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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애

사문유관 (부처님의 일생2)

by 아미타온 2023. 7. 31.

<사문유관>

 

<룸비니의 네팔 사원>

1. 싯다르타의 어린 시절

 

지난 시간에 부처님의 탄생 신화를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출가 동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과의 소통에서

가장 큰 장애를 겪는 이유는,

부처님이 가지신 문제 의식과

그 해결방식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문제의식과 그 해결방식을

공유하려면 먼저 부처님의 출가 동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신지 7일 만에

어머니인 마야 부인과 사별하게 됩니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지만,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왕자 시절의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으로

말을 달려 어머니를 추억했을 겁니다.

 

부처님의 어릴적 이름은

싯다르타’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의

멋진 이름이셨습니다.

 

어린 싯다르타는 아버지 정반왕

양모 마하파제파티 부인의 사랑 속에

자상하게 양육되었습니다.

 

 

<농경제에서의 명상>

2. 농경제에서의 명상

 

싯다르타는 12살 때의 봄,

아버지 정반왕을 따라

‘농민의 날(農耕祭, 농경제)’ 행사에

참석하여 농민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된 검게 탄

농부들이 쟁기를 끌며 힘들게 일하였습니다.

 

흙이 뒤집어지고 많은 벌레들이

허리가 동강난 채 꿈틀거렸습니다.

 

바로 그때, 참새가 날아들어

동강난 벌레를 쪼아 물고

공중으로 솟아올랐습니다.

 

싯다르타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아

숲속으로 들어가 큰 나무 아래 앉아

홀로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저 농부들은 어찌하여 짐승처럼

몰리면서 허덕여야 하는가?’

‘가엾어라! 산 것들은 저토록

서로 잡아먹어야 하는가?’

 

태어난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제 또,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 죽이는 광경을 보고

싯다르타의 마음 속에는 인생의 고뇌와 함께

남의 고통을 아파하는 자비심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에 찬 농부들의 몰골,

동강난 채 몸부림치는 저 생명들,

싯다르타는 그 아픔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농민의 날 행사 이후 싯다르타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했습니다.

 

싯다르타의 총명과 기상은

석가족 젊은이들 가운데

당해낼 자가 없었지만,

이렇게 고뇌하는 왕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마음을 잡을까 싶어

19살 때 이웃나라 공주인 야쇼다라

결혼시켰습니다.

 

싯다르타의 생활은

안락하고 부족함이 없었지만,

인생의 문제에 대한 고뇌는

더 깊어졌습니다.

 

<사문유관>

3. 사문유관

 

어느 화사한 봄 날,

싯다르타는 시종을 데리고 고

국 카필라 성의 4대문 밖을 나가

경치를 구경하였습니다.

 

첫째날, 동문 밖으로 나갔다가

한 늙고 수척한 노인이 지팡이에 매달려

헐떡이며 다가오는 것과 마주쳤습니다.

 

둘째 날, 남문에서 병들어

신음하는 자를 보고,

셋째 날, 서문에서 죽은

시체의 행렬을 보았습니다.

 

싯다르타는 늙고 병들고 죽는

‘노병사(老病死)’의 공포가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꼈습니다.

 

넷째 날, 북문 밖에서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출가 수행자의 잔잔한 미소를 발견하고

싯다르타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이 길이야말로 내가 찾던 길이다.

이 길을 가기로 하자!”

 

이 사건이 ‘사문유관(四門遊觀)’입니다.

 

4문을 다니면서 인생의 노병사의 고통를

직시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총명한 싯다르타가 스물이 다 될 때까지

인간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문유관은 싯다르타가

노병사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직시하여 발견하고

체험한다는 상징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싯다르타는 곱게 늙은 왕족들과

관료들의 노병사의 모습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성 밖 현장에서의 민중들의

리얼한 노병사의 모습을 직시하고

인생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 밖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

병이 들어 힘겹게 살아가는 노인,

죽어서 거적에 묻혀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가엾은 마음과 함께

나 자신도 언젠가는

늙고 죽고 병든다는 사실이

진실된 자신의 문제로 강하게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인도의 걸인들>

4. 싯다르타의 고뇌

 

영화 ‘리틀 붓다’를 보면

사문유관 후에 고뇌하는 싯다르타를 보고

부왕인 정반왕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늙고 죽고 병드는 것은

인간의 숙명적인 굴레인데,

너는 어찌 이런 것을 고뇌하느냐?"

 

싯다르타가 진정으로

고뇌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농민의 날 행사에서 보았던 것처럼

모든 존재들은 살기 위해 힘든 노동도 하고,

살기 위해 남을 죽이기도 하고,

살기 위해 욕망을 내고

남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살기 위해 모두들 그렇게 노력하는데,

결국은 늙고 병들고 죽고 맙니다.

 

결국은 죽음이란

종착역에 다다르는 인생인데,

왜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살기 위해 힘겹게 살다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과연 인생인가?

 

과연 진정한 삶의 의미란 어떤 것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내가 궁궐에서 누리는

이러한 즐거움이 과연 바른 삶의 길일까?

 

노병사를 벗어난 아니

노병사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삶의 길은 없는 것인가?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죽음으로 가는

유한한 삶을 벗어난

뭔가 새로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싯다르타는 ‘노병사’라는 삶의 모순을

뛰어넘을 진실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젊었든, 늙었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모든 중생들이 지닌 삶의 모순을 보고

진정한 삶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었습니다.

 

<인도의 고단한 삶의 모습>

5. 부처님의 회고

 

<파리증지부>라는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당신의 싯다르타 시절을

회고하였다고 합니다.

 

"궁중의 영화도 건강한 이 육신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 젊음도

결국 나에게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나는 병들고 언젠가는

늙어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젊음을 자랑하며 건강을 자랑하며

생존을 자랑하는 일은

적어도 생각 깊은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삶이 지닌 모순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된 싯다르타.

 

그러한 싯다르타 앞에

새로운 삶의 유형의

사람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바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수행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출가수행을 통해 자신이 깨닫고자 하는

죽음을 초월한 진정한 삶의 길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2) 사문유관>

https://youtu.be/3Jk-8czhD0w?si=fMbjzswWYUwoRaDb