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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45) - 법화경(4) / 변화로 된 성(化城)의 비유

by 아미타온 2024. 7. 12.

<불교의 역사(45) - 법화경(4) / 변화로 된 성(化城)의 비유>

 

<수원 화성 가는 길>

 

1. 화성의 비유

 

오늘은 <법화경>의 4번째 비유는

변화로 된 성(화성)의 비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변화로 된 성의 비유는 법화경 제7품 '화성유품'에 나옵니다.

'변화로 된 성'의 비유는 힘든 여행에 대한 비유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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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물을 찾아

오백 유순이나 되는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지형에 밝은 유능한 안내자를 따라서

험한 길을 건너 여행을 계속했다.

 

안내자는 그들에게 여행의 길을 알려주는

가이드이자 스승이었습니다.

 

길은 아주 멀었으며,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많은 재난도 겪었고,

그래서인지 절반도 못가서 일행은 그만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차라리 방향을 틀어서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안내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쳐 있는 일행을 목적지로 데리고 갈 방편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방편으로 멀지 않은 곳에

변화로 만든 마법의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지쳐 있는 일행을 향해 안내자는 일행에게 말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아주 멋진 도시가 있습니다.

 거기 가면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어요."

 

이 말에 일행은 다시 기력을 추스려 도시를 향해 걸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도시가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도시에 이르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의 안락함에 젖어

일부는 더 이상 힘든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계속해도,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더 많은 고난과 위험뿐이야.

여기까지 온 것으로 충분해."

 

마법의 성에서 몸 편히 지내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묻혀 있는 곳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었습니다.

 

안내자는 충분히 쉬어서 기력을 회복함을 알고

다시 말했습니다.

 

"이 도시는 편안한 삶을 즐기기에는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이 곳은 휴식처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유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진정한 자유의 보물산입니다.

저 보물산을 찾아 여행을 계속하면 결코 삶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내자는 사람들을 독려하며 자발적 의지를 불러일으켜서

일행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안락한 휴식처에 안주하지 않고,

귀한 보물로 가득한 진짜 보물산에 도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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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2.  보물산의 안내자, 부처님

 

'화성유품'의 비유에서 지혜로운 안내자는 바로 부처님입니다.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스승입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을 성불의 궁극적 완성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부처님은 일불승(一佛乘)의 보물산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길을 다 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지쳐 버렸습니다.

이 지친 사람들에게 계속 보물산을 향해 나아가자고 해도

이들은 더 이상 길을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방편을 사용합니다.

방편은 휴식과 안정을 위한 '변화로 된 성(화성)'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개인의 안정과 해탈을 말씀하신 것도 방편일뿐,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안정과 해탈의 맛에 취해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교 수행을 하는 목적은 '자리이타'입니다.

나와 타인을 함께 성불의 길로 부처님의 길입니다.

 

그래서, 대승 불교에서는 법회를 마칠 때 '성불하십시요"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성불'에 있슴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정과 해탈에 목적을 두게 되면

나는 굳이 부처가 되지 않아도 되며,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 다른 사람들을 돕고 제도하겠다는 열망인

보리심과 보살도를 함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앞으로 해야할 수행의 힘겨움이 너무 많으므로,

자신의 안정과 해탈에만 신경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길, 작은 열반에 안주해버리는 것입니다.

대승 불교는 그 길을 '소승(小乘, 작은 수레)'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소승의 안주에서 깨어나서

대승의 보리심을 가지고 보살도를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비유 속의 지혜로운 안내자처럼

소승의 작은 안정과 해탈에만 만족하는 이들을 위해

다시 먼 길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안내자인 것입니다.

 

 

3. 불교의 목적, 자타일시성불도

 

이와 같이 법화경의 4번째 비유인 '변화로 된 성(화성)'의 비유는

개인적인 안정과 해탈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는 것입다.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이것이 불교의 목적이자 궁극적 도착지라는 것입니다.

 

보물산이 최종의 도착지인 것처럼

부처가 되려는 큰 마음을 내고

부처를 이루어 다른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적지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소승의 성문에서 대승적인 보살의 길로

궁극의 목적을 향해 여행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