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물사(42)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2) - 서역 최고의 학승>
1. 사리불 존자의 화신, 구마라집 법사
이와 같이 구마라집 법사는 7살 때 동진 출가하여
쿠차 제일의 사원인 고바시 대사원에 머물렀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기억력이 뛰어나
매일 1,000개의 게송을 암송하였다고 합니다.
구마라집의 어머니 지바도
성인의 흐름에 든다는 수다원과에 올랐다고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어머니와 아들입니다.
한편, 구마라집 법사가 9살이 되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인도 유학에 올랐습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당시 불교 최고의 배움터인 인도 카슈미르로 유학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카슈미르 국왕의 사촌 동생인 반두다라 존자에게
설일체유부(소승)에 전승되어오던 아비달마 논서를 배웠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뛰어난 지혜와 학습으로
'사리불 존자의 현신'으로 불릴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스승인 반두다라 존자의 추천으로 국왕의 면전에서
다른 학파의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여 모두 이겼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지혜와 변론술을 지녔슴을 알 수 있습니다.
2. 서역 최고의 학승, 구마라집 법사
구마라집 법사는 12살(355년)이 되었을 때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는 스승 반두다라 존자의 말에 따라
어머니 지바와 함께 쿠차국으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귀국할 때는 쿠차에서 카슈미르로 갈 때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파미르 고원을 피해 카슈미르의 왼편에서 쭉 올라가
또다른 불교 국가인 대월지국에 들렀다가
다시 사륵국에 가서 1년 정도 머문 뒤에 실크로드 북로로 쿠차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구마라집의 견문을 넓히게 하기 위한 어머니 지바의 배려였던 것입니다.
대월지국에 머물 때 한 아라한이 구마라집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미가 35살이 될 때까지 파계하지 않으면
크게 불법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제도할 것이니
우빠굽타(아쇼카왕을 교화한 유명한 인도 승려)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계율을 보존하지 못하면 단지 빼어난 법사에 그칠 것입니다.
부디 계율을 잘 보호하십시요."
후일 구마라집 법사가 전쟁의 와중에
불행하게 파계를 하게 되는 것을 예고하는 메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구마라집 법사는 대월지국을 지나 사륵국에 1년 정도 머물었데,
사륵국에서도 구마라집 법사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하루는 구마라집 법사는 절에 모셔놓은
커다란 부처님 발우를 머리에 이었는데 이상하게 가벼웠습니다.
"이렇게 큰데 왜 이렇게 가벼울까?"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들자 발우는 갑자기 무거워졌고,
도저히 머리에 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급기야 비명까지 지르며 내려놓자
"왜 난리냐"고 어머니 지바가 물었습니다.
이에 구마라집이 말하기를
"제 마음에 분별이 있어 부처님 발우가 무거웠다 가벼웠다 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때 일체유심조의 이치를 체득했다고 합니다.
13살 때 쿠차국으로 돌아간 구마라집 법사는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학자로 성장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가 섭렵한 문헌을 보면 불교 경전과 논서뿐 아니라,
힌두교의 베다 성전과 빠니니 문법학, 천문 역법 등의 베다의 보조 문헌,
그 외에 니야야 학파의 논리학, 심지어는 길흉을 점치는 법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교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쌓았슴을 알 수 있습니다.
구마라집은 20살 때 쿠차국 왕궁에서 구족계를 받고 어엿한 비구가 되었습니다.
그가 장성하자 그와 함께 수행하던 어머니 지바는
당시 아나함과의 경지에 이르러 홀로 인도로 떠나버렸습니다.
인도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는 구마라집 법사에게
올바른 불교를 중국에 전하라고 간곡하게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구마라집의 학구열은 끝이 없어 다시 사륵국으로 가서
<십송율>이라는 소승 계율을 배웠습니다.
이때까지 구마라집 법사는 대승불교를 접하지 못했으며,
주로 설일체유부 계통의 소승불교 공부를 주로 하였습니다.
3. 대승으로 전향한 구마라집 법사
구마라집 법사가 22살에 사차국에 갔을 때
그는 마침내 대승 불교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스승인 수리야소마를 만나
대승경전인 <아뇩달경>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차국은 당시 서역 지방에서 대승불교의 중심지였던
우전국의 영향을 받아 대승불교가 유행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모든 법은 다 공하며 무상하다."는
구절을 보고 괴이하게 생각하여
"이 경은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법을 모두 파괴해버리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승 수리야소마는 대답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때부터 26살까지 구마라집 법사의 사상은
크게 변모하여 대승으로 전향하게 됩니다.
<중론>,<백론>,<십이문론>과 같은
중관 학파의 논서들을 연구한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대승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대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소승을 훌륭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은 마치 황금을 알지 못하는 자가 놋쇠를 보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라고 술회하였습니다.
스승 수리야소마의 지도로 대승 불교 법사로 변모한
구마라집 법사는 26살(369년)에 다시 쿠차국으로 귀국했습니다.
도중에 온숙국에서 소승 불교의 지도자와 대론을 벌여 승복시키는 등
구마라집 법사의 명성은 서역 지방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서역지방은 원래 실크로드 남도변에 위치한
우전국, 사차국만이 대승불교권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마라집이 대승 불교의 지도자로 나선 이후
실크로드 북로변에 있는 사륵국, 온숙국, 쿠차국에서도
모두 대승불교가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카슈미르의 스승 반두다라 존자는 제자 구마라집으로 인해
서역 지방에 대승불교가 흥한다는 말을 듣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옛 제자인 구마라집 법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쿠차국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공사상을 가진 구마라집을 두고
"비단을 짜는 견직공의 사탕 발림같은 말에 빠져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마치 멋진 비단이라고 착각하는 한 미친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벌거숭이 임금님"의 우화처럼
공사상 신봉자는 벌거숭이 임금님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마라집 법사는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며 옛스승을 설득시켜
결국 반두다라 존자는 구마라집의 논변에 승복하였습니다.
반두다라 존자는 구마라집 법사에게
"나는 너에게 소승의 스승이나,
너는 나에게 대승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스승 반두다라 존자와 제자 구마라집 법사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스승이라는 권위만을 고집하지 않고
제자와의 사상 논쟁을 통해 자신이 틀렸을 때
그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합니다.
진리를 구하는 이성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할 수 없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4. 중국 전진의 황제 부견의 쿠차국 침략
한편, 쿠차국에서 구마라집 법사가 강좌를 열 때면
서역에 있는 수많은 승려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여러 나라 왕들이 그를 초대하였고,
구마라집 법사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서 멀리 중국에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유명한 고승인 도안(道安)이
구마라집 법사의 평판을 들은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5호 16국 시대였습니다.
북방 민족이 중국으로 쳐들어와 쟁패를 겨루며
여러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던 정치적 혼란기였습니다.
당시 전진(前秦)이라는 왕조의 부견이
중국 북방 지역의 패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부견은 불교를 존숭했고 도안을 깊이 존경했습니다.
전진의 부견은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우리 나라에 불교를 처음으로 전하여
우리 나라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황제입니다.
도안으로부터 구마라집의 이야기를 들은
전진의 부견은 쿠차국을 굴복시켜
구마라집 법사를 전진으로 데려오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382년 장군 여광(呂光)에게 7만 명의 병사를 보내어
서역을 토벌하여 구마라집 법사을 데려오도록 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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