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물사(41)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1) - 탄생과 출가>
1. 대승의 위대한 법사, 구마라집 법사
이번 시간부터 실크로드에서 온 역경승인
구마라집 법사(AD350~409)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마라집은 "쿠마라지바(Kumārajīva)"의 중국식 이름입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동서 교역로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국가인 쿠차(Kucha)국의 왕족 출신의 승려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인도 유학을 거쳐
실크로드(서역) 최고의 학승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전란의 시대에 전쟁 포로로 중국에 끌려와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불교 경전을 한역하는데 일생을 보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대승 불교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도어와 중국어에 대한 탁월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경전 번역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경전 번역 작업은 동아시아권인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의
대승 불교인들에게 외래 종교인 불교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고 사유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의 경전 번역으로 인해
5세기 이후 동아시아 권에서 다양한 불교 사상과 문화가
화려하게 꽃필 수 있었습니다.
<금강경>,<반야경>,<법화경>,<아미타경>,
<미륵경>,<십지경(화엄경 십지품)>등의 대승 경전과,
<중론>,<백론>,<십이문론> 등의 중관 사상 논서들이
모두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본을 16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독송하고 있습니다.
구마라집은 승려로서 파계를 강요당하는 굴욕과 함께
전란의 시기 속에서 불행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
그러나, 이러한 장애와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배우고 익힌 대승의 가르침을 중국에 전했습니다.
그리고, 천재적인 어학 감각으로 경전을 번역하여
동아시아 땅에 불법이 뿌리 내리게 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습니다.
구마라집의 삶은 곤란과 시련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희망과 구원의 끈을 놓지 않고 지혜와 평안을 추구하는
"번뇌 즉 보리"를 구현하는 대승적 삶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간부터는 이와 같은 구마라집 법사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 구마라집 법사의 탄생
구마라집의 아버지의 이름은 구마라염(鳩摩羅炎)입니다.
구마라염은 인도 출신으로 대대로 재상을 지낸 명문 바라문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구마라염은 젊은 나이에 출가하였으나,
당시의 인도왕인 불사밀다라왕이 불법을 무시하고 탄압하자 염증을 느꼈습니다.
그는 당시 서역 지방(실크 로드)에서 불교 국가로 널리 알려진 쿠차로 건너왔습니다.
일종의 정치적 망명객인 셈이었습니다.
당시 쿠차국의 왕은 백순(白純)이었습니다.
쿠자 국왕은 성은 백(白)씨인데,
이것은 쿠차국 사람들이 아리아 인 계통에 속하여
백인처럼 피부색이 흰 데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백순은 구마라염을 친견하고
그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을 흠모하여 국사로 임명했습니다.
한편, 쿠차 국왕에게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지바(중국식 말로는 "기파"라고도 한다.)"였고,
당시 나이는 20세였습니다.
지바는 외모가 아주 아름다운데다가
재능도 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몸에는 붉은 점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이 영리한 아이를 낳을 징조라고 하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나라의 왕이나 왕자들의 구혼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 모두를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지바는 인도에서 온 젊은 출가자인 구마라염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왕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왕은 그렇지 않아도 구마라염을 붙잡아둘 요량이었는데,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구마라염을 간신히 설득하여
환속시킨 다음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한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구마라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에서 "쿠마라(Kumara)"를 따고,
어머니의 이름인 "지바(Jīva)"을 따서
"구마라집"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쿠마라(Kumara)는 "젊은, 소년"이라는 의미이고,
지바(Jīva)는 "장수, 수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구마라집의 이름을 의역하여
"동수(童壽)"라고도 합니다.
3. 구마라집 법사의 탄생 설화
구마라집은 탄생부터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전승됩니다.
구마라집을 임신하고 나서
어머니인 지바는 더욱 총기가 빛을 발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전까지 배운 적이 없는 산스크리트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려운 불교 경전의 내용도 환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본 당시 쿠차국의 고승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지혜 제일인
사리불 존자의 어머니도 임신 중에 이러한 일이 있었던 것을 들어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지바 공주는 사리불 존자에 버금가는 아이를 낳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구마라집이 태어났고,
그 이후부터 지바의 총기는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모두가 구마라집이 사리불 존자와 버금갈 정도로 총명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찬탄하기 위한 전설로 생각합니다.
구마라집 법사의 어머니 지바는 구마라집을 낳고 출가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편인 구마라염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4. 구마라집 법사와 어머니의 출가
그 뒤 둘째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자
삶의 무상함을 느낀 지바는 구마라집과 함께 출가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왕권을 둘러싸고 왕족들간에 경쟁과 갈등이 심하여
구마라집의 안위를 위해 함께 출가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때 구마라집은 7살이었습니다.
동진 출가인 셈입니다.
출가한 후 구마라집은 쿠차국 최대의 사원인
고바시 대사원에 머물렀습니다.
오늘날 실크로드는 이슬람의 침략 이후 대부분 이슬람화되었으나,
구마라집 법사가 살았던 당시의 쿠차는
인구 8만에 승려가 천명이 넘는 대표적인 불교 도시 국가였습니다.
그 쿠차 왕국의 최대 사원인 고바시 대사원에서 구마라집은
불법을 공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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