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81) - 7살에 아라한이 된 어린 사미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꼬삼비에서 온 띳사 테라의 어린 사미와 관련하여
게송 96번을 설법하시었다.
띳사 비구는 어느 때 그의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곱 살 된 어린 사미를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띳사 비구는 소년의 머리를 깍기에 앞서
소년에게 좌선 수행에 관한 법문과 함께 수행법을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그러자 소년은 머리를 깎는 동안
스승으로부터 배운 수행법을 집중적으로 실천하여
마음을 자신의 호흡에 집중 밀착시켜서 일념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자기 머리를 다 깎는 것과 동시에 아라한을 성취하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띳사 비구는 아라한이 된 어린 사미를 데리고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사왓티로 떠났다.
여행 도중 그들은 어느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이때 띳사 비구는 먼저 곤한 잠에 취해 떨어졌고,
어린 아라한 사미는 스승이 주무시는 침상 곁에 바르게 앉아 밤을 새며 좌선 정진했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난 띳사 비구 는
어린 사미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침상에서 종려나무 잎으로 만든 부채를 쥐고 일어났는데,
그 부채 손잡이의 끝 부분이 그만 어린 사미의 눈을 찌르고 말았다.
그러나, 어린 사미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고,
다친 한쪽 눈을 가리고 나이 많은 스승을 위해 세숫물을 떠와
스승의 손과 입, 얼굴 등을 씻어 드렸으며 수도원의 마당과 방도 쓸었다.
그런데, 어린 사미가 물을 바칠 때 두 손으로 올리지 않고
한 손으로 올렸다 하여 스승은 어린 사미를 꾸짖었다.
그러면서 띳사 비두는 어른들께 무엇을 올릴 때에는
두 손으로 공손히 올리는 법이라고 타일렀는데,
이 때에 이르러 어린 사미는 자신이 눈 하나를 잃었다는 것을 스승께 말씀드렸다.
띳사 비구는 자신이 이 진실한 어린 성자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고
부끄러움과 고통을 느껴 제자에게 백배 사과하였다.
그러나, 어린 사미가 말하기를
그것은 스승 띳사 비구의 잘못도 아니고
또한 자신의 잘못도 아니며,
다만 카르마(업)의 결과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린 사미는 오히려 스승 띳사 비구에게
이번 일에 대해서 너무 유감스럽게 생각하실 것은 없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띳사 비구는 이 불행한 사고를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도착하자 띳사 비구는 부처님께 나아가
자기와 함께 온 어린 사미는 자기로서는 처음으로 보는 훌륭한 성자라면서
여행하는 동안 일어난 일을 보고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띳사 비구의 보고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라한은 어느 누구에게든 진심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그는 감각을 잘 다스려 완전히 고요하고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아라한의 마음은 고요하다.
그의 언어도 고요하며, 그의 행동 또한 고요하다.
그는 진실로 다르마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났기에
삶의 행불행에 동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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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흡 수행
7살난 어린 사미가 호흡 수행에 대한 지도를 받고
머리를 깎는 짧은 시간 동안 아라한 과를 성취했습니다.
진정한 수행의 천재가 있다면
이 사미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다.
호흡 수행은 호흡의 들숨과 날숨의 숫자를 세는데
집중하는 '수식(數息)'과
호흡이 들고 나갈 때의 몸과 마음의 감각과 느낌을
인식하고 통찰하는 '상수(相隨)'라는
2가지 단계의 실천 수행을 통해 해탈까지 이를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수식'은 호흡의 들숨과 날숨의 숫자를 세는 것에만 집중함으로써
숫자를 세는 것 이외의 여러 감각과 의식의 흐름을 차단하여
강한 집중력(止)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상수'는 이러한 수식을 통해 한 점에 대한 집중력을
확보한 다음 단계에서 행해지는 것인데,
호흡을 통해서 일어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감각과 느낌을 인식하고 통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의 연기적 현상을 바라보고 성찰하는 관찰의 지혜(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호흡 수행은 집중과 지혜를 얻는 지관 수행으로써
호흡 수행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수식과 상수를 성실하게
닦아나간다면 해탈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2. 무아와 연기법의 자각
불교에서는 수행하는 대상은 '나' 지만,
'내' 가 있다는 생각을 만병의 원인이고 만악의 근본입니다.
'나' 는 고정불변의 영원한 실체가 아니며,
나에 대한 집착이 있으므로 윤회와 번뇌와 무명과 무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없애는 것, 나에 대한 집착을 줄여
급기야는 완전히 끊어버리고 사라지게 하는 것이
불교 사상과 수행 체계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호흡 수행, 즉 수식과 상수 수행의 포인트 역시
'나'를 신체와 호흡과 감각과 생각의 변화와
점점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훈련으로 시작됩니다.
즉, '내' 호흡이 들고 나감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몸에 호흡이 들고나감을 관찰하는 것이고,
'내'가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숫자를 세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의 흐름을 그냥 관찰하는 것이며,
'내'가 즐겁고 괴롭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즉, 수식과 상수가 제대로 되어간다는 것은
'내'가 붙지 않은 수식과 상수를 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가장 우선되는 기준입니다.
즉, 부처님은 생각과 감각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주체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조건과 조건이 닿아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조건과 조건이 닿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그 조건이 끝났을 때 생각도 사라지는 것이고,
조건과 조건이 닿았을때 감각이 일어나지만,
그 감각도 조건이 사라지면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저 조건과 조건,
즉 '연기(然起)'만이 있는 것이고,
이 '연기'에는 주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을 주체라 할 수 없고,
그 둘이 닿았을 때 그 둘을 동시에 주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체라고 할 무엇도 없이 그저 '연기'하는 것뿐인데,
어떻게 '내'가 있다는 것인가요?
이것이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무아와 연기법입니다.
무아와 연기법을 통찰하기 위해
수식을 하고 상수를 하고 사념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호흡 수행이고 사념처 수행입니다.
3. 아름다운 마음 세계
그런데, 7살 밖에 안 된 어린 사미가
머리를 깎는 짧은 시간 동안에
스승의 가르침을 귀기울여 듣고
호흡 수행의 가치와 의미를 자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호흡을 관하는 몇 분간의 집중된 수행읕 통해
"나"가 없어지고(무아를 증득하고) 연기를 관할 수 있는
지성적 수행자가 바로 이 7살 난 어린 사미였던 것입니다.
그 어린 사미는 호흡 수행을 통해 완성을 이룬 다음
스승의 실수로 눈을 찔려 한 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승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여 평온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 사고는 스승의 잘못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과거의 업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연기와 인과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유를 얻은 아라한 성자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아라한의 모습입니다.
아라한은 감각을 잘 다스려 마음과 말과 행동이
완전한 고요와 평등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연기와 인과의 다르마를 깨달아
다른 사람에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어떠한 삶의 행복과 불행 속에서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부동의 평온함에 머문다고 하셨습니다.
아라한의 그 아름다운 마음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무아와 연기법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을 게을리하면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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