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물사(38)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15) - 삼학 >
(8) 삼학(三學: 계 戒, 정 定, 혜 慧을) 닦기로 맹세하다.
(1) 삼학
이렇게 함으로써 다 함께
바른 수행을 통해 정혜와 만행을 함께 닦아
다 같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함께 배워
앞으로도 영원히 온 세계를 넘나들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정법의 수레를 구르게 해서 온 누리의 중생을 건지고
이로써 모든 부처님의 크나큰 은혜를 갚자는 것입니다.
일찍이 대승 경전에서
궁극적인 진리를 설파한 경론을 두루 훑어보았는데,
모든 가르침이 계,정,혜 삼학을 벗어나지 않았고
또한 어떤 부처님도 삼학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를 이룬 분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아름다운 기약을 맺고 굳건하게 맹세하기에 이르렀으니,
거룩한 행위와 참된 기풍을 따라 수행하되
자신을 비하하지 말고 계·정·혜로 몸과 마음을 닦아 나갑시다.
이는 명리와 집착을 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성현의 길을 닦으면서,
달을 보고 거닐고 물소리를 들으며 자유로이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언제 어느 때든
활달하게 흐르는 물살 위의 빈 배처럼 노닐고,
허공을 나는 새처럼 지냅시다.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더라도
깊은 정신세계는 온 누리에 충만하게 하고,
상황에 따라 세상사에 감응하되 자연에 따를 뿐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니
제가 바라는 수행자의 삶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만일 수행하는 사람이 명리를 버리고 산에 들어가
수행하지 않고 겉모습만 도인 행세를 해서
신심 깊은 시주를 유혹한다면
명리와 부귀에 집착하거나 술과 맛난 음식을 탐내어
심신이 황폐하고 미혹한 채 인생을 허송하는 것만도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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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 스님의 수선 결사는 기본적으로
계정혜 삼학을 닦는 수행 공동체를 지향하자는 것입니다.
명예와 이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의 몸과 말과 마음의 삼업을 청정하게 닦는
불교 본연의 수행 불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론은 자신의 마음에
부처의 성품이 있다는 것을 확고히 자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이타행의 실천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눌 스님의 결사가
출가 승려 중심이라는 것이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지눌 스님 자신이 출가 승려였고 승단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니만큼
큰 비판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세상의 잘못된 세태에 물들지 않고
바른 삶과 수행의 길을 고민하고 모색했던
지눌 스님의 노력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후기
여러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수긍하면서 말하기를
“언젠가 이 약속을 지켜 산중에 은거하면서
결사하고 이름을 '정혜(靜慧)'라고 하자.”라고 해서
뜻을 모으고 맹세하는 글을 지은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불교의 선과 교뿐만 아니라
유교나 도교의 선비 가운데에서도
세속적 삶을 싫어하는 뜻 높은 선비가 있어서
세상의 굴레를 벗어나 일념으로 도를 닦고자 한다면
전에 함께 결사를 맹세한 적이 없더라도
이 결사문 뒤에 이름을 적고 함께 수행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같이 한곳에서 수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언제나 생각을 바로 잡고 관조함으로써
힘을 다해서 바른 수행을 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문수게>에서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이 바로 도량이니
갠지스 강 모래알 숫자만큼 칠보탑을 쌓는 것보다 나으리라.
보배탑은 끝내 부서져 먼지가 될 날 있으려니와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라.”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경술년(1190년) 늦봄에 팔공산에서 은거하는
목우자(牧牛子) 지눌이 삼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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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보면 지눌 스님의 결사는 출가 승려뿐 아니라,
유교나 도교의 선비에게까지 문호를 확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수행을 못하더라도
같은 뜻을 가진 이들도 함께 수행하기를 염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믿음이 다르고, 사는 장소가 달라도
인간이 인간다와지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닦고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인가에 대한
지눌의 인식과 통찰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보배탑은 끝내 무너져 먼지가 될 날이 있으려니와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참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금강경>에는 "삼천대천세계를 다 보시하더라도
금강경 사구게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훌륭한 답이 바로 바로 윗 구절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생각합니다.
참으로 바른 깨달음의 가치를 보배탑보다 높이 두고 있는가?
자신의 마음이 욕망에 흐트러질 때마다
자주 돌이켜보아야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지눌 스님의 <정혜결사문>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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