오점수의 자력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부처님에 대한 예경, 참회, 공양을 통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길을 함께 가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즉, 타력과 자력의 조화와 중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유심정토
그러므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깨우친 사람은 비록 정토 왕생을 구하기는 하지만
진리를 깊이 믿고 정혜를 닦았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형상이나 물질적인 대상이 생겨나거나 소멸되지도 않고
오직 마음에 의존해 나타나는 것이어서 마음의 본성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과 소승의 수행자는
전식(轉識)이 나타나는 것을 바깥의 사물로 잘못 알아
세계와 물체가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은 한 가지로 정토에 난다고 하지만
그 중에도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승의 유심의 가르침을 배워서
정과 혜를 닦음으로써
보통 사람과 소승의 견해를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선가에서는 유심 정토를 이야기합니다.
내 마음에 정토가 있다는 것입니다.
서방 극락 정토처럼 실재하는 불국토로서의 극락과는 달리
선가에서는 "청정한 마음"을 "정토"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이 누구에 대한 원한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으면 지옥이지만,
마음을 돌이켜 가엾은 사람에 대한 자비심이나 진정한 참회와 같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극락이라는 것입니다.
정토에 대한 견해를 실재하는 불국토로서의 정토와 함께
세계가 자신의 마음에 의존해 나타난다는 대승의 공사상과 유식적 사유를 통해
자신의 본래의 성품을 잘 지키고 청정한 마음으로 정토를 구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교 인물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인물사(39)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16) - 수선 결사를 계승한 혜심 스님 (8) | 2024.07.15 |
---|---|
불교인물사(38)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15) - 삼학 (0) | 2024.07.11 |
불교인물사(37)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13) - 이타행 (0) | 2024.07.03 |
불교인물사(36)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12) - 수행관 (0) | 2024.06.29 |
불교인물사(35)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11) - 돈오점수 (0) | 2024.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