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50) - 법화경(9) / 상불경보살님과 불성>
1. 법화경과 보살도
법화경은 총 28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법화경의 후반부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중생들을 제도하는 여러 보살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0장 상불경보살품>, <23장 약왕보살본사품>,
<24장 묘음보살품>,<25장 관세음보살보문품>,
<28장 보현보살권발품>의 5가지 품이 보살님에 대한 품입니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보살님의 삶을 본받아
일불승의 길을 가는 대승보살의 길에 대해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25장 관세음보살 보문품>은 관세음보살님의
신앙의 근거가 되는 품으로 독자적인 경전처럼 독송되고 있습니다.
법화경이 단순한 사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법화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보살들의 삶을 선명히 밝혀서
대승 보살의 마음 자세와 실천으로 승화시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법화경을 설하신 부처님의 보살도에 대한 자비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2. 상불경 보살의 공경의 실천
법화경 20품은 상불경 보살에 대한 품입니다.
상불경보살님의 보살로서의 실천적 삶은 어떨까요?
과거에 위음왕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오랜 세월이 지나
정법은 약해지고 불교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상법(像法)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때 아만이 많고 교만한 비구들이 무리들이
(법화경에서는 증상만의 비구라고 합니다)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때 누구든지 만나면 절을 하고 공경하는
"상불경보살"이라는 이름의 출가 비구 보살이 있었습니다.
'상불경(常不輕) 보살'은 중생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상불경 보살은 비구든 비구니든 우바새든 우바이든 상관없이
그들을 만날 때마다 예배 찬탄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대들을 깊이 존경하고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보살의 도를 행하여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불경보살이 보는 사람마다 이런 말을 하니
그 말을 듣고 화를 내고 고약한 마음을 품는 이들이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 머저리같은 비구는 어디에서 굴러왔는가?
네가 우리에게 부처가 되리라고 하고 수기를 주지만,
우리는 그런 거짓된 수기는 믿지 않이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상불경 보살은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끊임 없이 "나는 그대를 업신여기지 않으니
그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입니다"는 말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러자, 거친 대중들은 몽둥이,기와, 돌을 던지고 때렸으나,
상불경보살은 피해 달아나면서도 더욱 큰 소리로 외치며
"나는 그대들을 업신여기지 않으니 그대들은 다 부처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한편, 상불경보살이 목숨을 마칠 즈음에
하늘에서 법화경의 게송을 전해 듣고는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육근이 청정해져
다시 태어나서 무량겁 동안 법화경을 설하습니다.
상불경보살은 무량겁의 기간동안 <법화경>을 설하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 마침내 성불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불경보살의 후신이 바로 법화경을 설하고 계신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거에 상불경보살로 태어나
법화경을 수지하고 독송하고 해설하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당시에 상불경 보살을 업신여겼던 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상불경보살을 업신여긴 과보로
수백생을 부처님을 못 만나고 불법을 듣지 못했으며,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고 자신의 죄업을 녹인 후에야
비로소 상불경보살과 만난 인연 공덕으로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오늘 법화경의 모임 중에 앉아 있는 대중이 될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3. 상불경 보살과 불성의 메시지
상불경 보살의 메시지를 무엇일까요?
"나는 당신들을 감히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불성이 있으므로 언젠가는 부처가 될 존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부디 보살의 도를 행하여 부처를 이루십시요."
이 메시지가 상불경 보살의 가르침의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르침은 때로는 업신과 경멸, 몽둥이질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상불경 보살은 인욕하고 모욕을 감내해내었습니다.
불성이란 무엇일까요?
불성은 성품, 진여, 법신, 근본 마음 등등으로 불립니다.
불성은 허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허공이 있으므로 많은 새들이 허공을 의지하며 날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새는 높고 멀리 날 수 있고,
어떤 새는 높이 날수 없고 멀리 갈수 없습니다.
새들의 나는 힘은 차이가 있지만,
허공이 있기 때문에 새들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형태의 물이 있습니다.
진흙탕 물이든, 계곡의 맑은 물이건,
더러운 구정물이든, 우리가 먹는 우유도 있습니다.
그 형태와 쓰임은 달라도 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물의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인연 따라 흙탕물이 되고, 맑은 물이 되고, 우유가 됩니다.
다양한 쓰임과 모양으로 세상에 출현하지만,
그 근본은 물로서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인연에 따라 다양한 물의 모습과 세계를 나타내지만
'물'의 성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근원적 동일성이 있습니다.
번뇌의 마음, 성내는 마음,
즐거운 마음, 청정한 마음 등등 다양한 마음이 있습니다.
비록 번뇌와 성내는 마음이라 할지라도
마음으로서의 작용을 낼 수 있는 속성,
즉,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의지를 내고 인식할수 있는
이러한 마음의 바탕(불성)이 있으므로 다양한 마음 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허공, 물, 마음처럼
그 바탕이 되는 성품이 있기 때문에
그 바탕이 되는 성품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용이 일어납니다.
불성은 이와 같은 우리의 바탕이 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의지하고, 인식할수 있는 능력 자체가 불성이 아닐까요?
<법화경>에는 어린 아이가 모래를 갖고 장난으로 부처님 탑을 만들고,
작대기로 부처님 그림을 그린다면 언젠가는 부처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작은 인연 하나라도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불성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화경은 소승의 수행자도 가볍게 보지 않고
언젠가는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수기를 내리는 것입니다.
상불경보살은 이 법화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자의 모델입니다.
비록 법을 설할 수 있는 변재는 없었지만,
모든 수행자들을 가볍게 보지 않고 이들이 불성에 근거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불성을 바탕으로 보살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모욕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이를 인욕해내며 묵묵히 자신의 믿음을 이야기하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상불경보살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깨달을 수 있는 근원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우리가 가진 사유하고 인식하고 행동할수 있는 능력을 소흘히 보지 말자.
적극적으로 이 능력을 잘 발현시켜 작은 틀 속에 살지 말고,
대승의 보살로서의 큰 뜻을 품고 살아가자.
그리고 그 큰 뜻을 펴기 위해 노력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성불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상불경 보살처럼
인간이 가진 불성의 능력을 가볍게 보지 말고
언젠가는 반드시 성불할 존재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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